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폐공사사보'에 해당되는 글 22건

최보기의 책보기 - 꽃의 제국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두뇌 없는 식물의 지구 정복기

 

 

강혜순의 <꽃의 제국>

 

 

 

 

 

동물의 세계가 있다면 식물의 세계라고 없을 것인가. 앞서 소개한 동물들은 그나마 두뇌라도 있다. 식물들은 두뇌도 없건만 그들의 세계는 동물들보다 훨씬 영악하고 치밀하다. 꽃들의 번식과 생존 전략에 빠지다 보면 창조주(조물주)나 신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 소개하는 꽃의 제국이 빠지다 보면 딱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이다.

 

식물의 세계를 다루는 책들 또한 많고 많다. 그럼에도 지난 2002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은 그만큼 발군이라서 그렇다. 식물학자가 아닌 독자의 눈높이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식물들의 치밀한 세계를 너무나 흥미롭게 잘 다룬데다 풍부하게 섞인 디테일한 사진자료가 또한 압권이다.

 

민들레는 바람이 불어 좋은 날 길게 목을 빼고 씨앗을 날려보낼 궁리를 한다. 민들레가 목을 길게 빼는 것과 공처럼 둥근 모양으로 씨앗주머니를 펼치는 것은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맞음으로써 씨앗을 골고루, 멀리 날려보내기 위한 전략이 숨어있다. 이렇게 바람에 의지해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의 수술로 날려보내는 꽃들을 풍매화라고 한다. 풍매화의 대표격인 참나무의 암술머리는 맨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점이다. 직경이 0.04밀리미터에 불과한 졸참나무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와 그 작은 점(암술머리)에 도착해 도토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은 경이를 넘어 신의 경지이다.

 

송홧가루가 날리는 5월이면 울진 불영계곡에는 노란 물이 흐른다. 수솔방울 하나가 약 10만 개의 꽃가루를 품는데 소나무 한 그루로 계산하면 꽃가루는 대략 10억 개에 이른다. 심지어 그 작은 꽃가루마다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고, 표면이 매끈매끈해 바람에 잘 날리도록 설계돼있다. 이것들이 일제히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기껏해야 한두 개가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의 암술 입구에 이른다. 한마디로 소나무의 생존전략은 인해전술인 것이다.

 

 

 

인동초 꽃의 색깔이 수정 전의 흰색에서 수정 후 노란색으로 바뀌는 이유는 꿀벌에게 사기를 치지 않기 위해서다. 꿀벌의 도움으로 수정에 성공한 꽃은 더 이상 꿀을 생산하지 않게 되므로 벌에게 꿀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날개가 몸통보다 작은 곤충인 꿀벌은 초당 약 250 회에 이르는 날갯짓의 중노동을 감당해야 하는데 막상 도달한 꽃에 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럼 다음해에는 인동초에 꿀벌이 날아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남다른 꽃의 향기와 색깔, 모양, 영양가 등으로 수정 매개체들을 유인하는 식물들의 전략전술은 가히 신의 개입이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라는 감탄의 연발이다. 닭의장풀이 진짜 꽃밥 사이에 가짜 꽃밥 하나를 만드는 이유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동물이나 사람에게 과일로 먹힌 후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멀리 시집 보내는 것도 전략이고, 어성초의 독한 비린내는 동물의 시체를 좇는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흔히 못된 사람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 개만도 못한등등 를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애완에서 건강까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개를 그렇게 홀대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짐승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꽃의 제국을 쓴 강혜순 박사는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그것을 경쟁적으로 치장하고, 드러내 자랑함으로써 종족번식을 꾀한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개보다 **, 꽃보다 못한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지.

 

출처 화폐와 행복 5+6, 『최보기의 책보기

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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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동물의 세계에는 슈퍼갑이 없다

 

최삼규의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태초에 조물주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꿀벌에게는 침이 없었다. 다른 동물에 대해 아무런 공격 수단이 없는 꿀벌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생산한 꿀도 여차하면 빼앗겼다. 참다못한 꿀벌의 대표가 조물주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그리하여 조물주는 꿀벌에게 의 권리를 주게 되었다. 떼로 덤비는 벌침 앞에서는 사자도 독수리도 함부로 굴지 못했다. 그야말로 꿀벌 천지의 세상이 되었다. 개구쟁이 꿀벌들은 특히 행동이 느리고 순한 양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양들이 조물주를 찾아가 코뿔소 같은 뿔도, 사자 같은 이빨도, 고양이 같은 발톱도 없어 꿀벌들에게마저 봉이 되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읍소했다. 조물주는 꿀벌은 한 번 침을 쏘게 되면 자신도 죽어야 하는 것으로, 양들은 육식동물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손만대 번창하는 왕성한 번식력을 주는 것으로 설계를 변경했다고 전한다. 아주 오래된 이바구일 뿐이다.

