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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그림보고 화가 읽기 ⑬] 예순 넘어 꿈을 이룬 화가,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by 한국조폐공사 2022. 2. 28.

그림보고 화가 읽기⑬

예순 넘어 꿈을 이룬 화가,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글 이은화(미술평론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했던가. 앙리 루소는 22년간 파리시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다 49세 때 은퇴 후 전업 작가가 되었다. 시작은 늦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믿고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파블로 피카소가 연 파티에 가서는 술에 취한 채 자신이 피카소와 함께 ‘이 시대 최고의 화가’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도 없고, 돈도 후원자도 없던 무명 화가 루소는 과연 자신의 꿈을 이뤘을까? 
루소의 그림은 이국적인 주제와 동화 같은 표현,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 기법과 깔끔한 색면 처리 등이 특징이다.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그림 양식만큼이나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도 특이하다. 1844년 프랑스 북서부 도시 라발의 양철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일해야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 법학을 공부했으나 1864년 군에 자원해 4년을 복무했다. 1968년 24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과 파리로 이주했다. 그해 결혼해서 부양할 가족이 많았다.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루소는 파리시 세관원으로 취직했다. 말이 세관원이지 파리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루소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40세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다른 과목 성적은 보통이었지만 미술상을 받았던 적이 있어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2년 후인 1886년 ‘앙데팡당’전이라 불리는 독립예술가 협회전에 참가한 이후 거의 해마다 출품해 화가로서 이력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색채 사용이나 원근법 표현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세관원이란 뜻의 ‘두아니에’ 또는 아마추어를 뜻하는 ‘일요화가’라 부르며 조롱하고 비웃었다.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놀랐지!), Tiger in a Tropical Storm (Surprised!), 1891년


인정받는 화가가 되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루소는 스스로를 위대한 화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꿈꿨지만, 부양해야할 가족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러다 49세가 되던 해 비로소 은퇴하고 전업 화가가 되었다. 자연을 유일한 스승으로 삼았던 루소는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 정성스럽게 화폭에 옮겼다. 본인의 의도와 달리 그가 그린 인물화들은 실제 모델과 닮지 않은 걸로 유명했다. 호의로 초상화를 주문했던 사람들도 완성된 그림을 거부하거나 받은 후 없애버리기 일쑤였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기법은 구사하기 힘들었고, 당시 주류였던 인상주의 미술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선명한 색상에 원근법이 무시된 그의 그림은 마치 콜라주처럼 각각의 대상을 그려서 한 화면에 모아 놓은 것처럼 입체적이면서도 독특했다. 피카소를 비롯해 소수의 예술가들만이 루소 그림의 독창성을 인정했다.  
루소는 47세 때 이국적인 정글 그림에 처음 도전했다. 열대 밀림에 사는 호랑이가 폭풍우를 뚫고 먹잇감을 덮치려고 준비하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림이 공개되자 이국적인 주제와 독특한 화면 구성에 대한 칭찬과 어린 아이 그림처럼 유치하다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무관심보다는 훨씬 나은 반응이었다. 한 평론가는 ‘미술로 인정할만하다’는 말로 호평을 대신했다. 용기를 얻은 루소가 정글 그림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건 10여 년 뒤인 예순 살 때였다. 1904년부터 6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려 총 26점의 정글 그림을 완성했다. 그 중 맨 마지막에 제작한 ‘꿈’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루소에게 최고의 명성을 안겨준 이 그림은 가로 길이만 3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다. 화면 안에는 열대 정글의 환상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양갈래 머리를 한 누드의 여성이 소파에 누워있고, 가운데에는 검은 피부의 남자가 서서 피리를 불고 있다. 남자 앞에 있는 사자 두 마리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각각 정면과 여인을 바라보고 있고, 오른쪽에는 주황색 뱀이 춤을 추듯 지나가고 있다. 여자가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이 피리 부는 남자인지, 뱀인지는 불확실하다. 초록색 싱그러운 풀과 커다란 꽃들 사이로 새와 코끼리, 원숭이들이 그려져 있고, 하늘에선 보름달이 조용히 비추고 있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은 이국적인 정글의 모습이 독특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꿈, Dream, 1910년


그림처럼 이루어진 꿈
궁금해진다. 그림을 배운 적 없는 루소는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정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 혹시 아프리카 열대림에 여행이라도 다녀온 걸까? 물론 아니다. 평생 가난과 싸워야했던 루소는 정글은 물론이고 프랑스 밖 어디도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신 파리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에 자주 가서 열대 식물들을 열심히 관찰해 스케치했다. 또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된 박제된 야생 동물들을 세심히 관찰한 후 화폭에 옮겼다. 그림 속 여성은 루소의 옛 연인이었던 야드비가다. 루소는 이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도 한편 썼는데, 야드비가가 주술사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장면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사실적인 풍경화가 아니라 화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초현실적인 내용의 그림인 것이다. 
루소는 이 그림을 1910년 열린 ‘앙데팡당’전에 출품했다. 그림을 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아름다움을 분출하는 그림이다. 올해는 아무도 (그의 작품에 대해) 비웃지 못할 것이다.”라고 호평했고, 동료 화가들과 평론가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루소는 이 그림의 제목처럼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루소가 남긴 마지막 정글 그림이 되었다. 그해 9월 66세를 일기로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생전에는 아마추어 화가로 조롱받았지만 사후에 루소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다다와 입체파, 팝아트 등 이후 전개되는 현대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을 한 번도 배운 적 없어서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던 루소. 아마추어 직장인 화가로 시작했지만,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끝까지 노력했기에 끝내 성취할 수 있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꿈은 결국 그가 그린 ‘꿈’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런던 소더비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미술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과 기업체, 미술관에서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KBS 라디오 <문화공감>에 출연 중이며, 동아일보 칼럼 <이은화의 미술시간>을 연재 중이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자연미술관을 걷다』 등 13권을 저서를 출간했다. 

사보 『화폐와 행복』 1+2월호(2022년), 43-44p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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