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와 행복'에 해당되는 글 28건

NOWKOMSCO 줌인 - 글로벌 조폐보안기업을 찾아서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조폐보안시장의 강자, De La Rue”

 

 

<기획 의도>

우리 공사의 비전(Vision)은 세계 5위의 조폐·보안기업(Global Top5 Minting & Security company).

우리와 세계 조폐보안시장에서 경쟁하는 선두 기업들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 그 기업들은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이 기사의 시발점이다. 세계 조폐보안 시장에서 단기간 내에 선두 경쟁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그들의 역사와 성장 배경 그리고 최근의 기업 활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첫 번째로 소개할 기업은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De La Rue이다. 이 회사는 화폐, 신분증, 보안인쇄물 및 인식 기기사업을 위주로 하는 조폐 보안 기업인데 우리 공사와 그 사업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그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그들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_History>

De La Rue(이하 DLR로 표기)1813년 영국 런던에서 Thomas De La Rue에 의해 신문인쇄 사업을 시작했다. 1853년에는 우표(adhesive fiscal stamp), 1860년에는 은행권(paper money)인쇄를 시작했다. 1921년에는 DelaRue 가문이 기업에서 떠나고 기업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재무부는 DLR에 영국 파운드화 인쇄를 맡겼으며, 1930년에는 중국정부로부터 은행권 인쇄를 수주 받아 18년 동안 공급했다. 또한 1939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인쇄 공장을 설립했다. DLR1947년 런던증권시장에 상장되었으며 1957년에는 지폐계수기 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에는 Amblehurst(후에 De La Rue Holographics로 개명)을 인수하여 홀로그램 사업을, 1995년에는 Portals를 인수하여 은행권 용지 사업을 진행했다. 2003년에는 영국 중앙은행으로부터 은행권 제조 운영권을, 2009년에는 영국 여권 공급 사업을 수주했다. 2013년은 기업 창립 200주년의 해였다.

 

<기업 개요>

DLR은 전 세계적으로 3,556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직원 구성을 보면 영국(19%), 유럽(10%), 북미(30%), 중동 및 아프리카(22%), 아시아(17%) 그리고 기타(2%)로 되어있다. 사업 분야는 크게 4개로 나뉘는데 Cash supply chain(은행권 관련 제품), Citizen identity(신분증 관련 제품) Product identity(인식기기 관련 제품) 이 있다. 매출액은 주로 화폐관련 사업에서 나온다.

 

 

구 분

관련 제품

매출액 비중(%)

화폐 관련

은행권, 은행권용지, 폴리머 용지, 기타 보안요소

72

신분증 관련

여권, 국가신분증, 출입국 관리 시스템 등

13

제품인증 관련

추적가능한 납세증지, 보안라벨 및 관련 시스템

8

인식기기 관련

지폐정수기 및 관련 시스템

7

 

De La Rue는 영국 본사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29개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14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경영 현황은 어떠한가?>

DLR 연차보고서에 밝힌 그들의 경영 실적은 다음과 같다

 

                                                                                        (단위 : million , 환율 1= 1,400원 적용)

연도

매출액

영업이익

세전순이익

2016

454.5

(6,363억원)

70.4

(985억원)

54.9

(769억원)

2015

422.8

(5,919억원)

69.1

(967억원)

40.6

(568억원)

 

 

 

 

 

 

영업이익율은 201516.3%, 2016년에는 15.4% 였다.

 

<그들의 미래 전략은 무엇인가?>

DLR2015년에 2020년까지의 향후 5개년 미래 전략을 수립했다. 목표는 Better business mix(사업간 통합 효율성 증대), Less volatile performance(경영 안정성 추구), Lower customer concentration(고객 분산), Higher quality earnings(순이익 증대)이다.

 

또한 3대 전략을 발표했다.