 

MBC문화방송에서 오랫동안 자연 다큐멘타리 PD로 일했던,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자연 다큐멘터리스트 최삼규가 쓴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은 바로 그런 동물세계의 질서를 세밀하게 들여다 본 생생한 이바구책이다. ‘생물학자들은 야생 생태를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라는 세 단어로 살벌하게 표현하는데 (그보다는)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각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강점을 잘 살리면서 서로 균형 있게 생존해 나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이다. 그런 자연에는 갑질 하는 강자도, 당하기만 하는 약자도 없는 대신 오로지 섭리에 따르는 자연의 조화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최삼규의 주장이다.

 

  뻐꾸기의 탁란 과정이든 새끼 원앙의 첫 날개짓이든 자연 다큐멘터리의 제작은 시간과의 지루한 대결이다. 백수의 제왕 사자가 날쌘 몸놀림으로 사냥감을 포획하는 현장 역시 그렇다. 한 번 사냥으로 배가 부른 사자는 하루 이틀도 아닌 4~5일을 늘어지게 잠만 잔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자연의 질서다. 육식동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어슬렁거리면 초식동물이 살 수가 없다. 육식 동물들은 쓸데없이 사냥을 즐기거나 자기 힘을 과시하지 않는 대신 최소한의 배고픔을 해소하는 정도에서 사냥을 하도록 설계돼있다. 그것이 탐욕의 우리 인간 세계와 다른 점이다. 흔히들 라이온 킹이라고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다. 철저하게 모계사회를 유지하는 사자의 세계에서 수사자의 비애(?)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또한 자연의 오묘한 질서다.

                    

<최삼규 PD>

 

 

멀리서 보는 숲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숲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고, 동물적이고, 시스템적이다. 동물학자의 리포트나 연구논문이 아니라 방송국 PD의 방송물 제작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관찰, 깨달음을 풀어 놓는 동물과 동물, 동물과 사람 간의 이바구들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저자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와 뻐꾸기의 비겁함을 보여줬던 <어미새의 사랑>을 제작했던 바로 그 PD.

 

출처 화폐와 행복 5+6, 『최보기의 책보기

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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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 꽃피는 문경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석탄을 캐내던 은성탄좌가 번성하던 시절,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 소리가 회자될 정도로 문경은 잘 나가던 고장이었다. 실제로 70~80년대 문경에서 집 한 채를 팔면 서울에 두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집값과 땅값이 하늘을 찔렀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문경시의 인구는 7만6000명으로 겨우 도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탄을 실어 낸 짐칸에 돈을 싣고 들어오던 열차의 자취는 끊기고, 선로 위에는 찬란하게 피어난 봄꽃들 사이로 레일바이크가 달리고 있다. 한 때 가은읍 지하를 거미줄처럼 파내려간 갱도의 길이는 420km.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들이 지하 800m의 막장으로 내려가 탄가루를 마시며 석탄을 캐내던 문경은 이미 탄가루의 땟국물을 씻어낸 지 오래다. 탄가루가 섞여 먹물 같은 물이 흐르던 하천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제 광부들의 발길로 북적이던 자리에는 표고, 오미자, 사과밭과 도자기를 빚어내는 가마들이 들어섰다. 노란 산수유 꽃이 지고, 벚꽃 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문경의 산하를 둘러보고 왔다.

 

 

문경새재


몇 해 전 새재를 찾았을 때는 가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봄의 새재를 보러 왔다. 백두대간의 일부인 조령산을 넘는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길목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군사요충이었다.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혹은 ‘억새가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새), 새로(新) 난 고개에서 유래했다는 등 설이 분분하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천혜의 요새인 이곳을 버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뒤에 왜군에게 전멸을 당한 후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되는 등 국방의 요새로 자리매김했다.


