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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문화 속의 돈 이야기-박경리의 토지

by 한국조폐공사 2016. 10. 10.

땅의 상상력과 돈의 상상력

-박경리의 토지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실로 거대한 땅이다. 힘차게 솟아오른 큰 산이 있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이 있는가 하면, 표표탕탕한 격류가 있고 세월의 벼랑에 새겨진 역사의 족적이 있다. 무엇보다 '토지'에는 민족의 삶과 운명과 한이 있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생명의 벼리가 깃들어 있으며 웅숭깊은 휴머니즘이 있다. 또 그것을 섬세하면서도 웅장하게 다루어가는 지모신(地母神)의 상상력이 있고, 만화경적이면서도 교향악적인 수사학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여 소설 '토지'는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바탕으로 역사적인문적 상상력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빚어진 현대의 살아있는 서사시라 할 만하다.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던 구한말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대사의 운명과 근대인의 영혼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토지'는 한가위 풍경을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침 추석을 앞둔 시점인 만큼 그 풍경부터 조감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도 하기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진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중략추석은 마을의 남녀노유,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의 날인가 보다.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퍼지는 징 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참판댁 사랑에서는 흐느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을 잊으며 굿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참판댁에서 섭섭잖게 전곡(錢穀)이 나갔고, 풍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 테니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박경리, '토지', , 1993, 111-12.)

 

한 해 농사를 수확하는 기쁨과 감사를 조상들과 나누고자 했던 추수감사절 성격의 추석의 장면을 극화하기 위해 작가는 명절 풍경과 타작마당을 함께 어우러지게 한다. 그래야 풍성한 향연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랬었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신명을 지필 수 있는 날이 바로 추석이며, 심지어 짐승들이나 하늘을 나는 새는 물론 쥐까지 이 풍성한 향연에서 예외일 수 없다. 명절이 아닌 다른 일상의 나날에서 괴롭고 한스러운 일이 많았더라도 이 날만큼은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민족의 명절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타작마당에서는 굿놀이가 멎은 것 같더니 별안간 경풍들린 것처럼 꽹과리가 악을 쓴다. 빠르게 드높게, 괭과리를 따라 징소리도 빨라진다. 깨깽 깨애깽! 더어응응음깨깽 깨애깽! 더어응응음장구와 북이 사이사이에 까여서 들려온다. 신나는 타악 소리는 푸른 하늘을 빙글빙들 돌게 하고 단풍든 나무들 우쭐우쭐 춤추게 한다. 웃지 않아도 초생달 같은 눈의 서금돌이 앞장서서 놀고 있을 것이다.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주름살을 잊고 이팔청춘으로 돌아간 듯이, 몸은 늙었지만 가락에 겨워 굽이굽이 넘어가는 그 구성진 목청만은 늙지 않았으니까. 웃기고 울리는 천성의 광대기는 여전히 구경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리.(같은 책, 12.)


 

삶의 매 순간이 이렇게 신명나는 세상이면 그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나날의 삶이 늘 한가위 같을 수는 없는 법. 하여 일상에서는 다툼과 알력, 갈등과 시련, 욕망과 좌절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마련이다. '토지'에서도 국운이 기우는 시기와 비슷하게 최참판댁의 가세가 기울어 서희가 조준구 일당에서 땅을 빼앗기고, 용정으로 옮겨가 장사를 하여 평사리 토지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서희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하인 길상과 결혼하기도 한다. 어쨌든 서희네는 다시 평사리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니까 '토지'의 기둥 줄거리는 서희가 평사리 땅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의 이야기요, 그만큼 농경민족이 애호했던 땅의 상상력이 잘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근대로 이행하면서 땅의 상상력은 서서히 돈의 상상력에 밀리게 된다. 서희와 길상이 땅을 상실한 것도, 회복한 것도 결국 돈의 문제였다. 최참판댁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돈의 상상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임이네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이용의 두 번째 부인이다. 앞에서 본 타작마당에서 용이는 마을에선 제일 풍신 좋고 인물 잘난 사나이”(같은 책, 13). 그는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던 월선과 결혼하지 못하고 사랑 없는 강청댁과 결혼한다. 강청댁은 용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월선에 대한 질투로 일관하다가 호열자로 죽는다. 강청댁의 자리에 월선이가 들어갈 수 있기를 독자들은 바라지만 운명은 곡예를 거듭한다. 월선이 삼촌인 공노인을 따라 간도로 간 사이, 귀녀 사건으로 처형된 칠성이의 아내 임이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다시 월선이가 돌아오자 기존의 강청댁용이월선의 갈등의 삼각형은 임이네용이월선의 삼각형으로 대치된다. 이 삼각형은 실로 숙명적이다. 욕망의 악무한(惡無限)으로 자신의 삶을 전개시키는 임이네와 영원한 아니마 여성의 화신인 월선의 대극적 만남과 갈등의 한복판에 용이의 존재 방식이 놓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임이네의 욕망이 문제적이다. 애욕과 질투도 문제지만 상사병과도 같은 돈에 대한 집념이 부각된다.