- Invest and Build 전략 :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폴리머, 보안요소, 신분증 사업)에 투자하라

DLR 매출액의 2/3, 영업이익의 70% 이상이 화폐관련 사업에서 나온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화폐사업은 변동성이 심하다. DLR은 화폐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신규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고객군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들이 새롭게 집중하는 사업은 폴리머 용지 사업이다. 또한 신분증 시장이 향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판단하여 이 사업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일부 고객에 집중된 매출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SPWs(State Print Works_조폐보안 공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 Optimize and Flex : 은행권 및 은행권용지 가격 경쟁에서 승리하라

전 세계적으로 은행권 생산설비가 남아돌고 보안요소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국제 입찰 시장에서 가격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DLR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은행권 생산라인 일부를 없애거나 통합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간 13million(187억원)의 비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Culture change : 역동적이고 성과위주의 기업 문화를 창출하라

향후 2020년까지 성과위주의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능력있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직원들의 리더쉽 역량을 향상시키고 내부 소통을 강화시킬 계획이다.

 

<Update News>

최근 1년간 각종 언론에 보도된 De La Rue 자료를 살펴보자.

De La Rue working on ePassport in smartphone<2016. 4. 1.>

영국의 데라루는 스마트폰 모바일 앱을 활용한 이동식 전자여권을 개발 중임.

De La Rue plans ‘one-stop shop’ ID expansion<2016. 5. 26.>

데라루ID분야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함

De La Rue launches DLR Identity for civil registration and vital statistics<2016. 8. 26.>

데라루s는 주민등록 및 통계관리 시스템 신제품 출시 발표함

De La Rue tapped for new Scottish note<2016. 10. 31.>

스코틀랜드 로얄은행(RBS)은 데라루의 폴리머 용지를 사용한 새로운 5파운드 지폐를 발행함

 

<자료 출처>

- De La Rue 홈페이지 : www.delarue.com

- 2016 Annual report of De La rue

Currency news magazine and ID & SECURE DOCUMENT

Security document world 홈페이지 : www.securitydocumentworld.com

 

출처 : 화폐와 행복 3+4 『NOW KOMSCO 줌인』 


글  홍보협력실 김길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신입직원-좌충우돌 조폐공사 입사기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빛나라, 내 청춘

- 세 번의 취업과 세 번의 사업

 

"엄마...”

"잘 안됐더나. 괜찮다. 기 죽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거라.”

"아니, 조폐공사 최종합격 했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이계원 사우. 오늘은 이계원 사우의 좌충우돌, 파란만장 한국조폐공사 취업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출전한 법정대회에서 2번의 수상, 4학년 1학기까지 학부 성적 1.

법대교수들은 이계원 사우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수차례 추천했다.

 

하지만 하루 빨리 사회로 나가고 싶었던 그는 4학년 2학기에 은행에 입행하게 된다. 그러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돌연 보험사로 이직을 했다.

 

왜 갑자기 보험사로 이직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연봉이 더 높아서요. 20대 때 회사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연봉이었습니다. 연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지만,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보험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서른 살이 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껏 30년을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 가슴 떨리는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동안 자신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무신경했다. 세상을 향해 뻗어있는 안테나를 조금만 더 나를 향해 집중시켰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길로 가기를 원하는지 좀 더 일찍, 그리고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직원을 제출했다.

뮤지컬 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 사직원을 제출합니다.” 라는 한마디 글과 함께.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공연기획을 배우고 관련 업계에 자리를 잡고자 동분서주 뛰어다녔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법학전공자가 금융권에 있다가 돌연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왔다라고 했을 때 업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무엇보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

꿈을 향해 떠난다는 그의 호기로움은 실패였다. 그리고 친구들의 결혼, 출산, 승진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는 초조해졌다. 공연기획자는 둘째 치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끝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가 생각한 돌파구는 중국이었다.

사실 그는 군 전역 다음날, 홀로 떠난 중국 텐진에서 과외로 시작을 해 학원과 옷가게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랬기에 중국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카페를 차리고자 한 달간 중국 광저우와 심천에서 직접 발로 뛰며 시장조사를 했다. 하지만 동업자와 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실내 인테리어를 하는 지인의 기사로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우기도 했고,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파는 중개상을 하려고도 했으며,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리려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고, 설상가상 스트레스성 원형탈모까지 와서 머리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올해 1, 모든 것을 재정비했다. 모든 하루일과를 공기업 준비에 몰두했고,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스터디를 통해 보완하며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참고로 조폐공사 면접 날, 기차에서 여동생의 눈썹펜슬로 하얗게 뻥 뚫린 뒤통수를 검게 칠하던 기억이 난단다.