문경새재 1관문에서 3관문까지 구간 사이에는 경관이 빼어나고 설화 등 풍부한 이야기가 깃든 유적들이 널려있다.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임무를 교대하는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이 있다. 교귀정 위쪽에는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에 ‘산불됴심’이라고 새겨진 비석(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이 남아 있어 지나가는 객들의 눈길을 끈다. 문경새재는 1974년 지방기념물 (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2015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우리 국민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밖에 새재를 넘던 나그네들과 관헌들이 쉬어가던 원터 등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새재관문 근처에는 진달래가 만개해 오가는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가는 길
•대전에서 가려면 l 경부고속도로 → 남이분기점 → 중부고속도로 → 증평IC → 34번국도 → 괴산 → 연풍 → 이화령터널 → 문경새재도립공원
•서울에서 가려면 l 중부고속도로 → 호법분기점 → 영동고속도로 → 여주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 → 문경새재IC → 문경새재도립공원

 

 

문경새재주흘관

 

 

새재 진달래

 

 

물이 맑은 선유동


새재로 알려진 문경이지만, 자연경관으로 따지자면 선유동과 대야산을 빼놓을 수 없다. 용추와 선유동은 하나로 연결된 계곡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용추에 가려면 먼저 선유동을 거쳐야 한다.


점촌~문경간 국도(3호선)변의 마성면사무소(소야교) 앞에서 가은·농암 방면으로 10여km를 가면 가은 읍내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석탄박물관 쪽(청주·괴산방면)으로 8km쯤 더 가면 가은읍 완장리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여기서 2km정도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 좌측에 1,000여 평 규모의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 옆 송림이 우거진 경사진 도로가 있는데 이곳이 선유동계곡의 입구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걸쳐 선유동이라는 계곡이 여러 곳 있다.
하지만 기자가 가 본 선유동 중에서는 문경 선유동이 으뜸이다. 이 곳 선유동계곡은 길이가 2km에 달하는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펼쳐진 암반의 색깔이 여인의 속살처럼 뽀얗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들은 마치 대리석을 다듬어 뉘어 놓은 듯 편평하다. 하얀 암반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사이로 수정보다 더 맑은 옥계수가 사계절 쉬지 않고 흐르는 경치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경관이 아름다운 만큼 선유동은 예로부터 소금강이라고 불렸다. 계곡의 물도 맑고 수량도 엄청나다. 대야산의 또 다른 이름이 대하산(大河山)인 것만 봐도 이 산의 수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유동을 아우르는 대야산이 한국의 비경 100선과 한국의 명수(名水) 100선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질 따름이다.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도 “선유동계곡이 합천 해인사 계곡인 홍유동 계곡보다 좋다”며 이곳에서 머물렀을 정도다.


선유계곡 관란담 위에는 손재 남한조가 정자를 짓고 글을 가르쳤다는 옥하정터가 있고 도암 이재는 용추동에 둔산정사를 짓고 후진을 양성했다. 지금의 학천정은 바로 도암선생을 추모하는 후학들이 그의 위덕을 기려 1906년에 세웠으며 오른쪽에 조그마한 건물 한 칸이 있어 도암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정자와 주변경관이 조화를 잘 이룬 절경지로, 정자 뒤 거대한 암벽에는 산고수장이라는 힘찬 필지의 글이 새겨져 있다.


선유동 하류쪽 관란담 위에 서 있는 칠우정은 1927년 이 고장 출신 우은, 우석 등 우字 호를 가진 일곱 사람이 뜻을 모아 세운 정자로 정자이름은 의친왕이 붙여준 것이라 전해온다. 학천정 앞 바위에는 선유동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석각 글씨는 모두 최치원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


가는 길
•서울에서 가려면 l 중부고속도로 → 호법분기점 → 영동고속도로 → 여주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 → 문경새재IC → 가은읍 선유동계곡

 

 


대야산 용추


선유동 입구에서 922번 지방도로를 따라 600m쯤 올라가면 관광안내판이 있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벌바위 마을이 나온다. 벌바위란 마을 뒷산의 바위들이 벌집 같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길을 따라 800m쯤 올라가면 돌마당 휴게소가 있고, 휴게소입구 오른쪽 언덕에는 넓은 바위가 있는데 마당처럼 넓다고 해서 ‘마당바위’라고 불린다. 휴게소 앞 다리를 건너면 용추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있지만, 이 길 대신 오른쪽 산길을 이용해도 용추에 갈 수 있다. 임도로 가면 폭포의 왼쪽으로, 산길로 가면 폭포의 오른쪽에 닿는다.


기자가 이곳을 처음 찾은 35년 전에는 용추까지 가는데도 풀 섶을 헤치며 간신히 접근했었다. 가는 도중에 만난 꺼병이(꿩새끼)들은 기자를 보고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의 대야산은 그야말로 때 묻지 않은 원시 자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용추 바로 아래까지 펜션, 민박집과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비경의 처녀림’이 은둔을 희생한 대가로 받은 전리품들인 셈이다.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있는 대야산(大耶山 930.7m)은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를 경계 짓는 산이다. 소백산맥의 비경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숨어 있던 아름다운 산인데, 정상에 이를 때까지 수량이 풍부해 대하산(大河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산허리까지는 암반계류에 흙길이 어우러진 절경이 펼쳐지는데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암봉과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야산 자락의 비경은 한 둘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2단으로 이뤄진 용추폭포야 말로 비경중의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 하다 남긴 비늘 흔적이라는 무늬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게다가 이곳의 물은 마르는 일이 없어 옛날부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다고 한다.


