생활여행 칼럼 - <데미안>과 마법의 제6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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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여행자 되기 01_<데미안>과 마법의 제6



 

데미안? 청소년 권장도서 아니에요? 어린 애들보고 읽어보라고 하는 뭐 그런거.”

어려운 단어도 많고, 무슨 얘기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가서 읽다 덮어버렸어요.”

강의장에서 <데미안>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반응이 적잖이 나온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찬하지만 읽지 않는 책(Classic: a book which people praise and don't read)’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여행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뒀다. 목표와 열정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첫 책이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꿈은 꿈 일 뿐, 현실은 냉정하다는 것을. 출판 시장 불황기에 책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부수적인 일도 쉽게 들어올리 없었다.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퇴사에 대해 고민하던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게 맞는 건가?' 기본부터 다져야 되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서른 살, <데미안>을 그렇게 늦게 만났다.


60개 언어로 번역되고, 한국에서 사랑받는 외국 작가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라는 이 유명한 작품을 글을 쓰고 나서야 읽다니. 부끄럽긴 해도 늦게 읽길 참 잘했지 싶다. 아마 나 자신에 대해 고민조차 할 줄 몰랐던 이십대 시절에 이 소설을 접했더라면 그저 노잼이라며 책장에 처박아 놓지 않았을까. 최근 3년 동안 열 번은 족히 읽었다. 자꾸만 읽어도 새롭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떠오른다. 데미안을 읽을 때가 됐군 하고 말이다. 글과 여행을 업으로 삼고 난 뒤 <데미안>을 만난 건 운명적인 타이밍 같다.


헤세의 삶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구도자는 자신의 소설 머리말부터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허구의, 이상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다른 문학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은 현실적이고, 일회적이며,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헤세 자신의 이야기임을. 또한 자기의 이야기가 곧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며, 모두는 그 나름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살고 있음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순수한 소년 싱클레어는 낮과 밤이라는 양극의 세계가 있음을 유년 시절의 시련을 통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싱클레어가 말하는 낮과 밤은 정돈되고 안정적인 현실세계와 해방, 본능의 비밀스런 세계를 뜻한다. 부모님 집, 도덕, 종교, ()등 어느 누구나 사춘기 때 한 번 쯤은 끙끙 앓아봄직한 고민과 시련들이다. 방황하는 싱클레어를 싱클레어답게 인도한 건 바로 친구 데미안과의 우정이다. 특히 불확실함, 고독감으로 혼란스러워 방탕한 기숙사 생활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에게 데미안이 건넨 글귀는 여행 작가라는 쉽지 않는 삶에 의기소침해졌던 과거의 나에게 에너지 넘치는 자극이 되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가 알에서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단한 알껍데기를 깨부수기 위해선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게다가 알에서 나온다고 새의 삶이 완전한 것도 아니다 .꼼짝 못하게 몸을 감싸고 있던 알은 외부로부터 새를 지켜주기도 했던 보호막이기도 했다. 안전장치가 사라졌으니 새는 이제 완전히 맨몸이다. 보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는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고, 더 강한 새로 성장하기 위한 보다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불확실함 속으로, 새로운 것에로 던져진 돌과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아무래도 좋은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기 위한 새의 투쟁은 주어진 환경에서 매일매일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 모습의 메타포가 아닐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은 100년이 지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답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머리로는 이해가지만 몸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덮으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알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새처럼, 요즘 같은 현실에서 나답게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버리지 않고도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그의 소울 메이트 데미안처럼, 나답게 살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 중에 가장 쉽고도 즐거운 방법이 바로 여행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자기실현을 실제 여행에서도 강조한다. 세계 속 다양성을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 안에서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일. 헤세에겐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의 방식이었다.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시아 여행을 통해 동양 사상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열린 마음의 예술가였다. 헤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여행가였는지를 그의 에세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여행 중에 낯선 것에 빨리 적응하고 친해지는 사람,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삶에서 의미를 찾아낸 사람, 자신의 별을 따라갈 줄 아는 사람과 동일인이다. () 그들은 먼 나라를 여행할 때 뿐 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삶과 리듬 속에서도 그러한 비밀을 열렬히 추구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그는 피상적인 관광여행을 꺼렸다. 여행의 기준이 타인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성립되어야 했다. 작가의 발로 직접 걸으며 발견하는 낯선 땅의 소박한 즐거움과 아름다움, 대상과의 교감이 중요했다. 호수의 다양한 물 빛깔, 어느 어부의 집과 보트에서의 경험, 여행지방의 토속적 농담들, 나뭇잎의 냄새와 같은 것들이 그와 오롯이 교감을 나눴던 길 위의 벗들이었다.

 

여행은 전보다 쉬워졌다. 손 안의 모바일 세상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항공권과 숙박시설 예약은 5분이면 뚝딱, 프랑스 파리 후미진 골목에 숨겨진 맛집과 새로 오픈한 빵집마저 검색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나 최신 가이드북이다, 파워 블로거의 리뷰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 같은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여행자는 떠나기도 전에 그 정보들이 쳐놓은 틀에 갇히고 만다. ‘여기도 가보고, 또 저기도 가봐야 하고.’, ‘너도 먹어봤으니 나도 먹어봐야 않겠어’, ‘최대한 많이’, ‘남는 건 인증샷’. 몸이 을 나서니 마음엔 이 쌓인다.


모두가 아닌 나만의 여행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데미안이 소개한 '마법의 제 6'이다. 데미안은 이 새로운 감각을 자기의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여행가이드북이나 블로그 정보들을 교과서처럼, 여행을 공부처럼 여기는 자세부터 훌훌 털어버리면 어떨까. 널리고 널린 여행정보들은 마치 사회적 기준인 마냥 여행자의 발목을 잡고 마음의 배낭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손 안의 가이드북, 구글맵은 잠시 넣어두시라. 조금은 허술하고 서툴러도 좋다. 관광자 모드의 마음을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행의 주인공인 나 자신의 ’6을 믿고 발길을 맡기면 된다. 마음이 가는 장소에서 하루 종일 머물며 그 공간과 시간을 만끽하기도 하고, 추천 코스나 명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눈과 발이 이끄는 대로 산책해보기도 하고, 줄이 길게 늘어져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하는 맛집이 아닌 소박한 동네 밥집이나 공원 벤치에서 먹어보는 거다.


지도 위에 나만의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가며, 평소에 잊고 있던 내가 누구였던가라는 근본적인 자기인식이 다시 되살아난다. 여행은 여행지의 이동이 아니라 여행자의 감각이 쌓이는 여정이다.


아직도 떠나느냐 머물러 있느냐 사이에서 고민 중일지도 모르는 미래의 싱클레어 여러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 사느냐, 더 즐겁게 사느냐그것이 진짜 문제다.



출처 : 화폐와 행복 3+4 『생활여행 칼럼 』 


글  조예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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