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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최보기의 책보기 - 꽃의 제국

by 한국조폐공사 2016. 5. 18.

두뇌 없는 식물의 지구 정복기

 

 

강혜순의 <꽃의 제국>

 

 

 

 

 

동물의 세계가 있다면 식물의 세계라고 없을 것인가. 앞서 소개한 동물들은 그나마 두뇌라도 있다. 식물들은 두뇌도 없건만 그들의 세계는 동물들보다 훨씬 영악하고 치밀하다. 꽃들의 번식과 생존 전략에 빠지다 보면 창조주(조물주)나 신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 소개하는 꽃의 제국이 빠지다 보면 딱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이다.

 

식물의 세계를 다루는 책들 또한 많고 많다. 그럼에도 지난 2002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은 그만큼 발군이라서 그렇다. 식물학자가 아닌 독자의 눈높이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식물들의 치밀한 세계를 너무나 흥미롭게 잘 다룬데다 풍부하게 섞인 디테일한 사진자료가 또한 압권이다.

 

민들레는 바람이 불어 좋은 날 길게 목을 빼고 씨앗을 날려보낼 궁리를 한다. 민들레가 목을 길게 빼는 것과 공처럼 둥근 모양으로 씨앗주머니를 펼치는 것은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맞음으로써 씨앗을 골고루, 멀리 날려보내기 위한 전략이 숨어있다. 이렇게 바람에 의지해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의 수술로 날려보내는 꽃들을 풍매화라고 한다. 풍매화의 대표격인 참나무의 암술머리는 맨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점이다. 직경이 0.04밀리미터에 불과한 졸참나무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와 그 작은 점(암술머리)에 도착해 도토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은 경이를 넘어 신의 경지이다.

 

송홧가루가 날리는 5월이면 울진 불영계곡에는 노란 물이 흐른다. 수솔방울 하나가 약 10만 개의 꽃가루를 품는데 소나무 한 그루로 계산하면 꽃가루는 대략 10억 개에 이른다. 심지어 그 작은 꽃가루마다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고, 표면이 매끈매끈해 바람에 잘 날리도록 설계돼있다. 이것들이 일제히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 기껏해야 한두 개가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의 암술 입구에 이른다. 한마디로 소나무의 생존전략은 인해전술인 것이다.

 

 

 

인동초 꽃의 색깔이 수정 전의 흰색에서 수정 후 노란색으로 바뀌는 이유는 꿀벌에게 사기를 치지 않기 위해서다. 꿀벌의 도움으로 수정에 성공한 꽃은 더 이상 꿀을 생산하지 않게 되므로 벌에게 꿀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날개가 몸통보다 작은 곤충인 꿀벌은 초당 약 250 회에 이르는 날갯짓의 중노동을 감당해야 하는데 막상 도달한 꽃에 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럼 다음해에는 인동초에 꿀벌이 날아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남다른 꽃의 향기와 색깔, 모양, 영양가 등으로 수정 매개체들을 유인하는 식물들의 전략전술은 가히 신의 개입이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라는 감탄의 연발이다. 닭의장풀이 진짜 꽃밥 사이에 가짜 꽃밥 하나를 만드는 이유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동물이나 사람에게 과일로 먹힌 후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멀리 시집 보내는 것도 전략이고, 어성초의 독한 비린내는 동물의 시체를 좇는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흔히 못된 사람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 개만도 못한등등 를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애완에서 건강까지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개를 그렇게 홀대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짐승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꽃의 제국을 쓴 강혜순 박사는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그것을 경쟁적으로 치장하고, 드러내 자랑함으로써 종족번식을 꾀한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개보다 **, 꽃보다 못한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지.

 

출처 화폐와 행복 5+6, 『최보기의 책보기

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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