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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문학 속 돈이야기-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by 한국조폐공사 2015. 12. 18.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지난 6월말 톨스토이의 땅을 다녀왔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고 싶었고, 톨스토이를 읽으며 야스나야 폴랴냐에 가보고 싶었다.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었는데, 마침 모스크바에서 열린 학회 발표가 있어서 잘 되었다 싶었다. 한국과 러시아의 문학/문화교류와 관련한 컨퍼런스를 마치고 모스크바를 떠나 툴라를 거쳐 야스나야 폴랴나를 찾았다.


톨스토이 가문의 영지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기에 남다른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결코 작지 않은 호수를 왼쪽으로 두고 상큼한 자작나무 숲길을 걸어 톨스토이의 집으로 접어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애면글면 살아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집과는 달리 톨스토이의 집은 그 규모에서부터 달랐다.


러시아 남부 툴라 근교의 영지 야스야나 폴랴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 그 문학적 명성과는 달리 실제 그의 삶은 요철이 심한 파노라마였다. 조실부모했고, 대학도 중퇴했으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톨스토이는 회심하여 욕망을 순화하고 농민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청빈과 금욕을 강조하는 글을 쓰고 실천했다.


욕망과 소유의 문제를 현실에서 풀어보려던 그는 자신의 재산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적 세계관을 지녔던 그의 아내 소피아와 자식들은 불만이었다. 그 불화가 절정에 달하자 여든둘의 노인 톨스토이는 가출을 감행한다. 그러다 객지에서 폐렴으로 눈을 감는다. 자기를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땅에 묻은 다음 거기에 아무 것도 만들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


실제로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영지나 집의 규모와 형세와는 완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안내인은 톨스토이의 묘지를 설명하며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잘 보고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자작나무 숲길을 걷다가 작은 봉분 하나를 가까스로 마주쳤다. 하다못해 작은 비석 하나조차 없었다. 톨스토이는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의 파흠처럼 그렇게 작은 땅에 누워 있었다. 다만 가운데로 뚫린 하늘과 마주한 가운데 새들의 지저귐과 대화하는 형국이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대문호이자 사상가가 차지한 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
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땅이 필요한 지를 스스로 증거하고 있었다. 욕망이 멈춘 자리는 작지만 아름다웠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소작인 파흠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싶었다. 남의 땅을 빌어 농사짓는 처지고보니 소작료를 내고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열심히 일했다. 조금씩 땅을 늘려갔다. 땅이 늘어날 때마다 즐거웠지만, 기갈 들린 사람처럼 그는 마냥 부족함을 느끼며 아쉬워했다. 그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을 만큼의 넓은 땅이 마련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만일 땅을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농장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이 마을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텐데.”(톨스토이, 이종진 옮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비, 2015, 170쪽).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상인으로부터 바시키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가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아주 싼 값에 비옥하고 넓은 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하여 파흠은 그들과의 거래를 위한 선물을 마련하여 바시키르 마을로 간다.


마을 이장은 하루치에 1,000루블이라고 했다. “하루에 걷는 만큼 그 땅이 당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땅값은 1,000루블이랍니다.”(178쪽). 이장의 제안은 환상적이었다. 일출에서 일몰 때까지 그가 걸어서 밟은 땅이 그의 몫이 된다고 했다. 다만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한 평도 받지 못하고 돈만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파흠은 자기 땅 생각에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땅을 크게 차지해야지. 하루 종일 걸으면 50베르스타 정도는 돌 수 있을 거야. 지금은 해가 긴 때 니까.”(179쪽)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파흠은 자기 땅을 확보하기 위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내딛는 걸음마다 신바람이 났다. 더욱이 가면 갈수록 비옥한 땅이 널려 있었다. 멈출 수 없었다. “5베르스타만 더 걷자. 그리고 왼쪽으로 구부러지도록 하자. 땅이 너무 좋아 그냥 버리고 가기는 아깝다. 갈수록 땅이 좋구나.”(185쪽).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져도 참고 걷고 또 걸었다. 조금만 참으면 일생을 편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불안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땅을 너무 많이 차지한 게 아닐까? 만약 제시간에 가지 못하면 어떡하지?”(187쪽). 그러면서도 계속 땅 욕
심을 부풀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서녘으로 기울어 있었다.


더 이상은 무리겠다 싶어 발길을 돌렸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지 못하면 큰일 아닌가. 불안과 초조 가운데 속도를 냈지만 그럴수록 몸은 무거워졌다. “땅은 많이 얻었지만 하느님이 거기에 살게 해 주실까? 아아, 나 자신을 망쳤구나! 아무래도 출발점까지 가지 못할 것 같다.”(189쪽). 그럼에도 땅에 대한 욕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내달렸다. 가까스로 해가 떨어질 무렵 도착했다. “정말 장하십니다! 이제 많은 땅을 가지게 되셨네요.”(190쪽). 그렇게 이장이 외쳤지만 그 말을 파흠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도착하자마자 쓰러진 파흠은 그만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파흠의 욕심과 죽음을 애석해 하는 바시키르 사람들에 의해, 가엾은 파흠은 고작 제몸 하나 뉘일 만한 좁은 땅 속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필요한 땅은 정녕 그만큼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는 그런 이야기다. 인간 욕망의 어두운 곳에 성찰의 빛을 던지려 했던 톨스토이의 의도가 뚜렷한 작품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겹쳐 읽으면 파흠의 욕망과 운명에 대해 더 심원을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톨스토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으며,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정작 자기 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힘’이고, 그러므로 사람은 ‘걱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지 않았던가. 파흠이 그것을 잘 몰랐던 것일까.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하는데, 자기 마음 속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 채, 땅과 돈에 대한 욕심과 걱정으로 살다보니, 그 욕심 때문에 자기 삶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니까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라는 표제에서, 우리는 ‘얼마나’ 부분을 재삼 주목해야 하리라. 정도의 문제. 곧 정도(定度)의 정도(正道)를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오래 동안 숙고해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그토록 막연하고 어려운 문제가 또 어디 있으랴.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나 동양의 공맹자 등이 흔히 중용과 절제의 미덕을 강조했지만, 그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토록 지속적으로 윤리의 주제가 된 것은 그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멈추면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수많은 선사들이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터이다. 멈추면 보이는데 멈추지 못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생의 진실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생 전체를 잃게 된 파흠과 같은 사례를 우리는 아쉽게도 수없이 경험한다. 아흔아홉 마지기 땅을 가진 사람이 한 마지기 가진 사람의 땅을 탐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도(定度)의 정도(正道)와는 먼, 그렇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러니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파흠의 욕
망과 행동에 대해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여러 차례 사람의 마음속에 깃든 사랑의 가치에 대해 강조했던 것이다. 나와 남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진정한 성찰의 지평을 열 수 있을 때, 우리는 정도(定度)의 정도(正道)에 가까스로 다가서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래서 사람들의 돈 이야기는 계속된다.

 

 

출처 화폐와 행복 11+12, 『문학 속의 돈 이야기

글 우찬제 문학비경가, 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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