 

이후, 스터디가 한창이던 스터디룸에서 비로소 한국조폐공사 인턴 최종합격 소식을 접했다. 아무 내색 없이 긴 시간을 믿고 지켜봐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그는 살면서 어머니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을 처음 봤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한국조폐공사의 의미는 남다르다.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정말 행복합니다. 누군가는 일찍이 자신의 길을 정해 묵묵히 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어느 길을 걸어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입사를 했지만, 그동안의 경험들이 한국조폐공사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꺼내보던 책이 있는데, 잠시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이 여행을 통해서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거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걱정 마. 네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좌충우돌, 파란만장 이계원 사우.

이제는 당당히 KOMSCO인이 되어 새 출발을 시작한 그에게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이계원, 더할 나위 없었다. YES.”

 

 

출처 : 화폐와 행복 9+10 『신입직원』

글  ID본부 이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KOMSCO 공감마당-동반성장 기업을 찾아서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우리 공사는 동반성장 중장기 로드맵에 의하여 2016년과 2017년을 동반성장 기반 강화의 해로 정하고 동반성장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시기는 동반성장 전사 추진기반 강화, 동반성장 성과평가 연계 확대, 성과공유제 기반 강화 및 중소기업 소통체계 활성화를 중점과제로 정하여 동반성장 인프라 및 역량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 우리 공사는 협력사와 소통의 첫걸음으로 협력사를 차례로 방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사보에 담고 우리 공사가 협력해야할 부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더 나아가 양사가 Win-Win 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고자 한다. 그 첫 방문으로 뜨거운 8월의 여름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갑우문화사를 찾았다.

 

갑우문화사는?

갑우문화사(이하 갑우)1993년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설립되어 성장을 거듭한 결과 현재는 인쇄, 출판, 기획디자인, 홈페이지/마케팅, 지류유통으로까지 사업 영역이 확대되어 국내 최대의 인쇄 설비를 보유한 굴지의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2009년부터는 한국조폐공사(이하 공사)의 공식 협력사로 선정되어 공사 제품의 일부를 위탁제조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품질인증 G7 Master(컬러인쇄 국제표준)를 획득하는 등 작지만 견실한 기업으로 아직도 진화중인 기업이다.

 

 

 

갑우가 보는 공사는?

갑우는 공사의 협력사인 것에 대한 프라이드와 자긍심이 대단하다. 갑우 홈페이지의 회사소개 메인 페이지 중앙에 한국조폐공사 공식 협력업체란 문구가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비록 갑우의 전체 매출에서 공사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전에는 넘볼 수 없었던 특수보안 인쇄 분야에 뛰어 들어 관련 기술과 설비를 갖추고 있다. 나아가 공사의 지원과 협조를 통해 특수보안 인쇄 기술력과 노하우를 습득하고 이를 통해 국가적 공익사업에 미약하나마 기여를 하게 되어 공사에게 감사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덧붙여 담당자분들과 같이 업무를 통해 교류를 해오면서 상생의 생각보다 협력자 혹은 조력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사에게 바라는 사항 3가지

월별 발주량의 특정기간 집중 해소 : 공사도 타 기업에서 납품을 받아 하는 사업이라 어려움이 많겠지만, 발주량의 특정기간에 집중되다 보니 인력이 추가 투입 되어야 하고 인건비가 추가 발생한다. 인쇄 산업에서는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인건비의 상승은 중소기업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월별 발주를 일률적으로 맞출 수는 없겠지만 특정기간의 집중이 조금이라도 분산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사제품 관련 해외 박람회의 참가 : 공사제품 관련 해외 박람회에 참가하여 갑우의 기술을 해외에 알리고 시장을 넓히고 싶다. 인력부족과 인프라활용 여력이 없어 해외 진출을 하고 싶지만 기회가 많지 않다. 따라서 공사를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의 기회를 만들고 싶다.