용추는 위 아래로 나뉘는 두개의 폭포로 이어져 있으며 수만 년 기나긴 세월을 쉼 없이 흘러내려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 모양으로 깊게 파인 윗 용추가 있다.
위 용추에서 머물던 물이 매끈한 암반을 흘러내려 부드럽게 이루어 놓은 아래 용추로 이어진다. 용추는 두 곳 모두 수정 같은 물빛이 아름답지만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 폭포로 쏟아지는 물길이 거센데다 휘감아 도는 까닭에 수영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이곳에서 심심치 않게 익사자가 나오는 이유다. 시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용추 주변에 펜스를 쳐 놓고, 물에 빠진 사람이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도록 노란 구명줄을 걸쳐 놓았다. 하지만 이 모습이 용추의 풍광을 해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망댕이가마

 


영남요(嶺南窯)


영남요는 250여 년 9대째 조선 도자 가업을 이어온 김정옥(76)씨가 그릇을 빚고 있는 터전이다.


김정옥 명인은 “영남요를 대표하는 작품은 달항아리인데 작품이 워낙 크다 보니 위 아래로 절반씩 만들어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며 “얼마 전에는 달항아리를 만드는 방식이 통일이라는 개념과 부합해선지 통일부에서 주문을 해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영남요의 특징은 현대화된 전기가마를 사용하는 대신 재래방식인 망댕이가마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요에서 사용하는 전기가마는 가마 안의 온도가 일정해서 똑같은 도자기가 생산되지만, 영남요에서는 장작으로 가마의 불을 지피기 때문에 같은 가마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온도가 다르다. 이에 따라 같은 가마에서 나오는 도자기라고 해도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작품이 생산되는 셈이다.


김정옥 명인은 “길이 25cm, 지름 약 13cm 정도로 뭉친 흙덩어리를 15°정도의 경사로에 5~6칸을 쌓아 만든 가마를 망댕이가마라고 한다”며 “주변에는 작업장, 디딜방아, 땅두멍, 괭 등 일련의 도자기 생산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읍 관음리에는 180년 전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망댕이가마가 지금도 남아있다.


김정옥 명인은 “전통방식으로 구워낸 도자기에는 물을 부어 10년을 둬도 썩지 않는다”며 “달항아리는 위아래 부분을 잘 붙이지 않으면 금이 가기 때문에 만드는 공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남요의 자기들은 국내에서 보다 일본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렸던 임진왜란 때도 일본은 도공들을 자국으로 끌고 가 오늘날의 도자기 강국이 됐다. 그래선지 요즘도 적지 않은 일본 관광객들이 영남요를 찾고 있다.

 

 

문경의 자기

 

 

김정옥명인

 

 

 

달항아리

  

 

도자기 명가에서 태어난 김정옥 명인은 18세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도자기를 빚었다. 김명인은 “애조에 도자기를 빚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버지를 모시다가 일을 돕게 됐고, 20년 넘게 하다 보니 불혹이 넘으면서 장인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고 말했다.

 

 


오미자 와이너리 오미나라


문경에 왔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오미자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 ‘오미나라’다.


이곳을 세운 이종기씨는 1990년 스코틀랜드 수도 헤리웃 와트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각지에서 모인 급우들과 함께하는 파티가 있었는데 주임교수의 제안으로 각기 자기나라의 대표명주를 가져와 시음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약재 침출주를 준비해가지고 갔는데 주임교수가 "이 술은 허브향도 있지만, 조미료 맛이 지배적인 것 같군"이라고 농담을 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계의 모든 술이 칭찬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의 술만 악평을 받은 것이다.


이씨는 “그 순간 세계의 모든 애주가들이 감탄할 만한 명주를 반드시 내 손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고향 집에 개인 연구소를 만들고,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원료로 양조 실험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 조달 가능한 원료들의 양조적성을 비교해 가면서 ‘어떤 와인을 만들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때 오미자가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가 원산인 오미자는 붉은 색조와 상큼한 신맛, 은근한 단맛, 매운맛의 허브향, 그리고 간간한 짠맛까지 지닌 과일로 그가 찾아 헤매던 와인의 원료였다. 2006년 말 그는 27년간 다니던 주류회사를 그만두고 이듬해인 2007년 영남대에 양조학과를 개설, 오미자와인 연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오미자 생산지 문경에 공장과 연구소도 세웠다. 2010년 말에는 오미자와인 제조 특허를 따냈고, 2011년에는 3년 숙성한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완성했다.


