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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화폐디자인 칼럼 - 한국

by 한국조폐공사 2017. 2. 9.

화폐로 보는 세계의 전통의상 

한국

 

최후의 한국 왕조인 조선은 나라를 통치하는 공식 이념으로 불교를 버리고 새로운 유교(주자학)를 받아들였다. 이 제도는 사회 지위의 세습적 성질, 즉 각 집단과 성()의 고정된 지위를 강조했다. 그 결과 계급에 따라 다른 옷을 입도록 하여 옷을 입는 사람의 신분을 이전보다 더 확연하게 반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양반 여성들은 외출 시 장옷이라는 쓰개를 머리 위에 써서 얼굴을 가렸다. 비슷한 상황에서 일반 평민 여성은 챙이 넓은 모자를 햇빛 가리개로 썼다.

 

 

<신윤복, 월하정인, 조선시대>


 

남성과 여성의 기본 의복

서양의 경우 인체 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차이를 규격화된 크기로 재단해 가능한 한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들려고 하는데 반해, 한국에서 옷을 짓는 방식은 서양과 전혀 다르다. 한복은 어떤 크기의 몸에라도 둘러 입을 수 있으며, 고름이나 끈으로 고정해 옷 모양새를 마무리한다. 결과적으로 여성 치마의 경우 허리둘레나 특정 길이를 잴 필요가 없다. 모든 치마가 한 크기밖에 없어도 간단히 허리끈을 조금 더 조이거나 혹은 느슨하게 입는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기가 딱 정해지지 않는 의복 구성 방법은 남성과 여성의 상의인 저고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저고리는 앞을 여미기 위해 한쪽으로 고리를 묶어 매듭짓는 고름을 달아 간단하게 몸에 맞출 수 있다, 저고리는 양팔과 몸통을 감싸며 앞을 여는 형태로 된 한봇을 윗옷을 말한다.



<저고리, 오만원권(2009)>


<여자 저고리의 명칭>

 

<남자 저고리의 명칭>


겉옷

남성의 경우 두루마리를 비롯해 겉옷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18세기 풍속화에서 평민, 학자, 관리, 그리고 양반 모두 가장 빈번하게 입었던 겉옷은 바로 도포였다. 주로 하얀색을 입고 특별한 때는 옥색 도포를 입기도 했다. 도포는 넓은 소매, 좁은 수구, 펼쳐진 아랫단과 덧자락이 달린 뒷길이 특징이며, 세조대로 가슴을 묶었다. 겨울에는 실크나 면 소재, 여름에는 모시나 풀을 먹인 빳빳한 사로 도포를 만들어 입었다. 또한 평상시 사대부들은 크고 불편한 갓 대신 닭 벼슬 모양의 정자관을 쓰고 지냈다. 지위가 높을수록 크고 높은 정자관을 썼으며, 한복의 윗옷 인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후 그 위에 도포를 입어 자신의 지위와 기품을 과시했다.

 



<사대부의 정자관, 도포, 오천원권(2006)>

 

헤어스타일과 머리장식

여성 기생들은 긴 머리를 굵게 땋아 기발하고 매력적인 방법으로 머리를 치장했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들은 머리를 뒤로 모아 매끄럽게 묶어 쪽을 지었다. 그리고 상류층의 여성은 외출할 때 머리를 항상 조심스레 가렸다.

남성들은 전통적인 머리 모양인 상투 위로 작고 테가 없는 검정색 말총으로 된 탕건을 썼는데, 이는 뒤에 불룩하게 올라온 부분이 있어서 상투를 제자리에 놓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탕건은 집에서만 착용하는 내관과 같은 것이다. 전정한 한국의 외출용 모자는 갓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할 즈음인 14세기 말부터, 말총으로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짠 것이 남성 복식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갓의 넓고 쫙 펴진 챙 위로는 원통의 상자처럼 생긴 중앙부를 세웠다. 갓을 머리 위에 고정하기 위해서 남성들은 말총으로 만든 띠인 망건을 이마 둘레에 매어 착용했다. 특히 유생들은 뒷부분의 길게 늘어진 검정색 모자인 복건을 쓰고 옷의 가장자리에 검은색 비단을 두른 하얀 심의를 입었다. 복건과 심은 주자학으로 유명한 유학자 주의가 가례라는 책에 기술한 이후 유생의 상징이 되었다. 명절이나 돌에 남자 아이들이 한복과 함께 복건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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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의 복건 및 심의, 천원권(2007)>

 

또한 조선시대 임금은 선정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긴 익선관을 쓰고 왕을 상징하는 용이 그려진 곤룡포를 입었다. 신하들은 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었는데 품계에 따라 입는 옷의 색깔과 무늬가 달랐다. 왕은 곤룡포를 입을 때 익선관이라는 모자를 착용했다. 익선관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뿔이 두 개 달렸는데 매미는 유교에서 어진 정치를 상징하는 곤충이다. 곤룡포는 왕이 소규모의 생사를 참여하거나 일을 할 때 입었던 옷으로 가슴과 어깨 부분에 용이 그려져 있다. 또한 왕이 돌아가신 뒤에는 수의로 썼다.



<유학자의 복건 및 심의, 천원권(2007)>

 

또한 조선시대 임금은 선정을 베풀라는 의미가 담긴 익선관을 쓰고 왕을 상징하는 용이 그려진 곤룡포를 입었다. 신하들은 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었는데 품계에 따라 입는 옷의 색깔과 무늬가 달랐다. 왕은 곤룡포를 입을 때 익선관이라는 모자를 착용했다. 익선관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뿔이 두 개 달렸는데 매미는 유교에서 어진 정치를 상징하는 곤충이다. 곤룡포는 왕이 소규모의 생사를 참여하거나 일을 할 때 입었던 옷으로 가슴과 어깨 부분에 용이 그려져 있다. 또한 왕이 돌아가신 뒤에는 수의로 썼다.


 출처 : 화폐와 행복 1+2 『화폐디자인 칼럼』 


글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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