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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2015, 1+2 "문학 속의 돈 이야기1"

by 한국조폐공사 2015. 1. 20.





이 문장을 자신의 상업 철학으로 삼았던 거상(巨商)이 있었다. 물과 같은 재물을 독점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망하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파멸을 맞는다는 그 의미를 새기고 또 새겼던 거상은 바로 임상옥(林尙沃). 1779년(정조3년) 평북 의주에서 출생한 임상옥은 1796년(정조 20년) 상업을 시작하여 1810년(순조 10년) 국경지대 인삼 무역독점권을 확보했다. 1821년에는 저 유명한 청나라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극복했다. 이후 계속 상업에 성공한 그는 곽산군수, 귀성부사 등을 역임하기도 하다가 1855년(철종 6년) 사망했다. 말년에서 시화를 즐겨 문집으로 「가포집」을 남겼다.


그는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철학에 입각하여 “이문을 남기는 것은 작은 장사요, 사람을 남기는 것은 큰 장사”라는 신념을 실천했던 경제인이었다.


젊은 시절 임상옥은 출가하여 불도에 정진하다가 환속한 바 있다. 그 때 스승이었던 석숭 스님으로부터 저자거리에서도 도(道)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언제나 스승의 말씀을 새기고 실천하려 했던 임상옥은, 상업의 길에서 도를 터득하는 성불(成佛)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백 여 년 전 임상옥의 역정을 발견한 작가 최인호는 기꺼이 환호했다. “우리나라에도 상업에 도(道)를 이룬 성인(聖人)이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사표(師表)로서 임상옥을 부각시키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 최인호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것은, 그 동안 만났던 국내 여러 기업인들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본받을 만한 역사적인 상인이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록 “역사적으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업을 가장 낮은 가치로 인식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본받을만한 상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새롭게 열리는 경제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경제의 신철학(新哲學)”을 모색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로 세계의 모든 길을 가득 채우겠다는 야망을 지녔던 가평그룹 총수 김기섭 회장이 독일의 고속도로에서 신차 시험 운전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생전에 김 회장과 아우토반을 함께 드라이브한 적이 있던 작중 작가는 고인의 지갑에서 나왔다는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이란 문장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고, 조선 후기의 무역왕 임상옥임을 알아낸다. 소설의 본 이야기는 임상옥의 일대기다.


국경을 넘나들며 4대 째 보따리장수를 하던 의주 만상의 자손인 임상옥은 아버지가 진 빚을 탕감하기 위해 홍득주의 상회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상인으로 인정받게 되고, 스무 살 무렵 중국 연경에 들어가 처음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 거기서 임상옥은 비정한 아버지에 의해 유곽에 팔려 온 장미령을 긍휼히 여겨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를 사서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준다. 나름대로 의(義)를 실천한 셈이지만, 공금 유용 죄로 상계에서 파문 당한다.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된 임상옥은 추월암으로 자신을 찾아온 개성상인 박종일을 통해 장미령의 소식을 듣는다. 임상옥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된 장미령은 고관대작의 첩이 되었는데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보낸 은자 5천 냥 앞에서 고민하다가 마을로 내려가 곤궁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난 후, 환속하여 재기하기 시작한다. 추월암에서 하산할 무렵, 석숭 스님이 반드시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였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펼쳐보라며 세 가지의 비결을 써 준다.


즉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와 ‘계영배(戒盈杯)’가 그것이다. 위기 때마다 임상옥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극복한다. 첫 번째 위기는 연경 상인들의 인삼 불매 운동이었다. 이 때 그는 첫 가르침인 ‘죽을 사’ 자를 통한 깨달음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스스로 인삼을 태우는 방법으로, 즉 자기를 죽이는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死卽生]. 두 번째 위기는 홍경래의 난 때였는데, 이 때는 혁명 가담에 대한 유혹을 ‘솥 정’자의 비의를 깨침으로써 삼족이 전멸당하는 위기로부터 벗어난다. 솥의 세 다리는 권력, 재물, 명예의 균형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재물을 가진 자기가 권력까지 욕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계영배였다. 가득 채우면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팔 할쯤 채워야만 잔에 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계영배의 비의를 통해 스스로 만족을 아는 자족의 지평이야말로 최고의 상도임을 깨달은 임상옥은, 사랑하는 여인 송이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임상옥은 우연히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던 닭 한 마리를 솔개가 채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의 명운이 다하였음을 직감한 그는 자기에게 빚진 상인들을 모두 불러 그 부채를 전액 탕감해 주고 게다가 금덩어리까지 들려 보낸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개성상인 박종일에게 임상옥은 이렇게 말한다.


“물을 소유하려고 고여 두면 물은 생명력을 잃고 썩어 버리는 것이오. 재물도 마찬가지요. 이는 물이 내 것과 네 것이 없는 것과 마찬 가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 것과 네 것이 아닌 재물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 하고 있소이다. 내 손 안에 들어온 재물은 잠시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외다. 태어날 때부터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가진 사람 없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추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은 없는 법이오. 사람은 누구나 저울처럼 바른 것이요. 저울은 어떤 사람이건 있는 그대로 무게를 재고 있소.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무게로 저울은 가리키고 있는 것이오.”


“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는가.


또한 빚을 탕감하고 상인들에게 금덩어리를 들려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소. 금덩어리라도 내가 소유하려 한다면 녹이 슬거나 벌레가 먹고 썩어 버릴 것이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상인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불과한 일인데 그것을 감히 횡재라고 부를 수가 있겠소이까.”


그 다음날 아침, 임상옥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상업지도(商業之道)란 그림을 받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임상옥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는 철학을 실천하며 살아온 삶을 마감한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작중 작가는 김기섭 회장의 호를 딴 ‘여수 기념관’에 가서 추사가 임상옥을 위해 쓴 발문을 읽으면서 ‘상업지도(商業之道)’의 참뜻에 대해 숙고한다. 상업의 길을 통해 ‘상업의 부처[商佛]’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즐겁고 기쁜 일이라고 설파한 추사의 법어(法語)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얼마나 깨닫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이 임상옥의 문장을 통해 경제의 신철학을 모색하려는 최인호의 시도가 곧 소설 「상도」의 핵심이다. 임상옥을 통해 돈은 말한다. 돈의 하인이 되지 말고, 돈의 주인이 되어라(돈 때문에 자기를 죽이지 말고, 자기를 위해 돈을 죽여라[死]).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나, 그것들의 균형과 조화를 모색하라[鼎].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자족의 지평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戒盈杯]… 그렇다는 것은 돈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금붙이 같은 고체로 신봉할 때 금고에 많이 가두려는 배타적인 시도를 한다. 그로 인해 세상에는 하고많은 다툼과 갈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돈이 물처럼 액체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가두기 어렵다. 평화 가까이 이를 수 있다. 어찌 보면 쉬운 말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돈의 메시지다.




출처 화폐와 행복 1+2, 문학 속의 돈 이야기1

글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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