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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by 한국조폐공사 2015. 7. 20.

보통 사람들이 지닌 ‘돈에의 꿈’은 때로 열렬하고 때때로 간절하다. 그럼에도 그 꿈은 멀고 현실은 가혹하기 일쑤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돈은 오로지 비극적 악몽의 기호이기 쉬웠다. 「공자의 생활난」 등 일련의 시편들을 통해 김수영은 돈의 문제와 관련한 “생활의 고절(孤絶)이며/ 비애”(「생활」 )를 날카롭게 다루었다. “돈을 버는 거리의 부인이여/ 잠시 눈살을 펴고/ 눈에서는 독기를 빼고/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여 보아라”(「거리 2」 1연) 같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김수영은 생활난에 대해 서늘한 연민으로 성찰적인 면모를 보였다. 다산 정약용에서 신경림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들이 그런 경제적 생활난을 형상화했으나, 대체로 돈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문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의 시편들에서는 돈이 현실과 욕망과 비극의 직접적 기호로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직정적으로, 때로는 실험적으로, 돈이 시화(詩化)되면서 현실을 날카롭게 추문화한다.

 

 

우선 황지우의 시 「한국생명보험주식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을 보자. 전형적인 소시민인 송일환 씨는 “1983년 4월 20일, 맑”은 날, “토큰 5개 550원, 종이컵 커피 150원, 담배 솔 500원, 한국일보 130원, 짜장면 600원, 미스 리와 저녁식사하고 영화 한 편 8,600원, 올림픽 복권 5장 2,500원”을 썼다. 그날 하루 모두 13,030원을 지출한 그는 한국일보를 대충대충 훑어본다. 그러다가 대도 조세형 사건을 희화화한 네 컷 짜리 안의섭의 두꺼비 만화를 본다. “대도둑을 권총으로 쏘다니--말도 안된다—대도둑은 대포로 쏘라”는 만화다. 그러던 그는 대도 조세형이 부잣집에서 털은 보물 목록을 아주 자세히 읽는다. “▲일화 15만엔(45만원) ▲ 5.75캐럿 물방울다이어 1개(2천만원) ▲남자용 파텍시계 1개(1천만원) ▲황금 목걸이 5돈쭝 1개(30만원) ▲금장 로렉스 시계 1개(1백만원) ▲5캐럿 에머럴드 반지 1개(5백만원) ▲비취 나비형 브로치 2개(1천만원) ▲진주 목걸이 꼰것 1개(3백만원) ▲라이카엠 5 카메라 1대(1백만원) ▲청도자기 3점(싯가 미상) ▲현금(2백 50만원)” 부분을 말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극단적인 두 현실을 극명하게 맞세운다. 송일환 씨의 지출 목록과 부잣집 보물 목록의 대조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현실적 자료의 대조 자체로 시인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메시지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역설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포괄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부의 불균등 현상에 대한 고발이다. 부의 불평등 현상 혹은 빈부격차 문제는 예로부터 해결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인간적인 문제였고, 현실적인 문제였다. 늘 돈은 부자에게는 행복한 꿈이었던 데 반하여 가난한 자에게는 차라리 악몽이었다. 현실이 그러했기에 인류의 많은 지혜나 도덕은 이런 현상을 경계하는 경제 윤리 내지 경제 정의 쪽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경제 제일주의가 우선하면 그만큼 인간적 타락상이 깊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돈의 문제에 대한 황지우의 날카로운 시적 투시안이 위트 있는 스타일로 옮겨졌다.

 

“자본의 게임은 냉정하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빼앗아 오기 위해/ 도깨비방망이를 더 빨리 휘둘러라”(「자본주의의 게임」)라고 자본주의를 진단하는 시인 함민복은 황지우의 시에 나오는 송일환 씨의 처지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인 가난한 시인을 1인칭으로 직접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삶」 이라는 시의 부분들을 눈여겨보자.

 

         

 

 

 

2만원 상당의 시 원고를 문학 잡지사에 넘기러가는 시인의 어느 하루를 점묘한 이 시에서 돈과 삶은 안타까울 정도로 등가이다. 삶이 곧 돈으로 교환될 뿐만 아니라, 삶을 위해 쓰는 시도 돈과 교환되니, 삶과 시와 돈은 등가의 교환 은유의 계열로 묶인다.


가난한 시인의 가계부는 송일환 씨의 그것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미스 리와 저녁식사하고 영화 한 편” 할 돈/삶이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올림픽 복권”을 살 엄두도 낼 수 없다. 게다가 부족한 돈을 분실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아니 2100원이 나를 살아버린 것이다”라고 한 마지막 시구가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어머니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시 「눈물은 왜 짠가」 를 쓴 시인의 전기적 정보와 겹쳐 읽으면, 돈에 의해서 살아지는 시인의 실존적 처지에 무한 공감하게 된다. 자본주의 시대를 거스르며 반자본주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시인이기에, 그에게 있어서는 생활도, 돈도, 또 다른 것들도, 특별한 수사학적 장치 없이도 시가 된다. 그것도 드라마틱한 시가 된다. 예전에 톨스토이는 이렇게 질문했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함민복은 이를 고쳐 질문하는 것 같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시인 함민복이 늦은 결혼을 할 때 주례를 맡았던 소설가 김훈은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그는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눈물은 왜 짠가」 를 비롯한 여러 시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는 가난해도 괜찮다는 가난의 철학을 소박하게 강조하는 편이다. 한 인터뷰에서 한 그의 육성을 덧붙인다.


“가난과 빈곤은 다르다. 당장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하는 게 빈곤이고, 원하는 것이 없는 게 가난이다. 바꿔 말하면 원하지 않으면 없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마음을 양팔 저울에 올려놓고 내가 취할 것과 버릴 것의 균형을 생각해봐라. 적게 취하고 적게 버리면 균형이 맞춰진다. 마음속 저울의 균형이 맞춰진 사람들은 가난해도 부유하게 산다.”(「함민복 시인에게 듣는 위로」 , 「레이디경향」 2015년 2월호).

 

 

출처 화폐와 행복 7+8, 『문학 속의 돈 이야기

글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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