보다 많은 소통 : 지금도 소통은 잘 되고 있는 편이나, 협력 업체로서 업무로 서로 부대끼다 보면 어려움이나 애로가 발생하고 그런 점에 대해서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 협력업체와의 간담회나 워크숍을 좀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덧붙여 공사의 산업안전이나 산업보건의 인프라를 컨설팅 형태로 도움도 받고 싶다.

 

 

 

대표이사 실에서 1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최재혁 대표이사의 안내로 4층에 마련된 아담한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직지활자의 공정을 아기자기하게 담아놓은 전시물들을 보며 갑우가 인쇄에 갖는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곧바로 공사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동의 현장을 방문하여 ‘KOMSCO’로고가 찍힌 제품이 쌓여있는 모습에 야릇한 동질감을 느꼈다.

 

 

 

  최재혁 대표이사

 

출처 : 화폐와 행복 9+10 『KOMSCO 공감 마당』
글  최충호  사진 표길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녹색기업 터전 만드는 '성실'의 아이콘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늘 뛰고 있는 남자’


사내에서 이경용 사우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사우는 1997년 당시 옥천 조폐창으로 입사한 뒤 1998년 화폐본부로 자리를 옮겨 후생과와 인쇄처 등을 거쳐 2009년부터 환경관리과에 근무하고 있다.


‘나’를 알리기 위해 항상 큰 소리로 선배들에게 인사했다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경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현장과 사무실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사람, 먼저 배우고 아낌없이 가르쳐 주는 직원’이다. 보는 눈은 다 똑같은지 지난 연말 환경 업무 종사자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환경기술장 금강대장’에 선정되었을 때 동료들은 한결같이 ‘열심히 하더니 드디어 성과를 내는구나, 역시 이경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환경기술장 수상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취재를 준비하던 4월 초, 작심하고 덤빈 이사우가 또 한번 일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본부는 2013년부터 4회 연속 녹색기업 지정을 준비했으나 번번이 탈락하는 아쉬움을 맛보아야 했다. 올해 이사우가 주도적으로 ‘원단위 개선’에 공을 들인 녹색경영보고서를 만들고 일선 공무원과 환경 관련 교수진으로 구성된 평가단 PT까지 꼬박 석 달을 그야말로 ‘날밤 새우며’ 도전한 결과 지난 4월 2일 최종 선정되는 기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녹색기업 지정으로 우리 공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환경 업무를 담당하는 직장인에게는 최고의 성취 경험이 될 녹색기업 지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는데서 이사우의 자부심은 한 단계 올라선 듯 보인다. 이사우는 대표적 친환경 기업인 유한킴벌리가 녹색·사회적 기업 선언 후 ‘우리 강산 푸르게’ 캠페인을 통한 이미지 마케팅으로 매출 증가에 성공한 사례를 들며, ‘환경 투자는 장기적으로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유한킴벌리의 환경 경영을 현 시점의 우리가 되새겨 볼만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의 롤모델은 기업가로 존경받는 유일한 박사


이사우에게 환경 업무 종사자는 ‘착하면서 강한 기업 유한킴벌리 이야기’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어떤 마인드를 가졌느냐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당연히 결과물도 차이가 난다. 유한 킴벌리의 환경 경영은 ‘무조건 환경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방어가 아닌 선제적 준법’을 강조한다. 이사우에게 유일한 박사의 환경 경영 철학은 동기 부여와 함께 업무를 풀어가는 지침이 되어주었다.


과거에는 환경관리 업무 범위가 폐수처리에 국한된 면이 있었으나, 최근 관련 법이 강화되고 국민 의식 수준과 함께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로 법을 따라가기에 급급해서는 숨이 가빠질 수 밖에 없다.


