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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문화 속의 돈 이야기 - 도둑일기

by 한국조폐공사 2017. 4. 3.

탐욕의 가속도와 무반성적 배금주의

-김용성의 도둑일기

 

우찬제(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한겨울에 반팔 패션으로 실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다지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경향이 늘어났다. 세상의 에너지를 인공적으로 조작하여 겨울을 여름처럼 보내고, 여름을 겨울처럼 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이다. 십 수 년 전이었을까? 어쩌면 더 오래 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반팔 차림으로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라마에 비쳤을 때, 나는 주는 것 없이 어떤 노여움으로 부글거렸던 적이 있다. 모름지기 여름은 여름답게, 겨울은 겨울답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 시골 출신 촌놈의 소박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신이 선사한 자연을 거부한 채 인공 자연을 제 마음대로 즐기며 순리를 거스르며 살아도 좋은 것인지, 회의가 앞섰던 터이다. 자연이든 문명이든 인간들이 이기적으로 사용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상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론하고, 기후 변화나 환경 정의 문제를 심층 생태학적 측면에서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공정성이나 윤리적 측면에서의 정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겨울 반팔 패션은 숙고의 여지가 많다. 인공 자연 속에서 한겨울 반 팔 패션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추운 겨울엔 역시 추위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또 아직도 여전히 추위에 떨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숙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우리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고생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해야 되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대뜸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 인생 내가 즐기겠다는데, 왜 구질구질하게 남 생각하고 또 지난 시절을 생각해야 되느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나름대로 이유 있는 반문일 수도 있겠으나, 글쎄……


생존, 그 자체가 문제였던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 한 대목을 펼치려 한다. 한국전쟁 동안 고아가 되었던 삼형제의 험난한 생존기다. 바로 김용성의 장편 󰡔도둑일기󰡕의 이야기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마저 폐병으로 죽어간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가난하고 힘들더라도 도둑질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유언으로 남겼다. 삼형제는 어머니를 겨우 방공호에 묻고 겨우 연명하다 고모를 찾아간다. 그런데 설날 세뱃돈에 불만을 품은(자기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돈이 삼형제에게 나뉘어져 자기 몫이 줄어든 데 대한 불만) 고종사촌 동생이 나는 쟤들이 싫단 말이에요. 밥벌레들이에요. 고아원이나 보내세요!”라고 말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삼형제는 고모 댁에서 나오기에 이른다. 큰 아이라고 해봐야 고작 열다섯밖에 안된 터였다. 추운 겨울에 이 삼형제의 살 길이 막막한 것은 차라리 당연했다. 하고보니 형은 어머니의 유언을 배신한 채 도둑질에 나선다. 목적이 좋으면 도둑질도 상관없다는 것이 형의 지론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니콜리코프를 어설프게 흉내 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형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립을 하고 동생들을 공부시켜주고 싶었다. 형은 구두닦이 통을 만들 나무를 훔치고, 막내 성수는 구두 닦을 우단을 성당에서 훔친다. 이렇게 한겨울 에는 바람 속에서 어려운 구두닦이를 시작한다. 이 겨울바람 속에서 삼형제의 각기 다른 생존 방식이 우리로 하여금 몇 가지 상념에 젖게 한다.


