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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헬로우무비 : <덩케르크>와 <군함도>를 위한 변명

by 한국조폐공사 2017. 10. 24.


<덩케르크>와 <군함도>를 위한 변명 


영화적 완성도가 늘 흥행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택시운전사>(장훈 감독)가 개봉 19일째인 8월 20일을 기해 ‘천만 고지’를 넘었다. 서울의 한 택시기사(송강호 분)와 한 열혈 독일 저널리스트(토마스 크레취만)의 외부적 시선으로, 1980년 5월 20일과 21일 이틀간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문제적 초상화이자 감동의 휴먼 드라마. 영화는 <부산행>(연상호)에 이어 1년여 만에 한국영화로는 15번째, 외국영화까지 포함하면 19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장편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2008)부터 <의형제>(2010), <고지전>(2011)에 이르기까지 거푸 크고 작은 안타를 때렸던 감독은 영화적 멘토 격이었던 김기덕과의 ‘불화’(?)로 한 동안 영화 연출을 삼가다, <고지전> 이후 6년여 만에 선보인 컴백작으로 만루 홈런을 날렸다. 그것도 역사적 의의 등에서 한국영화사에 길이 빛날 기념비적 문제작으로. 



그에 반해 <택시운전사> 이상의 큰 기대를 모았던, 올 여름의 으뜸 두 화제작 <덩케르크>와 <군함도>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흥행 성적에 그쳤다. 3백만과 7백만 선에도 미치지 못한 것. 사실 <덩케르크>의 수치는 예상한 바다. 제목부터가 낯설다. 파리 북쪽 270km, 프랑스에서 가장 북쪽이라는 노르파드칼레(Nord-Pas-de-Calais) 주 노르 데파르트망에, 벨기에 국경에서는 14km 지점에 위치하며 도버 해협에 면한 도시 명―정확히는 ‘됭케르크’로 표기된다―이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아르덴 고원을 넘어온 독일군에 포위당한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영국으로 탈출했다는 그 역사적 장소를 알고 있는 이들이 이 나라에 얼마나 되겠는가. 아이맥스 마케팅 전략도 큰 패착이었다. 전국적으로 20개도 채 안 되는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그것도 용산CGV 아이맥스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갔으니, 숱한 비 아이맥스 상영관들이 파리 날리는 것은 당연했다.  



<군함도>의 경우는 2,000개라는 상징적 수치를 넘음으로써 제기된 스크린 독과점 논란과, ‘일본=가해자, 한국=피해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해체시킨 복합적 플롯 등으로 인해 야기된 별 설득력 없는 ‘친일 프레임’ 등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감독의 전작 <베테랑>이 1,340여만 명에 이르는 대박을 터뜨려서는 아니다. 개봉(7월 26일) 첫 주말을 지나며 이미 400만을 돌파해서만도 아니다. 영화의 화제성은 말할 것 없고, 단연 주목할 만한 영화 텍스트적 수준을 감안할 때 <군함도>의 스코어는 의외를 넘어 충격이다. 



위 두 대작의 흥행 실적은 지극히 평범한 명제를 새삼 환기시킨다. 텍스트의 완성도가 으레 흥행에 비례하는 건 아니며, 상영 여건 등 콘텍스트적 요인들이 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덩케르크>와 <군함도>는 최상의 완성도를 구현했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안다. 완성도와 연관해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인정을 받은 <덩케르크>와 달리 <군함도>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지가 많다는 것쯤은. 가령 평론가 강유정은 경향신문 8월 4일 자 칼럼 ‘친일, 작품과 사람 사이’에서 <군함도>가 던진 쟁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나 완성도에 관해서는 혹평을 넘어 악평을 쏟아낸다. “류승완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낙제점을 줄 만하다”고.     



