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KOMSCO 칼럼> 산책로에서

by 한국조폐공사 2018. 11. 15.

산책로에서 


  산책의 힘은 

      삶에 그늘이 

   지지 않게 하고 ...


높고 높은 하늘에 새털구름이 살랑살랑 너울대고, 구름사이로 밝은 햇살이 새어나와 대지를 평정하니, 따듯한 기운에 힘입어 풍성한 열매를 맺고, 붉게 물들어가는 산과 들에서 돌아 나오는 청기(淸氣)에 싱그러움이 출렁입니다. 특히 비가 온 후 쾌청한 날은 자양분을 축적하여 살이 찌고 정신도 맑아져 풍요롭고 넉넉하여 여유로움을 소유하기에 매우 좋은 계절입니다. 


이런 날에는 가방하나 둘러메고?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목적도 없이 방향 감각도 잊은 채, 서늘함을 쫓는 것은 살아온 날 기억에 남는 장소에 가서 추억을 불러오는 행위로서 자연에 대한 도리이며 예의인 것도 같습니다. 그것은 방황이 아닌 설렘을 맛보며 외로움에 젖은 것이 아닌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기에 결국은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거로의 여행이지요. 그래서 여인의 고즈넉한 모습을 닮아가는 늦가을 정취를 느끼고자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숲으로 들어가니 완연히 다른 세상을 만납니다. 한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심오하지요. 그곳에는 아름드리 나무로부터 잡목이나 잡풀, 새들과 곤충이 어울리며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많은 생물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친구이며 동반자입니다. 그렇게 어우러지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툼도 없고 갈등도 없으며 우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차별과 불평등, 투쟁과 주장이 넘쳐 소음이 팽배합니다. 목소리 큰 자, 힘센 사람, 많이 가진 자가 이긴다고 믿을 때 사회는 불공정이 판을 치고 거칠어지며 부정이 난무하게 되지요. 숲이 보여주는 나눔과 공존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부자라도 떳떳하고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다시 숲을 지나 오솔길로 향합니다. 동짓달은 허허롭지만 몸을 가벼이 하니 홀가분합니다. 쓸쓸하지만 호젓하니 이 어찌 서늘하지 않다 하겠습니까. 상수리 나무에서 열매 떨어지는 소리, 감나무 잎 구르는 소리, 바람소리와 가을이 가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애수에 잠깁니다.


한 자리에서 물을 흡수하고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꽃으로, 맛있는 열매로 인간에게 선사하는 숭고함에 머리가 숙여질 뿐입니다. 자연이 계절 따라 자기 모습을 연출하고 풀어내며 순환의 고리를 연결하 듯 우리 인간사도 복잡하지만 얽히고설킨 것을 풀었다 빼면서 생활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생업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므로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집중하고 직업관을 올바르게 가져야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요. 하지만 순간의 안이함과 해이, 긴장감이 떨어질 때 시련도 닥쳐오는 것입니다. 항시 긴장하긴 어렵지요. 매일 매일을 집중하기는 더더욱 힘들겠지요. 따라서 반복적인 업무도 내·외적으로 충격적인 요법과 나름의 노하우로 지속 발전시키는 현명함이 필요할 때입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붉게 물든 잎이 한잎 두잎 떨어지며 쌓이며 흩어질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요. 땅에 떨어지는 낙엽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맞이합니다. 그것들은 삶 속에 묻혀 있을 뿐 죽음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 저 우주 순환의 일부이며 그것들은 그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맡기고 또 새로운 것을 향해 스러집니다. 그리하면서 놀랍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재  창조하게 됩니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고요하고 적막함이 감도는 저무는 날에 세상의 문은 잠시 닫고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구르는 낙엽을 바라보며 향수와 그리움, 외로움, 고독에 심취해 존재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그래야만 황혼이 닥쳐와도 가슴 아리지 않고 아팠던 추억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살며시 웃음을 자아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인생은 순례와 산책 사이를 오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산책은 온전히 나를 만나러 가는 여행입니다. 산책은 정지를 거부하고 건강한 세포를 확장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투입하는 행위입니다. 자기만의 소리를 듣는 일이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강건한 정신을 견지합니다. 업무에 쌓인 스트레스를 버리고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으로 돌리고 소극적인 행동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몸에서 정신으로 연결하는 통로이며 생각의 이동로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중력을 지니고 있다'라고 철학가 김용석님은 말했습니다. 사색은 외부의 감각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중력의 중심이 되도록 해준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몸 전체에 균형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와 넓은 시야를 만들어 줍니다. 산책을 즐기는 이에게 주는 보너스입니다. 산책하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입니다.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시간과 장소가 펼쳐지니 주관과 주체성을 얻는 일입니다. 정신을 혼자 있게 하니?차분해집니다. 그래서 이별도 슬픔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떠나는 사람도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습니다. 산책의 힘은 삶에 그늘이 지지 않게 하고  후회의 성(城)을 허물기도 하며 의지를 실행에 옮기도록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도 하니 가끔은 어떤 좌표도 정하지 않은 채 산책을 즐겨 볼 일입니다.


함수학 前기술해외이사  

사보 <화폐와 행복> 11+12월 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