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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조희창의 클래식 읽기 ⑦] ‘마지막 낭만주의자’, 드디어 날아오르다!

by 한국조폐공사 2022. 2. 28.

조희창의 클래식 읽기 ⑦

‘마지막 낭만주의자’, 드디어 날아오르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18 
Sergei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2 C minor Op.18

글 조희창(음악평론가)

라흐마니노프

“내 안에서 뭔가 부러져버렸다. 오랫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반성해본 결과,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주 깊은 무감각의 상태가 되었다. 낮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서 파괴되어 버린 내 인생을 한탄하며 보내고 있다.”

젊은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이렇게 자신을 비관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였다. 날고 기는 수재들이 모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졸업시험에서도 그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받았다. 그러나 스물네 살 되던 1897년에 야심만만하게 발표한 교향곡 1번은 참담한 평가를 받았다. 당시 ‘러시아 5인조’ 중의 한 사람인 작곡가 세자르 퀴는 《누벨 상트페테르부르크》지에다 “지옥에 있는 음악원 학생이 ‘이집트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주제로 교향곡을 쓴다면, 아마도 라흐마니노프의 이 교향곡과 같을 것이다”라고 어마어마하게 혹평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라흐마니노프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그는 무려 3년 동안이나 제대로 작곡을 못하고 얼빠진 사람처럼 지냈다. 밤낮 술에 절어 사는 그를 안쓰러워한 친척이 의사를 수소문한 끝에 심리치료의 대가인 니콜라이 달 박사를 소개했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걸었다. “당신은 이제 협주곡을 쓰기 시작할 거예요. 정말 잘할 수 있어요. 누가 봐도 최고의 작품이 될 거예요”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 속삭임을 통해 얼어붙어 있던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은 지 몇 달 후부터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운 곡을 쓰기 시작했다. 1900년 가을부터 1901년 4월에 걸쳐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한다. 그해 11월 9일, 드디어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연주와 알렉산더 실로티가 지휘한 모스크바 필하모니의 협연으로 이 곡을 초연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무대로 돌아온 라흐마니노프를 열렬히 환영했다. 《루스카야 무지칼나야》지는 이렇게 환호했다. “연주회에 이토록 많은 청중이 모인 적은 루빈시테인의 역사적 공연 이후 없었다. 이 정도로 열광적인 박수 소리가 연주회장에 울려 퍼진 것도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으로 러시아 예술계의 최고상인 글린카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고, 오랫동안 좋아한 사촌 나탈리아와 약혼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미국으로 떠나는 1917년까지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라흐마니노프

‘올 바이 마이셀프’의 원곡
1악장 모데라토(Moderato, 적당히 빠르게). 일명 ‘크렘린의 종소리’라고도 하는 8마디의 강렬한 피아노 화음으로 시작한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종소리와 함께 한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낮고 어두운 종소리가 점점 다가오면 현악기가 제1 주제를 연주하고, 그에 맞추어 피아노가 소름 돋는 아르페지오(음을 연속적으로 펼쳐서 연주하는 주법)로 화답한다. 피아노와 관현악은 마치 소용돌이치는 강물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이어 비올라가 인도하는 감미로운 제2 주제가 나오고, 금관악기가 울려 퍼지면서 발전부로 진입한다. 마치 폭풍의 언덕에서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듯 강렬한 몽환경을 연출한다.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 음을 끌어서 천천히). 오케스트라의 짧은 경과구를 거쳐 플루트가 첫 주제를 연주한다. 이 매혹적인 선율을 다시 클라리넷과 피아노가 이어간다. 최면에 걸린 듯 갖가지 감정의 세계를 헤엄치면서 가라앉았다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아다지오 선율은 에릭 칼멘이 <All by myself>라는 팝송에 사용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라흐마니노프의 별명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3악장은 알레그로 스케르찬도(Allegro scherzando, 강한 음으로 빠르게)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케스트라가 춤곡풍의 리듬으로 시작하면 피아노가 웅장한 제1 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오보에, 비올라와 클라리넷, 호른이 연주하는 서정적인 제2 주제가 대비된다. 두 주제는 서로 만나고 엇갈리며 속도를 올리다가 C장조의 환한 기운으로 바뀌어 클라이맥스로 돌진한다. 장엄하고 상쾌한 울림으로 곡을 마무리 짓는다. 피아노 협주곡의 역사를 말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명곡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조희창 (음악평론가) │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대전예술의 전당 외 문화예술회관, 기업에서 공연해설 및 클래식 음악 강의를 하고 있다. 소니뮤직 클래식 담당, KBS 1FM 작가, KBS 1TV <클래식 오디세이> 대표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객석> 기자, 월간 <그라모폰 코리아> 편집장 <윤이상평화재단> 기획실장,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행사 음악분야 평가위원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내비게이터’, ‘베토벤의 커피’ 등이 있다.

사보 『화폐와 행복』 1+2월호(2022년), 37-38p

※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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