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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⑥] 적성은 '발견'아닌 '발전'시키는 것

by 한국조폐공사 2021. 11. 30.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⑥

적성은 ‘발견’ 아닌 ‘발전’시키는 것

글 박진영(심리학 칼럼니스트)

자신과 꼭 맞는 일을 찾으라거나, 마음 속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들을 흔히 듣곤 한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때로는 적성과 열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재능 못지않게 사고방식에 의해서도 갈린다. 예컨대 똑같은 지능수준을 가지고 있더라도 노력해봤자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문제가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그만두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노력하면 더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더 많이 노력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성취를 이루는 현상이 나타난다. 

재능과 지능 역시 주어진 대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성장을 이뤄낸다. 반대로 재능과 지능은 주어진 것이며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 아이들은 심지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며 능력에 비해 과소 성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 성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믿는 만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능을 고정되어 있는 무엇이라기보다 말랑말랑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컨대 ‘문과 vs 이과’와 같이 한 가지 적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 새로운 능력들을 탐구하고 발전시킬 가능성을 제한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일-NUS 대학의 심리학자 한글 이름 표시할 것(Paul O'keefe)는 사람들에게 열정의 대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은 정해져 있다’, ‘한 번 발견한 열정은 계속해서 열정으로 남는다’, ‘새로운 경험을 해도 열정의 대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와 같은 문장들에 동의하는 편이라면 열정은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평소 취향과 맞는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읽게 했다. 예컨대 스스로를 이과보다는 문과적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문학에 관한 기사 하나와 ‘인터넷의 미래’ 같은 이과적 기사를 읽게 했다. 그러고 나서 두 기사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얼마나 흥미를 느꼈고 얼마나 더 자세히 알고 싶은지, 해당 분야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평소 자신의 원래 취향과 상관없이, 열정과 흥미의 대상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원래 취향과 다른 분야의 기사에서도 큰 흥미를 느끼며, 해당 분야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열린 마음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실험에서는 집단을 두 개로 나눠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흥미는 한 번 정해지고 나면 바뀌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흥미는 말랑말랑하고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며 바뀔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그러고 나서 평소 취향과 같거나 다른 글을 읽게 했을 때, 이번에도 역시 흥미는 말랑말랑하고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비해 새로운 분야에도 큰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정과 관심은 ‘발견’하는 것이라기보다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열정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내 관심사라는 좁은 틀에 갇혀 새로운 관심거리를 애초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적성이나 관심사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을 마주했을 때 그 내용이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탐구하겠다는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려움을 곧 자신의 재능 부족 또는 적성과 맞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적성이 말랑말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새롭고 어려운 과제를 맞이해도 의욕을 잃지 않는 편이었다. 어렵지만 탐구하다보면 새로운 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어쩌면 그간 내가 손쉽게 포기해왔던 많은 일들에 있어 내 적성이 아니라는 말을 핑계처럼 둘러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포기도 필요한 일이지만 해보지도 않고서, 어쩌면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날려버렸던 거라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한 가지 더 큰 문제라면 점점 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협업이 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가 싫어서 문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 심리학을 하면서 매일매일 통계와 프로그래밍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회과학 관련 통계만 하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어느덧 의학 통계와 머신러닝을 활용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분야 간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성을 하나 찾으면 된다는 것은 옛날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적성을 ‘문과 vs 이과’로 나누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를 일찍 차단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듯하다. 적성이 문과 아니면 이과로 나뉜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 일반적으로 문해력이 좋은 사람들은 수리능력도 좋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적성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부터 바꾸는 것일 거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등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대중서를 집필했다. 현재는 노스캐롤 라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의과대학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을 연재 중이다. 심리학의 주요 개념 및 흥미로운 최신 연구를 쉽게 풀어내 우리의 마음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보 『화폐와 행복』(2021) 11+12월호, 57-58p

※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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