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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최보기의 책보기-지지 않는 대화, 동맹의 그늘

by 한국조폐공사 2016. 7. 25.

격론의 시대,

다카하시 겐타로의 <지지 않는 대화>

 

 

 

격론의 시대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말발과 글쓰기가 대세다. 대학입시나 대기업의 인재채용도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근면한 자에서 창의력을 갖춘 자로 바뀐 지 오래다. 창의력을 재보기 위해 대학은 논술, 구술에 입시사정관까지 두고 있고, 대기업의 면접기법도 복잡해지지만 알맹이를 까보면 결국 입심이다. 글이든 말이든 상대방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가 관건이어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호주머니 속의 송곳은 드러나게 돼있고, 진실이 결국은 이기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검은 돌을 힌 돌이라고 우겨도 먹히는가 하면, 힌 돌을 히다고 했는데 불합리한 사람으로 몰리는 일이 다반사다. 자신의 주장을 조리있게 펼치지 못하거나 상대방 주장의 오류나 허점을 간파해 지적하지 못하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최초로 민주주의를 발명했다는 그리스와 그 뒤를 이으며 오늘날 유럽의 뼈대를 갖추었던 로마 시대에는 대화나 연설을 기막히게 함으로써 상대나 대중을 설득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수사학, 변론술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는 물론 오늘날 같은 대중매체가 없어 육성으로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이뤄졌을 당시에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한 안건의 결정은 특정한 장소에 모인 특정한 사람들의 말싸움으로 이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남다른 변론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머리 속에 지식의 양도 중요했기에 기억술도 함께 발전했다. 그러다 동양에서는 고려의 직지심체요절, 서양에서는 쿠덴베르그의 금속활자가 나와 책이 대량으로 생산, 유통되면서 기억술은 사라진 대신 변론술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그런데 지금과는 환경이 많이 다른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변론의 대가일까? 그 답은 일본인 작가 시오노나나미의 명저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 쉽게 나온다. 당시 로마를 이끌던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아고라(광장)에 모여 수시로 격렬한 토론을 벌임으로써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아고라에서 아테네의 청년들을 향해 너 자신을 알라고 소리치다 악법도 법이다며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의 말발이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변론술>이라는 책으로 완성이 됐던 것이다.

정복왕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 교외의 리케이온 광장에 세운 학원에는 날마다 스승과 제자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이 넘쳤다. 그 제자들에게 읽혔던 책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이었는데 2300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론의 고전으로 우뚝하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고대 언어의 난해함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번역서마저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인 고전입문 집필가가 그 <변론술> 중 현대적 상황에 맞는 내용들만 간추려 번역한 책이 바로 <지지 않는 대화>이다. 정의와 진실이 끝내 승리한다지만 끝까지 기다리기엔 현실의 경쟁이 너무 급박하다. ◇지지 않는 대화. 다카하시 겐타로 지음. 라이스메이커 펴냄◇

 

전쟁은 이렇게도 일어난다,

오동선 소설 <동맹의 그늘>

 

 

실제상황1.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옥시 측의 의뢰를 받아 그 유해성을 알면서도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산 대학 교수가 5월 현재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만약 그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방분야에서 거대 무기판매 회사들의 의뢰를 받고 그들의 매출을 높여주기 위해 남북한의 긴장상태를 유발하거나 심지어 전쟁까지도 자극하는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발표하는 대학 교수는 없을까?

 

실제상황2. 이휘소 박사.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의 은밀한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글로벌 견제세력으로부터 교통사고를 위장한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재미 물리학자였다. 이 소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1993년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였고 또 이를 원작으로 1995년 정진우 감독 메가폰에 정보석, 황신혜 주연의 동명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소설은 현실의 표절이다. 단순히 현실의 겉 모양만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캐고 들어가 본질에 육박한다. 우리만 몰라서 그렇지 외국인들에게 전면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곳이 한반도다. 그만큼 남북한의 첨예한 군사적 갈등과 충돌도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사태가 무기제조회사인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그 주변의 이권 세력, 남북한의 무기회사 프락치, 그 어떤 기득권 세력들이 은밀하게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일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장편소설 동맹의 그늘은 바로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실의 뿌리를 파고들어갔다. 한국의 은밀한 핵실험 비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장편소설 <모자씌우기>의 저자 오동선 작가의 두 번째 팩션(팩트+픽션)이다.

 

<동맹의 그늘>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발되는 한반도의 긴장과 전쟁위험, 정정불안이 록히드마틴 사의 매출’, ‘주식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그늘이다. 무기회사의 대명사 격인 록히드마틴과 무기회사 투자 전문회사로 남한의 실세(?)들이 몰래 설립한 유로퍼시픽아이즈 두 회사를 축으로 얽힌 국제 무기판매그룹과 여기에 설킨 남북한의 권력가, 매파 학자 등 프락치들이 벌이는 위험한 도박의 실체를 밝힌다.

 

소설은 천안함을 연상시키는 한백함 폭침과 핵실험에 따른 군사적 긴장 끝에 경제제재로 고통 받는 북한 내부의 쿠데타와 김정은 정권의 붕괴에까지 이른다. 다행인 것은 작가가 북한에는 민중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 혁명세력이 전면에 등장하고, 남한에서는 개인의 사익을 위해 전쟁놀음도 불사했던 군산복합체의 프락치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한반도에 새로운 희망이 솟는 것으로 소설의 끝을 그렸다는 것이다.

 

작가는 물론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 그것이겠지만 그 전제조건이 남북한의 현명한 국민과 지도자들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분명한 메시지다. 그런 차원에서 주인공 한민우의 마지막 발언은 한반도의 리더와 국민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침이다.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우리 민족에게 자주평화통일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거야… ... 이번 사건은 글로벌 군산복합체들의 음모를 남북이 스스로의 힘으로 보기 좋게 무너뜨린 중대한 사건이기도 하니까!” ◇동맹의 그늘. 오동선 지음. 모아북스 펴냄◇

 

출처 : 화폐와 행복 7+8, 『최보기의 책보기』
   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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