관객들의 감상처럼 평론가의 평가는 취향·지향 등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기 마련인지라, 강유정의 악평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완성도의 사전적 정의가 ‘어떤 일이나 예술 작품 따위가 질적으로 완성된 정도’를 뜻한다고 할 때, 대체 그가 말하는 미학적 완성도가 어떤 걸 의미하는 지를 종잡을 수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가 원하는 질적 수준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군함도>같은 ‘웰-메이드 대작’의 완성도를 그렇게까지 폄하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강유정과는 정 반대의 입장이다. 전작 <베테랑>만큼 극 전개가 유려하진 않고 극적 쾌감이 통쾌하진 않아도, 질적 완성도에서만큼은 <군함도>가 우세하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재제나 주제 면에서는 <군함도>가 더 큰 함의를 띤다고 여긴다. 재미로만 치자면 <베테랑>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재미와 의미 결합이라는 측면에서는 <군함도>가 압도한다고 할까. 단언컨대 <군함도>는 가시적이자 동시에 비가시적 덕목들이 즐비한 수작이다. 선정적으로 평하자면, “5점 만점에 4점을 주면서도 5점을 능가한다”는 게 내 총평이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현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하시마(端島)란 섬, 군함도의 역사적 사실에 ‘탈출’이라는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영화다. 지옥도로 불리기도 한 군함도는 남북으로 480m, 동서로 160m, 축구장 2개만한 크기의 인공 섬으로 섬 전체가 탄광이며 갱도는 해저 1,000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 전쟁 이후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을 당했는데, 영화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군함도에 끌려오게 된 평범한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 가는 과정을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비장하게, 페이소스 짙은 휴먼 액션 드라마로 펼친다. ‘끌려온 이유와 살아남는 방식은 달랐지만, 군함도라는 지옥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았던 조선인들의 탈출기는 인물 각자의 사연이 더해져 가슴 아픈 감동을 만든다.’는 자료의 전언은 과장이 아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후 ‘이미지와 사운드의 몽타주, 플롯의 완급 조절, 결정적 한방의 적절한 배치 등에서 최상의 영화적 수준을 구현한 웰-메이드 시대극’이라고 단평했는데, 일반 상영관에서 한 번 더 본 뒤 그 단평은 더 유효해졌다. 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영화는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포스트-팩션 영화'의 어떤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단점마저 장점으로 둔갑시키는 감독의 대범한 개인기에 감탄했다. 그런 유의 팩션 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문제적 시대극으로 손색없다. <암살>(최동훈), <밀정>(김지운), <명량>(김한민) 등 근자에 만들어진 국산 시대극들만이 아니라 <베테랑>, <7번방의 선물>(이환경),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트 베니니), <폭력의 역사>(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같은 현대물들의 장점들까지도 두루 잘 녹여냈다. 



부분적 어색함에도 불구, 군함도라는 역사적 사실에 주눅 들지 않고 거대 담론을 개인화하는 데까지 감독의 대담함에 박수를 보내련다. 신파로 흐를 법한 지점에서도 신파를 거부하며, 관객들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혹 일말의 건조함이 느껴진다는 그래서일 공산이 크다. 더 나아가 <베테랑>이나 <베를린> 같은 전작들과는 달리, 류승완적인 비 대중적 화법으로 영화 속 가슴 아린 사건·사연들에 일정한 거리감까지 부여한다. 그리고 이른바 ‘애국 코드’에 전혀 호소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정도면 가히 ‘거장’의 경지다. 



극적 화법이 비대중적이긴 상기 철수작전을 극화한 <덩케르크>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포위된 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잔교에서의 일주일과,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항해하는’ 바다에서의 하루, 그리고 ‘적의 전투기를 공격해 추락시키는 임무, 남은 연료로 비행이 가능한’ 하늘에서의 한 시간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공포와 스펙터클과 허무함 등을 오가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의아한 건 영화를 관통하는 일련의 애국 코드다. 류승완이 거부한 그 코드를 3살 선배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예 대놓고 활용한다. 그런 게 처칠로 대변될 일종의 ‘브리티시 스피릿’이란 걸 웅변하듯이. <메멘토>부터 <인터스텔라>에 이르기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런 걸 목격한 적이 없기에, <덩케르크>는 의아함을 넘어 신선한 충격이다. 



비 대중영화적 화법, 대중영화의 개인화, 감독으로서의 자의식 및 야심 등에서 <덩케르크>와 <군함도>은 이란성 쌍둥이로 다가선다. 흥미롭게도.  




출처 : 화폐와 행복 2017 9+10 『헬로우무비_<덩케르크>와 <군함도>를 위한 변명』 

 

글 : 전찬일(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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