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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가족의 재발견 - 신입사원 김현준 사우네

by 한국조폐공사 2016. 3. 19.

 

철없던 어린 시절
김현준 사우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다. 수시로 경기를 일으키고 탈장 수술을 하는 등 부모님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어머니 백순득 씨는 현준이가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에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김현준 사우는 대구공고에 떨어지고 인문계인 칠성고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 돌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김현준 사우는 큰 충격에 빠진다.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입학 2주 만에 조일로봇고로 전학하게 된다. 스스로 내린 과감한 이 결정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로 꼽는 김현준 사우는 전학 후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자격증 취득과 부족한 공부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69년 개교 이래 최초로 공기업에 입사한 인물이 되었다. 2015년 4월 30일, 가슴 졸이며 한국조폐공사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다 선생님, 친구들과 학교 컴퓨터로 최종 합격 발표를 확인한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김현준 사우에게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서로 돕고 사는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어머니 백순득씨는 대구 북구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다. 3남매를 양육하던 시절을 정말 힘들었던 때로 회상하는 어머니는 3남매를 학원 한 번 못 보낸 것이 그렇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지런해라’고 가르치며 함께 우유배달, 부업 등을 통해 가정을 꾸려나갔다. 김현준 사우가 한국조폐공사에 합격했을 때 일주일 동안 우셨다고 한다.

장남 창준씨는 김현준 사우와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공부 욕심이 많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고교 졸업 후 유리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창준씨
는 스무살 여름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남들보다 1년 늦은 나이에 계명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ROTC에 지원하여 군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등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막내 수빈씨는 여고생으로 가족의 분위기 메이커이다. 가족들의 말에 따르면 비타민 같은 활력소라고 한다. 대구여상에 다니고 있으며 주말에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통해 가계에 보탬이 되려 한다. 김현준 사우와는 어렸을 적부
터 격의 없이 치고 받고 싸우며 자랐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한국조폐공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내년 봄 해병대 입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김현준 사우는 ‘먹방’이 취미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뼈다귀 해장국과 돼지국밥을 꼽는 그는 국밥과 함께라면 공기밥 3그릇도 거뜬하다고 말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광팬이기도 한 그는 중식시간에 체력향상을 목적으로 축구를 즐기고, 퇴근 후에는 노래방에서 가수 팀의 「사랑합니다」 를 열창하는 전형적인 스무살 청년이다. 28살 즈음에는 가수 홍진영 같은 외모의 어른들에게 잘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둘, 딸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현재 금형부의 업무에 만족하지만 향후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 기술을 습득하고 싶다는 김현준 사우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는 것이 목표다. ‘실력으로 안 되는 것은 있어도,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겠다는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끝으로 2015년 입사 동기들에게 항상 잘 챙겨주고 웃어주어 고맙고 정년퇴직 때까지 함께하자는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출처 화폐와 행복 3+4, 『가족의 재발견

글 권대욱 경영평가실(前 화폐본부 관리처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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