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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한국 명산에 피는 꽃-산오이풀, 구상난풀, 냉초

by 한국조폐공사 2018. 10. 2.

한국 명산에 피는 꽃 ②


‘산오이풀’ ‘구상난풀’ ‘냉초’ … 가을에 피는 지리산의 야생 약초 꽃


김태정 / 한국야생화연구소 소장



 산오이풀, 구상난풀, 쓴풀, 냉초…. 귀한 약초들이 많은 지리산(智異山)은 소백산맥의 최남단에 위치해 북쪽으로는 덕유산(德裕山), 동쪽으로는 가야산(伽倻山)과 연결된다. DMZ 이남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정점으로 수많은 능선과 계곡들이 교차돼 웅장한 산세를 이루는 지리산의 총 면적은 44만 485㎢에 달하며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에 걸쳐 있다.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방과산(方戈山, 창끝같이 뾰족한) 봉오리의 모양을 지녔으며, 신라 오악(五岳) 중 남악(南岳)으로 예로부터 백두산 정기가 남해로 흘러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리산은 한랭한 높은 산지대와 온후한 산간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비옥한 토질과 한온대 식물이 무성하고 다양한 식물군과 높은 산 준령으로 사람의 접근이 곤란한 지역이 많아 야생 동식물 서식에 적합하다. 현재 반달가슴곰들이 이곳에서 야생 상태로 번식하고 있어 동물들의 보고(寶庫)로도 각광받고 있다.


산오이풀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식물체 높이 40~80㎝이고 8~9월에 홍자색 꽃이 이삭모양꽃차례에 모여 핀다. 남부 지리산, 중부 설악산, 향로봉 및 북부지방까지 비교적 높은 지대의 산마루 근처 바위가 많은 돌 틈에서 자란다. 큰오이풀, 오이풀, 가는오이풀 등이 각지에 자라며 풀잎에서 오이와 똑같은 오이향이 나기 때문에 이름이 지어졌다. 약 이름은 지유(地楡)이고 한방에서 부인병 약재로 쓴다. 


 1995~1996년도에 식물도감을 준비하던 중 산오이풀 사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촬영해야 겠다 마음먹고 보니 때가 9월이 다 지나가기 전이다. 중부지방은 산오이풀 꽃 촬영이 불가해 지리산의 노고단 쪽으로 다녀오기로 하고 카메라만 지니고 전남 구례쪽으로 들어갔다. 가을 날씨답게 하늘은 파랗고 바람도 잔잔해 9월의 마지막 날임에도 다행이 아름다운 산오이풀을 촬영할 수 있었다. 향로봉은 안개가 늘 끼어 있어 꽃이 좀 깨끗하지 못하며 설악산은 조금만 늦으면 단풍 들고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찍기 어렵다.

 일년내내 때를 맞춰 산오이풀만 촬영하면 좋겠지만 필자 혼자서 백두대간 방방곡곡 갈 곳도 찍어야 할 꽃들도 많기에 사진엔 늘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 지리산 노고단 부근에서)


구상난풀

 노루발풀과의 여러해살이 기생식물로 엽록소가 없으며 썩어가는 낙엽 등에서 양분을 얻어먹고 자란다. 식물체 높이 10~25㎝이고 식물체는 연한 황갈색을 띄지만 마르면 흑갈색을 띈다. 5~6월에 황갈색 꽃이 모여 송이꽃차례를 이루고 꽃이 고개를 숙이고 핀다. 원래 한라산 구상나무 밑에 자란다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나 지리산 등의 낮은 지대 소나무 숲에서도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옛 이름 석정화(石晶花)이고 한방에서 이뇨, 수렴 약으로 쓴다.


 1999년 초여름 구상난풀을 찾아 헤매던 추억이 떠오른다. 지리산 산청군 쪽 외딴 마을에 사시는 70대 노인께서 전화로 꽃인지 버섯인지 알 수 없는 식물이 낙엽 밑에서 나오는데 이곳으로 와서 봐 줄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비슷한 문의들이 많아 바로 가겠다고 답하고 이튿날 일찍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후에 도착해 지리산 산청군쪽 낮은 지역 소나무와 신갈나무들이 약간 섞여 자라는 산기슭으로 안내를 받으며 올라가니 가랑잎이 덮인 숲속에서 몇 송이의 구상난풀이 꽃을 활짝 피우고 있어 숲속으로 뻗어 내린 빛을 이용해 사진 촬영을 했다. 영감님께선 이게 혹시 몸에 좋은 약초가 아니냐고 물으신다. 몸하고는 관계가 적은 남의 영양분을 얻어먹고 자라는 기생식물이라고 설명 드리고 서울로 돌아와 사진을 현상해 보니 지리산까지 다시 가 건진 이 한 컷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진 - 지리산 산청군에서 오르는 길목 소나무와 신갈나무군락)


냉초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식물체 높이 50~150㎝이고 6~8월에 줄기 끝에 홍자색 작은 꽃들이 송이모양꽃차례로 많이 피어난다. 남부, 중부에도 자라지만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많이 자란다. 약 이름은 냉초(冷草)라 하고 뿌리에 사포닌과 베니톨, 잎에는 구마린과 알칼로이드가 함유돼 많이 쓰이는 한방 약재이다. 지리산 등 근처 농가에서 많은 재배도 이루어진다.


 지리산 자락 곳곳에도 약초농가들이 있다. 벽소령 고개 마루 근처 약초농가들을 들러보고 싶어 자동차를 세우고 높은 능선으로 올라가니 산골짜기 깊은 곳에 농가 한 집이 소박하게 약초를 기르고 있다. 약초밭을 일굴 수 없는 해발 800m 정도에 위치한 외딴집이다. 산골짜기 작은 공간을 이용해 원래 약초가 야생으로 자라듯이 조금씩 기르고 있어 냉초 한 군락을 촬영했다. 냉초는 원래 북방계 식물로 북쪽으로 갈수록 크고 뿌리도 굵어진다고 한다. 백두산 해발 1,600m 정도의 고원지 초원 등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지리산 높은 산자락에서도 자라는데 토질이 비옥해 땅속의 뿌리가 대단히 굵다고 한다. 

(사진 - 지리산 약초농가)


 지리산은 내면(內面)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산으로 나무와 풀, 약초(藥草)들이 많은 곳이다. 봄이면 이 지역에서 약초가 많이 생산되는 이유다. 예부터 노고단 정상근처에 많은 꽃이 피지만 모두 약초의 꽃들이다. 지리산 비탈진 큰 산기슭에 자연 훼손없이 약초를 조금씩 키워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 마음씨들이 꽃처럼 곱게 느껴졌다. 필자는 가을 시간이 되면 이곳 지리산 자락을 거쳐 남원 쪽이나 구례 쪽으로 여행 같은 탐사를 떠난다. 참 아름다운 산골이다.


사보 <화폐와 행복>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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