법의 제재를 받기 전에 한 발 앞서 법을 지키고 더 발전된 방향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작지만 공사 발전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환경을 깨끗하게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환경 종사자의 임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성실재근

(成實在勤 : 성공의 열매는 부지런함 속에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제출할 과제로 가훈을 만들면서 ‘성실재근’이라는 말을 찾게 되었다. 이사우에게는 성공하기 위해서 성실한 게 아니라, 부지런하게 살았더니 성취가 따라오더라는 말로 통한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자식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가훈이 되었다. 좋은 직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좋은 가장이 되고자 일주일에 두 번은 아이들 학원 운전 당번을 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었고, 또 하루는 꼭 아내와의 데이트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환경기술인협회 회원들과의 네트워킹 기회도 주기적으로 만들고있다.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우리 공사 특성상 관련 업무 종사자와의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3년 전부터 꾸준히 계속해 왔더니 그 모임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 되고 업무는 물론 개인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조폐공사라는 틀 안에서 일하고 있지만 외부 환경인과의 쉼 없는 정보와 기술 교류를 통해 바깥 시스템의 80~90%는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Understand & Elite ? : 내 성장의 바탕


이사우가 일하면서 만나는 외부 사람들은 우리 공사 직원을 무조건 ‘엘리트’라 생각한다고. 스스로는 부족함이 많다고 느끼는데 상대방이 이쪽을 엘리트로 보아주니,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 공부했다. 외부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책과 법규를 파고 들면서 2013년에는 수질관리 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이사우의 장점은 대인관계를 잘 풀어내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건 자신을 먼저 낮추는 것, 이사우에게 모든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Under stand이다.


‘내가 남보다 아래에 서 있다’는 자세로 상대의 얘기를 듣고 공부한다, 그런 태도로 사람을 대하니 자연스럽게 서로 이해(understand)가 되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2015년 또다른 도전

“환경기술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강단에 서고 싶다”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 마다 체계적인 업무 지침서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그런 아쉬움을 바탕으로 작년에는 환경기술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출간에 공동개발자로 참여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쉴 틈 없이 과제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빡빡한 일정의 개발 회의가 매월 서울에서 열렸고, 자료를 작성하고 회의에 참석하느라 개인 휴가를 다 써버렸지만 후배들이 업무를 쉽게 익힐 수 있는 지침서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올해 중점 목표였던 녹색기업 지정을 1분기에 달성하고도 여전히 바쁜 일과 탓에 어려움이 많으나 여건이 주어진다면 후배들에게 실전 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 강의로 환경 업무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작년 환경기술대상 수상에 이어 이번에 다시 이사우를 만나자마자, 불과 반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사이에 또 한 계단 위로 올라섰구나 하는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취재를 위해 일하는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경용/또 업그레이드/성장/자신감’ 이런 키워드가 떠올랐다. 줄기찬 공부와 그렇게 얻은 지식과 자신감으로 어쩌면 이 사람은 자기 업무에서 일가(一家)를 이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적 느낌!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역량을 다 펼치고 개인의 성장이 곧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회사 내에 이런 ‘이경용’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화폐와 행복 5+6, 『환경 기술장 금강 대장, 이경용 사우

글 안선희 기자 사진 정미경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여행일기-중국 배낭 여행기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경비 100만원” 나이 50세. 중국어도 모름.

영어도 짧음(단어수준). 단신 배낭여행!


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작년 중국 윈난 성(곤명)여행에서 알게 된 중국현지 여행사 “김투어”를 만나면서 이번 여행이 시작되었다. 산과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차마고도, 호도협, 옥룡설산, 여강 고성을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동행자를 섭외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에게 여행사는 ‘말 한마디 않고 하는 중국여행’을 제안했고 이것은 나의 도전정신에 도화선으로 작용하였다.


1월부터 여행을 위해 저가항공권을 검색하여 왕복티켓(378,000원/1회 경유)을 구매하면서 여행계획을 수립하였다. 여행계획 세우고 두달 내내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도 다들 가지 말라고 권유하는 통에 더욱 내 맘은 불안하기만 하여 계속해서 여행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문제 없는 거지?” 그들의 답은 한결 같았다. “걱정 말고 오세요. 곤명공항에서 만나요.”


