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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문화 속의 돈 이야기 -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by 한국조폐공사 2016. 5. 18.

 

 

대공황기의 고난과 엑소더스의 가능성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아메리칸 드림과 대공황기의 악몽

 

천혜의 자연 조건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으로 출렁댔던 나라, 그 미국의 꿈은 늘 황홀하기만 했던가. 당연히 아니다. 이미 20세기 초 업턴 싱클레어가 정글(1906)에서 묘파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경제는 애초부터 약육강식이란 정글의 법칙 위에서 이루어졌다. 정글에서는 큰 힘은 작은 힘을 먹고 더 큰 힘으로 자란다. 그 과정에서 온갖 물욕과 색욕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유진 오닐이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1924)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그 결과로서의 정신의 황폐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아메리칸 드림아메리카의 비극으로 추락하기 쉽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그 때문에 드라이저는 1925년에 아메리카의 비극을 썼다. 여기서 젊은 영혼들은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나머지, 타락한 돈과 욕망의 늪에 감염되고 만다. 진정한 사랑은 돈에 의해 잿빛 바다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러므로 아메리칸 드림은 영원히 고조될 수만은 없다. 실제로 그랬다. 영원히 고조될 듯 보였던 아메리칸 드림이 혹독한 악몽으로 곤두박질치던 때가 있었다. 바로 192910월 뉴욕 월가의 증권시장이 붕괴되면서 시작된 이른바 경제대공황(經濟大恐慌) 시절 말이다.

 

미국의 자신감과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은 이 대사건으로 말미암아 절망감과 당혹감, 분노가 미국의 거리를 유령처럼 배회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분노는 굶주림으로부터 찾아왔다. 공황 초기인 1930년에 4백만 정도이던 실업자가 1934년에는 세 배로 늘어났다. 빈곤이 전국을 휩쓸어 전 국민의 3분의 1이 비참에 빠졌다. 판자촌이 줄을 이었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기아 인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라델피아에 이르기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시카고의 거대한 도살장 같은 살풍경이었다. 농촌의 피폐화로 많은 농민들이 땅으로부터 뿌리 뽑혀 도시로 생존을 위한 대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20년대의 벼락경기시대를 마감하고 파산경기시대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의 행방은 요지경속이어서 가진 자들의 창고 속에서 썩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시절을 일러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극작가 아서 밀러는 모든 것이 다 고갈돼 버린 느낌이었다.”고 쓴 적이 있다.

 

흔히 대공황기문학은 경제·사·심리적으로 절망적인 투쟁을 겪는 와중에 놓인 국가의 시련을 나타내는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한 것으로 논의된다. 이 시절에 줄리아 워드 하우의 시 공화국 싸움의 찬가를 패러디하여 사람들의 눈에는 좌절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의 포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하고 그 포도 수확기를 위하여 알알이 더욱 무겁게 영글어 가는 것이다.”고 일갈했던 존 스타인벡은 당대의 어느 작가 못지않게 당시 삶의 경제적 공포와 혼란 상태에 관심을 가졌던 작가다. 현실의 정신적 무정부상태에 저항하고 비판하면서 인도주의에 입각한 인간 공동체의 총체적 인식에로 이르려 했던 그였다. 구약의 출애굽기에 대비되는 그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는 흔히 대공황기의 서사시로 불린다. 경제공황기 미국의 우울한 초상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한 대지주를 위해 10만이 굶주리는 황무지

 

