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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다

by 한국조폐공사 2016. 1. 20.

 

 

인도는 내어줄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꿀 수 없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 말을 아직도 세계인들은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꿈꾸었던 영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대문호 셰익스피어.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4대 비극을 비롯한 많은 그의 작품들이 요즘에도 여전히 세계 전역에서 새롭게 공연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마도 영국의 꿈은 셰익스피어를 통해 여전히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의 '베니스의 상인'(1596년에서 1598년 사이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추정됨)은 유태인 수전노 샤일록과 지혜로운 여인 포오샤의 결혼담과 재판 장면으로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낭만 희극의 형식을 통해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사회의 문제성을 풍자한다. 봉건적인 신분이나 위계 중심에서 경제적인 부()가 중심이 되는 자본제 사회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갈등과 역전의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잔인한 유태인 및 세 개의 상자 이야기가 있음이라는 부제를 붙여 출판했던 이 희극은, 샤일록이라는 봉건적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와 반봉건적 초기 자본주의 상인인 안토니오 사이에 벌이는 돈과 인간 사이에 얽힌 갈등과 겨룸의 드라마이다.

 

벨몬트에 사는 아름다운 여자 상속인 포오샤에게 구혼하려는 밧사니오는 3천 더컷의 결혼자금을 빌려달라고 친구 안토니오에게 부탁한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자기 자본이 배와 상품에 투입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1파운드의 자기 살을 저당 잡히고 샤일록에게 돈을 빌려 밧사니오의 결혼자금을 대준다. 이에 밧사니오는 포오샤에게로 가 세 개의 상자 고르기에서 성공하여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예기치 않던 파산으로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어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된다.

 

차용증서에 쓴 대로 저당 잡힌 1파운드의 살을 샤일록에게 잘려야 할 위기에 놓인다. 1파운드의 살이란 곧 안토니오의 목숨과도 같다. 재판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토니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이때 지혜의 여인 포오샤가 해결사로 등장한다. 총명하고 과단성 있고 기지에 넘치는 매력적이고 지혜로운 포오샤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여성상이지 싶다. 세 개의 상자 고르기 시험 이후 밧사니오의 아내가 된 그녀는 계략을 꾸미기 시작한다. 안토니오가 그 같은 위험에 빠진 게 자기 탓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자기한테 구혼하기 위해 밧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돈을 부탁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 아닌가.

 

포오샤의 계략이란 다른 게 아니었다. 샤일록이 제안한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잘라가되, 단 피 한 방울도 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리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계약서에 피에 관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어찌 살을 도려낼 수 있겠는가. 결국 이 같은 재판의 막판 뒤집기로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반면 샤일록은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렸다는 혐의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만다는 이야기로 막을 내리게 된다.

 

유태인을 탐욕적이고 냉혹한 인종으로만 치부하던 당시 영국인들은 실제로 샤일록의 무자비함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그가 몰락하는 꼴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예나 지금이나 샤일록은 흔히 황금벌레로 불린다. 돈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거부하는 냉혈한…… 샤일록은 바로 그런 자들의 대명사로 통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 전편에서 그는 마이더스 왕 같은 황금광 내지 돈의 노예로 나타난다. 심지어 그는 외동딸인 제시카가 도망쳤는데도, 딸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딸이 훔쳐간 보석만을 애달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단순한 수전노가 아니었다.

 

그가 이자 대신 1파운드의 살을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안토니오가 돈을 상환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기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금의 세 배를 준다고 할 때도 거절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문제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돈만을 추구하는 샤일록이었다면 응당 세 배의 돈을 얼른 받았어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돈보다는 인간을 절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오직 악독한 돈벌레라고 저주받는 자신과 민족의 현실 속에서, 복수를 통한 자존심 회복을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포기하는 일종의 순교 행위를 통해 돈으로 인해 매도된 인간성 그 자체를 부각시키고 싶었던 샤일록의 고뇌가 여기에 담겨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샤일록의 절규에서 그것을 확실하게 보게 된다.

 

유태인은 눈이 없소? 유태인은 손이 없소. 내장이, 체형이, 감각이, 애정이, 열정이 없소?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무기에 부상당하고, 같은 겨울에 춥게 지내고 같은 여름에 덥게 지내는 거 아니오? 당신네가 우릴 찌르면 우린 피가 안 난답디까?”(31)

 

문제는 느낌이었던 것. 정녕 사람답게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엄청난 인식의 역전을 보게 된다. 돈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비인간적인 존재가, 돈을 버리고 진정한 인간 선언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고도의 뒤집기의 미학이다.

 

세 개의 상자 고르기에서도 그렇다. 포오샤는 결혼 상대자를 고르기 위해 금동의 세 상자를 준비한다. 그 중 하나에 자기 초상화가 들어 있는데, 그것을 골라야 결혼할 수 있다. 각 상자에는 나름의 경구가 적혀 있다. “나를 선택하는 자는 숱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금 상자). “나를 선택하는 자는 자신의 자격만큼 얻게 될 것이다.”(은 상자). “나를 선택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주고 걸어야 한다.”(납 상자)(27).

 

처음 온 모로코공은 금 상자를 열었다. 숱한 남자들이 바라는 바를 얻고 싶었던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해골이었다.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 (중략) 금칠한 무덤이 정말 에워싸고 있는 것은 벌레뿐이다.”란 전언과 더불어. 다음으로 아라곤공은 은 상자를 골랐다. 그에게 자신의 자격만큼이란 고작 백치 초상에 불과했다. 이번에 밧사니오가 도착했다. “겉모습에 깜빡 속을 수도 있교활한 시대를 경계했던 이 베니스의 신사는 모험을 선택했다. 거기엔 포오샤의 초상화와 더불어 축하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겉모습으로 선택하지 않은 그대. 운은 좋았고 선택은 진실했도다. 이 운명이 그대 몫이니, 만족하라, 그리고 새 운명을 구하지 말라.”

 

응당 겉모습을 중시하는 시선에서라면 금이 가장 고귀하고 선호되는 대상이다. 당시 상황 또한 바야흐로 금으로 상징되는 돈과 경제적 가치가 급부상하던 때였다. 하지만 찬란한 황금이 거부되고 창백한 납이 행운의 상징으로 선택되는 극적 아이러니가 또한 역전인 것이다. 금이 돈의 상징이라면, 납은 인간성의 상징이 된다. 외모와 내부가 뒤집히는 이 역전은 포오샤의 경우도 비슷하다. 모로코공과 아라곤공은 재산 많은 왕이거나 제후였다. 즉 현실적 조건의 측면에서 보면 밧사니오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포오샤는 밧사니오가 선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편으로는 낭만적 사랑의 감정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봉건적인 제후보다는 근대적인 신사를 선택하는 현실적 추세의 반영이기도 하다.

 

납이 금을 넘어서고, 돈벌레로만 여겨지던 샤일록이 인간 선언으로 절규한다는 것. 잠시의 겉모양과는 달리 내면의 진정한 본질이 따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 인식. 셰익스피어는 물구나무서기로서 그것을 웅변한다. 고양된 뒤집기의 미학을 창조한다. 똑바로 서서 금으로 상징되는 돈의 현실을 성찰한 그는 물구나무서서 정녕 인간적인 것, 즉 납의 세계를 지향하고 추구하고자 했다.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휴머니즘이 빛나는 대목이다. , 셰익스피어의 지혜를 나누어 가지고 싶거든, 한 번 물구나무를 서 보자. 󰡔미생󰡕에서 장그래도 그랬다. 물구나무서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었다.

 

 

 

출처 화폐와 행복 1+2, 『문학 속의 돈 이야기

글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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