답답하기만 한 나는 핸드폰에 중국어 번역어플을 깔고 출발 일주일 전에 16개 국어 번역 칩을 구입하고 최소한의 짐으로 배낭을 꾸리고 집을 나섰다. 여행의 시작이다.


첫째 날(3월22일. 일)

김포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올라 2시간여 만에 북경에 도착하였다. 짧은 대기 시간 후에 다시 수속을 밟아 곤명행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 반 만에 곤명(쿤밍)에 도착하여 현지 여행사를 만나 세부적인 나의 일정을 확인하고 곤명시내에 있는 24시 사우나에서 1박과 석식, 조식을 해결하니 하루가 지났다.


둘째 날(3월23일. 월)

숙소에서 택시로 곤명 역으로 갔다. 역에 들어가면서 두 번의 검문검색을 하고 여권소지자(외국인 전용) 창구로 가서 사진으로 찍어둔 기차티켓 예약번호와 여권을 제시하고 기차표(1등침대)를 찾아 기차에 오르니 한 칸에 좌우 1, 2층으로 되어있는 침대칸이다. 8시간 반 만에 여강(리장)역에 도착하여 비엔바오(6인승 봉고) 차량을 찾아 내가 묵을 객잔 이름과 주소를 보여주고, 출발 30여분 만에 숙소(충일시장) 앞에서 내리니 여관 관계자가 나를 기다린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어야 하기에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이곳의 맛집으로 날 데려가 맛난 음식을 시켜달라 부탁을 하고 전화기를 건네주고 안내를 받아 시원한 맥주한잔과 맛난 저녁을 먹었다. 『다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


저녁식사 후에 리장 고성 여행을 나섰다. 온통 미로같이 복잡하다. 길을 잃을 듯하여 지나가는 곳의 특징적인 것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고성여행을 하고 객잔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이곳까지 온 것도... 고성안을 관광한 것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새삼 흐뭇하다.


셋째날(3월24일. 화) 차마고도 트레킹......

“따르릉” 알람이 울리고 객잔에서 아침을 먹고 객잔관계자의 손에 끌려 버스에 오른다. 두 시간 반을 달려 차마고도 입구인 교두정에 도착했다. 차량검문을 하고 입장료를 받는 여인과 남자 같은 여인이 올라와 나에게 여행사 사진을 보여준다. 헉! 내 산악 가이드다. 35세 호도협 거주 기혼 여성.. 남자 같다. 짧은 인사를 하고 트레킹에 나섰다. 큰 고개(두시간 소요)를 넘어 차마 객잔에 도착하니 점심이 걱정이다. 가이드와 손짓 발짓 끝에 볶

음밥과 맥주를 주문했다.(음식 시키기 정말 어렵다. 번역기 소용 없다.) 이번 트레킹의 가장 힘든 코스 28벤드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또 하나 큰 산을 넘어가니 우측으로 장엄한 옥룡설산이 꽉 차온다. 우와....... 이것이 5000미터급 산의 위용인가? 대단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이 한순간 가뿐해 졌다. 중도객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옥룡설산이 한눈에 꽉 차는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신다. “넋이 나간다고 말하던가!” 그냥 좋다. 이곳 중도객잔은 화장실이 유명하다. 화장실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옥룡설산이 다 들어온다. 세계에서 이곳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또 하루가 간다. 참 말도 안 되지만 여기까지 혼자 왔다.


넷째 날(3월25일. 수) 차마고도. 중호도협 트레킹......

새벽 4시 어둠속에서 잠을 깼다. 6시가 되니 밖이 환해진다. 창문을 여니 옥룡설산을 용 두 마리가 휘어 감고 있다. 구름이 마치 용 같다. 환상이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아침식사 후 트레킹에 나선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쉬운 코스다. 산허리를 돌고 도는 트레킹... 깍아지를 듯 한 절벽사이 길을 돌고 천 길 낭떠러지 돌길을 지나 진관폭포에 이른다. 이곳을 지날 때는 바위가 떨어질 위험이 많다. 산위에 사는 양이 돌을 굴려 위험천만하다. 조심하라. 빠르게 위험지역을 지나 티나 객잔으로 내려왔다. 티나 객잔에서 호도협이 보인다. 시원하게 맥주한잔을 마시고 짐을 맡기고 중호도협으로 내려갔다. 절벽길 사이사이로 내려가니 밀어닥치는 물길 소리가 내 가슴을 밀어버린다. 시원하다. 겁이 난다. 한참을 물길 앞에 앉아 여러 생각을 해본다.