 

(임이네: 인용자)는 꿀같이 달콤한 지난날의 그 돈의 맛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속주머니를 차고 있다. 불 속에 전재산을 잃었다고는 하나 여기저기 남에게 빚을 준 돈을 거뒀고, 살림에서 뜯어내고 주갑이 하숙비에서 뜯어내고 곡식을 몰래 내고 또 길쌈을 하여서 팔고 그러나 속주머니 속의 돈이 불어나는 것은 거북이걸음보다 더디니 말이다. 십전짜리가 일원짜리 지폐가 되고 일원짜리 지폐가 십원짜리 지폐가 되고 하던 국밥집 시절의 호경기는 꿈도 꾸어볼 수 없으니 말이다. 임이네는 베틀에 앉았다가도 화를 벌컥벌컥 내곤 한다. 도무지 가소로워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하동서 고구마 장살 하며 한 푼 두 푼 전대 속에 밀어넣을 때 임이네는 그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은 지전 은전 동전 손에 닿는 대로 품속에 넣던 월선옥 시절만이 눈앞에 오락가락 도무지 살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느는 것은 병적인 신경질이었고 월선이가 부모 죽인 원수만큼 미운 것이다. 중략그러나 임이네의 상사병과도 같은 돈에 대한 집념은 고쳐지질 않았고(22, 385-386.)

 

이런 임이네 같은 인물은 돈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즉자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월선이의 돈을 갈취하여 고리대금업을 하면서도, 월선이가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욕망 무한, 슬픔 없는 목숨이며 비렁땅 꽃 한 포기 새 한 마리 없는 황막한 인생이다.”(21343.) 그런데 다른 쪽에 작가는 돈에 대한 대자적 태도를 보이는 인물상도 보여준다. 돈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대자대비한 공()의 세계에서 한()을 넘어서려 하는 김환 같은 인물이나, 장사를 통해 돈을 많이 벌고 평사리 땅을 되찾는데 기여하지만 돈의 세계를 넘어서 초극의 지평을 마련하려 한 길상 같은 인물이 그렇다. 일찍이 길상은 천수관음상을 조성하여 어지러운 세상, 불쌍한 중생에게 보살의 자비를 펴게 하라는”(42, 266) 우관선사의 뜻과 희망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간도에서 번 돈으로 서희가 원하는대로 평사리 땅을 복원시킴과 동시에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동학당 재건을 위해 돈을 쓴다. 그리고 최초 우관선사의 화두로 돌아가 원력(願力)을 모아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완성한다. 돈을 초극하고, 현실을 초극하고, 예술을 통해 맺힌 한을 풀어내려 한다. 마침내 창조는 생명”(51, 325)이라는 예술론을 개진하기에 이른다. 여러모로 임이네가 대조적인 모습이다. 임이네의 돈은 생명이 거세된 황무지와도 같았다면, 길상의 돈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지렛대였다.


출처 : 화폐와 행복 9+10 『문화 속의 돈 이야기』


글  문학비평가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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