오미나라에서 이렇게 생산된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지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만찬주, 2014 ITU전권회의 개막만찬주로 선정되는 등 명성을 얻고 있다.


오미나라에서는 오미자와인의 생산 뿐 아니라 체험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오미나라를 찾으면 오미자와인 제조공정을 견학하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다. 이밖에 숙성된 오미자 와인을 병에 담고, 코르크 막기와 캡을 씌운 뒤 라벨을 붙여 나만의 와인을 만들어 가지고 가는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체험코스를 이용할 경우 소요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 정도이며 오미로제 스틸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중 한 종을 택일 시음을 할 수 있다. 참가비는 2만5,000원이며 5명이상 이면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오미나라 와인

 

출처 화폐와 행복 5+6, 『여행칼럼

글 우현석 서울경제신문 객원기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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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 떠나는 세계문화 여행-캐나다

혁신하는KOMSCO/화폐와 문화

화폐로 떠나는 세계문화 여행-캐나다

 

 

 

 

캐나다 20달러, 최장기념 재위 기념은행권(2015)

 

 

 

2018년 새로운 여성 초상화 등장?

 

 

 

 

 

193520달러, 엘리자베스 공주

 

 

 

 195420달러, ‘캐나다의 지형시리즈 은행권

 

 

 

196920달러, ‘캐나다의 풍경시리즈 은행권

 

 

 

198620달러, ‘캐나다의 새시리즈 은행권

 

 

 

200120달러, ‘캐나다의 여행시리즈 은행권

 

 

 

2012년 폴리머 20달러 은행권

 

 

 

2015년 최장기간 재위 기념 20달러 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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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화폐 대전환기가 온다]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이 말을 믿어야 하나?

윤석천의 <화폐 대전환기가 온다>

 

 

원래는 숨어있는 1인치 같은 인문학서를 주로 소개할 작정이었는데 또 1월 말에 나온 신간을 고르게 됐다. 아니, ‘이제 곧 지폐가 없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이 놀라운 소식을 지폐 찍는 조폐공사에 알리지 않을 재간이 없는 바, 이 책 표지의 부제가 앞으로 5년 세계 경제를 주도할 유동성 덫, 강달러, 현금몰락이어서다.

 

왠지 부제가 좀 부담스럽지만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이제 라디오의 시대는 갔다고 했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잘 살아 있으므로. 인터넷이 부흥하면서 신문사들이 모두 문을 닫게 될 거라고 했지만 웬걸? 모두 잘만 살아가지 않은가.

 

선대인 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과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 우석훈 박사 등은 재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들이다. 이 책 표지에는 그 중 선대인 소장의 이 책은 양적 완화, 금리 인상, 미국과 중국의 통화전쟁을 넘어 현금 없는 세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야를 넓혀준다는 추천사가 쓰여있다.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금리, 환율이란 말만 들어도 어려운데 도대체 양적 완화란 말에는 대책이 안 서 그냥 유명한 선 소장의 코멘트부터 이실직고하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 윤석천의 화폐 현상은 현대 경제를 이해하는 핵심 변수다는 말과 함께 아래 발언까지만 덧붙인다.

 

화폐로 비롯될 경제 축의 전환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반 발짝 나아가 내일이고, 또 하나는 한 발짝 나아간 미래다. 코 앞에 닥친 변화는 역사적 경험치로 봤을 때 적어도 2020년까지 지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열쇳말들은 이렇다. 화폐정책, 풍부한 유동성, 부채, 자산가격 급등, 거품, 거품 붕괴, 디플레이션, 경기 후퇴, 화폐정책.

 

이 열쇳말들은 앞쪽부터 잇따라 원인과 결과로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악순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 악순환의 덫에 걸렸다. 앞으로 5년 정도는 지속할 악순환은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읽을 때 비로소 독해가 된다.”