오클라호마주 일대에 심한 가뭄이 닥쳐오고 황사가 대기를 뒤덮는다. 경작지가 황폐화된다. 땅에서 작물을 수확하기 어렵게 된 농민들은 은행 융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땅을 빼앗기게 된다. 은행은 그들에게 이윤을 먹고사는 괴물로 비춰진다. 이에 농민들은 생활 터전을 잃고 지주와 은행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풍요롭다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거기 가서 과일 따기 일을 하면 높은 임금을 준다는 광고문들은 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잿빛 황무지를 떠난 가난한 오키들의 행렬은 푸른 신천지를 향해 고난의 여정을 계속한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긴 여정이었다. “백만 에이커를 가진 한 사람의 대지주를 위하여 10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황무지 같은 현실에서 아직은 좌절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노동자를 대량으로 모집한다는 황색 광고문은 그들에게 말 그대로 희망의 지표였다. 열심히 일하면 작은 집을 짓고 밭을 갈아 포도를 맛있게 실컷 먹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도 그들에겐 푸른 신천지가 아니었다.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제공할 복락의 땅은 한 뼘도 없었다.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그러기에 당연히 생존 그 자체가 위태로운 형국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곳곳에는 길목마다 사람들로 들끓었다. 끌고 밀고 들고 일하고 싶어서 미쳐 있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한 사람의 손이 들어야 하는 짐 하나마다에 다섯 사람이 손이 뻗어 왔고, 한 사람의 배에 찰 만한 음식에 다섯 사람의 손이 뻗어 왔고, 한 사람의 배에 찰 만한 음식에 다섯 사람의 입이 벌려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굶주린 나머지 영양실조로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그럼에도 대지주들은 가격 폭락을 우려하여 오렌지 더미에 석유를 뿌려 썩게 하고, 돼지를 죽여 생석회를 뿌려 못 먹게 만든다. 그 어떤 대지주도 가난한 오키들에게 오렌지와 포도와 돼지고기를 적선하지 않았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품었던 희망도 한낱 사막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밖에. 희망이 자리했던 그들 영혼의 공간에는 대신 분노의 포도만이 가득히 영글어 간다.

 

 

<존 스타인벡>

 

진정한 출애굽 가능성은 어디에?

 

이 고난의 여정은 기아와 살육, 분노와 폭력, 파업과 투쟁, 좌절과 죽음으로 얼룩져 있다. 굶주림은 극에 달해 그들로 하여금 죽을 수밖에 없다고 절규하게 한다. 누구나 지적하는 것처럼 분노의 포도는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의 구조로 짜여 있다. 애굽에서 박해받던 가난한 사람들은 출애굽의 여행을 거쳐 복지 가나안에 이르지만 거기서도 원주민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마찬가지로 분노의 포도에서 심한 가뭄으로 인해 황무지와도 같은 척박한 오클라호마 땅을 떠난 66번 국도를 따라 희망의 땅이라고 기대했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지만, 거기서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게 박해받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엑소더스에의 가능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 물음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 소설에서 스타인벡은 영혼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가 즐겨 읽었던 에머슨의 대영혼 사상이나 휘트먼의 사해동포주의와 대중 민주주의와도 통하는 메시지들을 우리는 작가를 대리하는 케이시의 발화에서 읽을 수 있다. 나누어진 영혼들이 더불어 대영혼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케이시의 입장을, 감동적으로 환기하는 장면이 이 소설의 대단원을 이룬다. 기아 속에 허덕이던 샤론(들장미)이 사산(死産)하는 장면과, 그녀가 굶주린 노동자에게 자기의 젖을 물리는 장면은, 극적인 대조를 통해 대영혼의 실천적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웅숭깊게 보여준다.

 

계속된 허기와 고난으로 인해 태아를 사산하고만 여인이, 가장 고통스러울 그 여인이, 위로받아 마땅할 여인이, 위로받기보다는 남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여성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예외적인 실천을 하고 있다. 모르는 타인에게 여성의 가장 은밀한 부분이 젖을 물리는 것, 단순한 빵조각 그 이상의 생존을 위한 보시를 행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주체화된 타자, 타자화된 주체의 현현을 보게 된다.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인류 공멸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 심층 원인에는 바로 이 같은 타자애가 스며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죽임의 상황에서 살림에로 이르려는 엑소더스에의 강렬한 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다. 차원 높은 인간 항의나 사회 항의의 풍경이다.

 

대공황기의 대서사시

 

스타인벡은 톰 조드 일가의 대공황기의 수난 여행과 그 생존의 드라마를 통해 대공황기의 경제적 곤란과 모순을 생생하게 증거함과 동시에 그 난세를 견디는 생명력과 형제애를 서사시적으로 그려냈다. 조드의 스승격인 짐 케이시가 설교하는 위대한 영혼의 사상, 그의 사도인 조드가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위대한 인간애의 실현, 톰의 어머니의 영원한 모성상 등은 이 소설을 읽는이들을 감동의 자장으로 이끈다. 경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작 문제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타인벡은 사려 깊은 어조로 되뇌고 있다.

 

출처 화폐와 행복 5+6, 『문학 속의 돈 이야기

글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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