구두닦이 형은 미군부대를 출입하며 구두를 닦아주면서 갖가지 군용품들을 훔쳐낸다. 계속해서 형은 직업적이고 전문적인 도둑질을 하게 된다. 서울역에서 석탄과 코크스를 훔치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수집하는 장사꾼이 되어, 서대문 근처 폐허의 땅에 소규모 철조망을 치고 사무실이 달린 판잣집을 짓는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형은 서울종합물산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고, 사업을 점차 확대시켜 나간다. 나이 스물이 될 무렵 형은 수집상이나 잡목판매소에서 탈피하여 어엿한 목재상을 경영할 수 있게 된다. 둘째인 중수는 형의 배려로 초등학교(현 초등학교) 6학년에 복학한다. 형은 자신은 돈을 버느라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동생이 열심히 공부해 법관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생 중수는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문과대학에 입학한다. 셋째, 성수는 또 다르다. 구두닦이를 하려고 구두 닦을 우단을 훔치려 성당에 갔을 때, 훔치다 신부에게 들킨 성수는 한 시간 후에 일 년 닦을 우단 조각을 가지고 나왔던 적이 있다. 또 전방 미군부대를 전전하던 무렵 잠자리를 찾아 빗속을 헤매다 신부의 도움을 받던 날에도 성수의 구두통 속에는 새 성경이 들어 있었다. 그는 도둑질해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차라리 성당에 갈 것이라며 큰형의 도둑질을 반대했던 아이다. 형들과는 달리 종교적 인연이 깊었던 성수는 그 후 신부를 돕는 복사(服事)가 되어 교리를 배우게 된다. 그러자 차츰 부모 없는 고아의 가위눌리고 찌든 얼굴 표정이 사라지고 순진하고 맑은 표정의 얼굴을 가지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성수는 종교의 길 위에서 난세를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침내 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소설 󰡔도둑일기󰡕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둘째 중수의 시선에 의해 이야기된다. 이 말을 달리 하면, 그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내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생존 방식을 중간 입장에서 차분히 보고하고 있다는 얘기다. 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심지어는 도둑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형은 돈벌이나 결혼 등 삶의 모든 국면에서 야망 혹은 탐욕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 야망이나 탐욕이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치명적으로 갉아먹는지를 그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우선 그에게 급한 것은 우선 돈이었다. 물론 처음엔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 가면 그 이상의 제동 없는 야망으로 치닫는다. 욕망의 악무한(惡無限)이라고나 할까.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형의 성격 파탄의 단면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정하게 성공한 형은 중수와 함께 신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성당에서 우단을 훔치는 일에서 시작하여 이만큼이나마 잘 살게 된 것을 감사드리기 위해서였다. 형이 신부에게 용서를 빌고 덕지덕지 땜질한 소파를 바꿔주려고 했을 때, 신부는 사양하며 추운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진정한 보답이라고 말한다. 형은 돌아오면서 격앙된 어조로 말한다. 못살게 되는 것은 게으른 탓이고, 그런 자는 죽든지 죽기 싫으면 도둑질이라고 해서 잘 살든지 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이런 형의 태도에서 동생 중수는 새삼 그 위험성을 발견한다. 탐욕의 가속도를 즐기던 형은 결국 징집되어 군대에 끌려가는 것으로서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는 내 인생이 막 꽃봉오리를 맺을 시기에…… 빌어먹을!”하고 원통해 했지만, 동생들은 이렇다 할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다.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형의 대안에 막내 성수가 자리한다. 거친 생존의 현실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형 한수의 무반성적 배금주의와는 달리 막내 성수는 종교를 통해 자신을 삶을 반성하고 진정하게 정화해 나가는 인물이다. 비록 성수의 태도가 이 작품에서는 현실도피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형 한수의 삶이나 태도를 되비추어 보게 하는 아주 중요한 거울 구실을 한다. 무반성적 배금주의자인 형과 종교적 탈속주의자인 동생 사이에서 둘째 중수는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일지에 대해 오랫동안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형 한수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항변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세의 생존 방식이 다 그러하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악무한(惡無限)의 이리 상태에 다름 아니게 될 터이다. 우울한 잿빛 풍경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수 같은 도둑이 통하는 시절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큰 도둑, 작은 도둑 할 것 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긴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느냐고 물었던 󰡔장자󰡕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또 꼭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만 도둑이 되는 게 아니라는 󰡔명심보감󰡕의 가르침도 새삼스레 되뇌어진다.


곡식이 익었을 때 거두지 않는 것, 쌓는 것을 마치지 못하는 것, 일없이 등불을 켜놓고 잠자는 것, 게을러 밭을 갈지 않는 것, 공과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극히 꾀 있고 해로운 일만 하는 것, 계집 기르기를 많이 하는 것, 낮잠 자고 게을리 일어나는 것, 술과 음식을 탐내는 것, 심히 남을 시기하는 것이 열 가지 도둑이다.”

새 봄을 맞으면서 혹시 내 안의 또 다른 도둑이 없는지 한 번쯤 곰곰이 성찰해 볼 일이다.


출처 : 화폐와 행복 3+4 『문화 속의 돈 이야기』 


글  우찬제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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