 

부채 슈퍼 싸이클, 달러와 위안 전쟁, 화폐경제와 자유 그리고 비트코인의 등장, 인간의 일자리와 기술의 대결 4장으로 짜였는데 바로 제 3장이 화폐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대부분은 지폐와 동전이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답은 정반대다. 우리는 또 세계는 아니 기득권은 현금을 없애려 하고 있다. 보통사람들 쪽은 편리성 덕에 현금을 멀리하고, 국가를 포함한 기득권(중앙은행) 쪽은 정치 또는 정책 목표를 위해 현금에 전쟁을 선포한 상황이다… … 현대 중앙은행은 마침내 금단의 영역이던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도 전에 반드시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현금을 없애는 것이다. 현금이 존재하는 한,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채택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금자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내 중앙은행이 손 뻗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금고에 보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뱅크런은 불가피하다는 게 저자의 역설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화폐 발행 권력이 있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공격일 뿐, 저자의 마지막 주장은 은행시스템 수술을 위해 화폐발행 권력을 국가가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된다. ◇화폐 대전환기가 온다=윤석천 지음. 왕의서재 펴냄◇

출처 화폐와 행복 3+4, 『최보기의 책보기

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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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제천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도시 - 제천

 

 

제천이 충북의 관광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6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올해의 관광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 잠재력이 큰 지방 중소도시를 3년간 체계적으로 지원해 관광중심지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제천시는 오는 2016년까지 총 625,0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관광콘텐츠와 상품개발 등 관광도시 만들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풍호와 박달재, 황사영이 백서를 썼던 배론성지부터 금수산까지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 봄이 오는 충북의 호반도시 제천을 찾아봤다.

 

박달재 = 반야월 작사의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로 유명한 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경계 짓는 산의 이름이다. 박달재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조선 중엽 경상도의 선비 박달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면서부터 시작된다.

 

한양으로 향하던 박달은 해가 저물어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 마을 처녀 금봉을 만나게 됐다. 첫 눈에 반한 두 남녀는 박달이 과거에 급제하면 함께 살기로 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공부가 시원치 않았는지 박달은 과거에서 낙방을 하고 말았다. 낙방을 한 박달은 볼 낯이 없어 평동으로 돌아 올 수 없었다. 금봉은 박달이 돌아오지 않자 상사병으로 몸져 누운 끝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사흘 후에 평동을 찾은 박달은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의 눈에는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박달이 쫓아가 금봉을 끌어안는 순간 그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고 사람들은 이곳을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고개 위의 박달재목각공원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박달과 금봉의 형상이 이곳을 찾는 객들을 맞고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박달과 금봉의 목각은 슬픔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해학적이고 유쾌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청춘 남녀의 못다 이룬 사랑이 깃든 박달재는 충주와 제천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로, 고개를 넘는 차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고개 아래로 터널이 생겨 박달과 금봉의 사연을 아는 이들만이 고개를 올라 박달재를 찾을 뿐이다.

이왕 박달재를 찾았다면 언덕마루에 있는 목각 공원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이 목각공원은 성각이라는 손재주 좋은 스님이 깎아 놓은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박달과 금봉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있다.

 

인근에는 고목의 속을 파내고 안쪽에 부처상을 조각한 목굴암(木窟庵)과 역시 고목의 속을 파내고 부처 제자들의 모습을 깎아 만든 오백나한전도 있어 들러볼 만 하다.

제천시 백운면 박달로 231

 

박달재 조각공원 옆에 있는 부처상을 조각한 목굴암(木窟庵). 딱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암자인 셈이다.

 

                  

목굴암의 내부 

박달재 조각공원에 있는 부처 제자들의 모습을 깎아 만든 오백나한전                                            

 

배론성지 = 배론성지라는 이름이 외국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곳의 지명은 인근의 주론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해발 903m 주론산(舟論山)의 주는 배 . 능선이 성지의 양쪽으로 흐르는 까닭에 이 곳이 배의 밑바닥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주교 역사에서 보면 이곳은 의미가 있는 곳이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이 성지 한 편에 있는 토굴에서 백서(帛書)를 썼고,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18211861) 신부의 묘가 있으며,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황사영이 숨어들어 항아리를 쌓아둔 뜰 뒤편의 토굴에 숨어 백서를 작성했고, 토굴 안에는 지금도 백서의 사본이 걸려 있다.

 

배론성지는 1958년 원주교구에 속하게 됐고, 원주교구장이 개발에 착수해 진입로를 비롯한 성지일원을 정리했다. 황사영이 백서를 썼다는 토굴과 옛 모습대로 재현한 신학교 등이 잘 복원 돼있다.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한옥 누각성당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피정의 집, 조각공원, 문화영성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043)651-4527

 

교동 민화골목

 

교동 민화마을 = 제천 향교가 있는 교동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침체된 골목에 활기를 불어 넣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추억을 안겨 주자는 취지에서 민화와 전래동화를 주제로 한 벽화를 그려왔다. 교동 골목에는 인간의 삶을 그린 어변성룡도, 소충도, 장생도, 화첩도, 평생도, 춘향이와 이도령, 소망길, 말타기, 추억의 놀이 등 150점이 그려져 있어 야외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제천시는 2016 올해의 관광도시 육성사업으로 관광두레인 교동민화마을협동조합의 자생적 발전을 위해 교동 골목 공방을 조성했다. 교동 골목 공방에서는 접시, 열쇠고리 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고 있으며 체험 행사도 즐길 수 있다.