다시 세 번을 쉬어 티나 객잔으로 왔다.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반, 가이드가 손짓을 한다. 버스를 타라는 것이다. 세대에 나누어 출발해서 호도협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아래로 절벽 끝 강이 흐르고 위로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바위들이 걸려 있다. 도로 중간 중간에 큰 바위가 길을 막기도 하고 길이 무너져 한 쪽밖에 없는 길도 있다. 그렇지만 강을 내려다보는 눈은 즐겁다. 다시 리장 고성으로 돌아왔다. 오후 6시 객잔에 짐을 풀고 빠르게 샤워를 하고 엊그제 못한 리장 고성관광을 하기로 맘먹었다. 고성이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을 찾기 위해 꼬치구이, 떡을 사먹으며 이리저리 골목골목을 누비었다. 어둠이 내린 고성은 또 다른 세계로 변신을 했고 요란한 음악과 춤, 많은 사람들, 한참을 걷다보니 길을 잃고 말았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니 그럴 만하다. 30분을 헤매다 북치는 여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 찾았다. 엊그제 사진을 찍어둔 곳이었다. 힘든 하루가 또 저물어 갔다. 결국 고성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은 찾지 못했다. 으으으


다섯째날(3월26일, 목) 옥룡설산, 운산평, 람월계곡, 백수하 관광

아침에 벨이 울리고 또다시 가이드가 손을 잡아 비엔바오차량에 날 태운다. 옥룡설산 관광 후 여강역으로 데려다 달라하자 30원을 더 달란다. 입구에서 입장료와 버스이용료를 내고 다시 이동하여 케이블카 표를 구입해 주며 날 맨 앞쪽으로 데려다 준다.(새치기.....미안했다. 중국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단다. 세 시간을 기다려 4500미터 옥룡설산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숨이 답답한 느낌이 들었고 다른 이들은 휴대용 산소를 흡입하고 있었다. 구름이 잔득 낀 설산은 정상을 볼 수가 없었고 만년설이 있는 빙천공원 또한 산행은 할 수가 없었다. 산행을 포기하고 운산평을 택해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올랐다. 전동차들이 기다리고 있으나 걸어가도 얼마 안 걸린다고 해서 걸어서 한 바퀴 돌았다. 약 4000미터 정도에 넓은 평야이다. 양과 말이 자연스럽게 풀을 뜯고 뒤로는 옥룡 설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숲은 이끼로 가득차 있고 나무들도 이끼 옷을 입었다. 밀림 속에 온듯하다.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입구로 나가는 버스 안에서 람월계곡과 백수하를 구경하였다.


아쉬움을 남긴 체 여강역으로 택시를 몰았다. 한 번의 검문검색 후 역안으로 들어와 기차표를 끊고 두시간을 기다려 기차에 올랐다. 특실이 없는 터라 문도 없는 일반석(3층으로된 침대칸) 이었다. 좁은 공간에 몸을 맡겨 8시간 반 만에 다시 곤명으로 돌아왔다. 죽을 맛이다.


여섯째 날(3월27일. 금) 귀국일

오전 8시 곤명 역에 하차하고 김투어를 만났다. 오후 한 시반 비행기라 곤명시내에 있는 금전을 관광했다. 곤명의 왕이라 부르는 사람의 사랑 전설이 있는 곳. 세계에서 동(銅)으로 만든 최대 건축물(집)이 있는 곳. 이곳을 잠시 들려 관광을 하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출처 화폐와 행복 5+6, 『여행일기

글 박영삼 제지본부 생산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KOMSCO 이모저모 '아빠가 미안해~'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출처 화폐와 행복 5+6, 『KOMSCO 이모저모

글 그림 서진원 영업개발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