 

제천산악체험장 = 액티비티를 즐기는 젊은이라면 제천 산악 체험장을 찾아볼 만하다.

기자는 이곳에서 난생 처음 서바이벌 게임을 해봤다. 총알을 장전한 공기총을 들고, 고글을 착용한 후, 편을 갈라 체험장에서 교전을 벌였다. 엄폐물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다 총알을 맞았는데, 고무총알이 터지는 순간 상당한 충격이 함께 전해왔다.

 

총을 맞고 경기장에서 쫓겨 나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다음 게임에서 총알을 장전하고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한 번 총알 맞아보니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대충 할 게 아니었다. 몸을 낮추고 발이 안보이게 달려서 적군의 우측에서 총질을 해댔다. 내 총에 맞은 해설사도 밖으로 쫓겨나면서 왜 죽은 사람에게 또 쏘냐!”고 성질을 냈다. 어렸을 적하는 전쟁놀이와 비슷한데 총알에 맞으면 붉은 페인트가 흐르는 등 박진감이 넘친다.

 

20123월 개장한 제천 산악체험장은 활동적인 레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추천할 만 한 시설이다. 마린타워, 스카이타워, 에코트랙, 팀빌딩 등 챌린지시설 45종과 스카이점프, 야자수, 스카이드롭(짚라인), 서바이벌 등 6종의 레저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에코레저스포츠 체험장이다.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무암계곡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레저스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금성면 청풍호로9100, (043)646-8785

 

청풍호 자드락길(정방사 코스) = 청풍호의 장쾌한 풍광과 금수산 자락의 수려한 산세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청풍호 자드락길은 청풍면 교리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해 수산면 상천리, 옥순대교, 괴곡리, 다불리, 지곡리를 거쳐 청풍호반 뱃길을 따라 옥순대교로 이어지는 총 58km 코스다. 자드락길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에 난 좁은 길이라는 뜻으로, 쉬지 않고 걷더라도 22시간 30분이 소요되며 7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2코스 정방사길은 능강교에서 시작해 정방사에 이르는 편도 1.6km의 길로 왕복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정방사는 금수산 자락 신선봉 능선에 있는 천년고찰로,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정방사 길은 해질녘 법당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청풍호의 물줄기와 이를 겹겹이 둘러싼 능선들 너머로 떨어지는 노을이 장관이다. 원통보전 뒤 절벽 틈의 석간수 또한 정방사길의 볼거리다. 이곳의 약수는 단숨에 갈증을 잊게 할 정도로 차고 달콤하다. 금수산 자락 신선봉이 청풍호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 위에 자리한 정방사는 신라 문무왕 2(662)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정방사는 662(신라 문무왕 2)에 의상대사가 도를 닦은 후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에 날아와 꽂혀,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법당과 칠성각, 유운당, 석조관음보살입상, 석조지장보살상, 산신각, 종각 등이 의상대라 불리는 암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포장도로가 나 있어 승용차를 이용할 수도 있으며, 걸어서는 50분 정도 소요된다.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 12165

 

청풍호유람선 = 청풍호는 1985년에 준공된 충주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다. 제천에서는 청풍호, 충주에서는 충주호라 불리는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담수량을 자랑한다. 청풍호가 자리한 곳에 흐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은 파수(巴水)였다. 청풍 사람들은 이 파수를 청풍강이라 불렀다.

 

청풍호는 면적 67.5제곱km, 평균 수심 97.5m, 저수량은 27억 톤에 달한다. 이중 제천시의 담수 면적은 발간 서적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호수 전체 면적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청풍호 주변에는 풍광이 빼어난 곳들이 산재해 있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비봉산과 청풍면의 진산인 인지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한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금수산이 있다. 이외에도 동산, 대덕산, 부산, 관봉 등의 명산들이 청풍호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로는 청풍호 활공장, 정방사, 옥순대교 전망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청풍 나루터에서 단양 장회나루 유람선은 뱃길로 52km, 왕복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제천시 청풍면 문화재길 54

 

금수산 = 금수산(錦繡山, 1,015.8m)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이 단풍 든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감탄해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게 됐다.

 

금수산은 북쪽으로는 제천 시내까지, 남쪽으로는 단양군 적성면 말목산까지 뻗어 내린 제법 긴 산줄기의 주봉이다. 주능선 상에는 작성산, 동산, 말목산 등 700800m 높이의 산들이 여럿이고, 중간마다 서쪽으로 뻗은 지릉에도 중봉, 신선봉, 저승봉, 망덕봉 등 크고 수려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남쪽 어댕이골과 정남골이 만나는 계곡에는 금수산의 절경인 용담폭포가 있어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할 수 있다.

 

남쪽 어댕이골과 정남골이 만나는 계곡에는 금수산의 절경인 용담폭포와 선녀탕이 숨어 있다. 상탕, 중탕, 하탕으로 나눠진 선녀탕에는 금수산을 지키는 청룡이 살았는데, 주나라 신하가 금수산이 명산임을 알고 산꼭대기에 묘를 쓰자 청룡이 크게 노해 바위를 박차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수산면 상천리 백운동에서 오르는 금수산은 그 시작부터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청풍호반을 끼고 들어서는 상천리 백운동 마을은 봄철 산수유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금수산은 북쪽의 망덕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져 능선 끝 지점이 머리를 치켜 든 사자처럼 뾰족하게 치솟아 있다. 망덕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암릉 여기저기에는 푸른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단풍이 들면 그 이름처럼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경치가 펼쳐진다.

 

용담폭포 안내석에서 등산로는 두 갈래로 갈리는데 왼쪽 길은 용담폭포를 지나 망덕봉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망덕봉구간은 입산통제구간으로 오른쪽 길로만 산행이 가능하다.

 

용담폭포는 안내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200m 거리에 있다. 넓은 암반 위로 30m의 물줄기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도 볼만 하다. 폭포 왼쪽 뒤로 이어진 암릉으로 오르는 길에는 제법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구간도 있다. 10분 정도 급경사 바위지대를 오르면 용담폭포를 굽어 볼 수 있는 전망대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올라서면 용담폭포와 폭포 위에 있는 선녀탕이 보인다.

 

등산로는 계속 가파른 암릉으로 이어지는데 암릉 곳곳에는 청풍호반과 월악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바위가 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망덕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의 가파른 암벽과 그 사이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이 절경을 이루고 그 너머로 청풍호의 모습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이 암릉에는 족두리 바위와 독수리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월악산 영봉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금수산 정상은 비좁은 암봉으로 쇠난간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는 금수산의 지봉인 신선봉과 동산이 능강계곡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월악산과 대미산, 백두대간이 지나는 황정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등산코스는 살바위고개에 오른 후 상천리 백운동으로 돌아가거나, 적성면 상리 상학마을로 하산하는 코스 중 선택할 수 있다. 상천리에서 용담폭포를 거쳐 정상에 올라 상학마을로 내려오는데 총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청풍문화재단지 = 남한강 상류에 자리한 청풍면은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지인 동시에,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78년 시작된 충주 다목적 댐의 건설에 따라 제천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수몰지역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한 곳에 모아 조성한 것이 바로 청풍문화재단지다. 청풍문화재단지에서는 제천 청풍한벽루(보물 제528),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 등을 포함한 문화재 53점을 구경할 수 있다.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제천맛집>두꺼비식당

제천에서 이름난 두꺼비식당의 대표 메뉴는 돼지 등갈비찜이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떡볶이 처럼 국물에 돼지갈비를 익혀 내는 요리다. 제법 매운 편인데 돼지갈비와 곁들인 가래떡과 버섯, 콩나물, 야채를 건져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외지에서 소문을 듣고 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양푼갈비 1인분에 1만원을 받는다.

의림동 51-12, (043)647-8847

 

맛집들

학현식당 : 백숙, 청풍면 학현리 276-2, (043)647-9941

잠박골가든 : 백숙, 청풍면 학현리 270, (043)647-3510

교리가든 : 매운탕, 청풍면 교리 30, (043)648-0077

황금가든 : 떡갈비, 청풍면 북진리 317, (043)647-6303

산아래 : 우렁쌈밥, 봉양읍 장평리 949-2, (043)646-3233

 

주변 숙소

청풍리조트 : 청풍면 교리 33, (043)640-7000

ES리조트 : 수산면 능강리 200-10, (043)648-0480

 

제천의 맛집 두꺼비식당의 매운등갈비

 

※ 한국조폐공사 모바일사보가 발행되고 있습니다. 동영상, 사진, 촬영 에피소드도 함께 감상해보세요~

 

Android 설치 바로가기 -> http://me2.do/5ctTqMLn


iOS 설치 바로가기 -> http://me2.do/x70vjK8c


모바일사보 화폐와행복 안내 http://komsco.tistory.com/433

 

출처 화폐와 행복 3+4, 『여행칼럼

글 사진 우현석 서울경제신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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