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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그림보고 화가 읽기 ⑫] ‘레디 메이드의 신화’를 쓴 마르셀 뒤샹

by 한국조폐공사 2021. 11. 30.

그림보고 화가 읽기⑫

‘레디 메이드의 신화’를 쓴 마르셀 뒤샹   

글 이은화(미술평론가)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가게에서 산 남자 소변기에 ‘R. Mutt’라고 서명한 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했다. 작품 제목은 ‘샘’으로 붙였다. 이 협회는 연회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고, 출품작들은 심사 없이 다 전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막식 전 이 변기만 전시가 거부되면서 격렬한 논쟁이 일었다. 이건 미술작품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현대미술에 가장 영향을 준 작품이자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손꼽힌다. 미술사를 빛낸 명작 변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변기가 어떻게 예술품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20세기 미술을 대변한단 말인가?

‘샘’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뒤샹의 이전 행적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887년 프랑스 북부의 농촌 마을 블랑빌 크래봉에서 태어난 뒤샹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화가로 활동했다. 1912년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실험적인 회화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를 발표해 파리 미술계에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입체파 미술운동을 이끌던 조지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는 신문지나 벽지 등 일상의 오브제를 그림 위에 부착한 첫 콜라주 작품을 탄생시켰다. 두 사람이 일상의 사물을 위대한 미술의 재료로 승격시킨 최초의 화가였다면 뒤샹은 이내 이들이 이룬 것보다 더 혁신적인 미술을 선보였다. 1913년 부엌에서 쓰는 나무 스툴 위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고정시킨 최초의 ‘레디 메이드’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가 예술가로서 한 일이라고는 자전거 바퀴와 둥근 나무 의자를 작업실로 가져와 쇠 봉으로 고정시킨 것 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의 미술이었다. 무릇 미술작품이라 하면 화가나 조각가가 공들여 그리거나 잘 만든 창의적인 것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지만, 뒤샹은 이런 규범과 관념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는 작품 자체보다 미술가의 생각이나 선택 행위가 더 중요하다며, 망막의 예술이 아닌 지성의 예술을 강조했다. 4년 뒤 뒤샹은 더 진보한 레디 메이드 작품 ‘샘’을 전시에 내놓으며 뉴욕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전거 바퀴'(1913년).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이다.

 

변기가 예술이 될 때
논란의 전시회 개막식을 치르고 난 다음날 독립미술가 협회 회장은 언론에 이렇게 밝혔다. “‘샘’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매우 유용한 물건일지 모르지만 미술전시장은 알맞은 자리가 아니며, 일반적 규범에 따르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아닙니다.” 뒤샹도 물러서지 않았다. 작품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박했다. “머트 씨가 ‘샘’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건 아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한 뒤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능적 의미를 상실시키는 장소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낸 것이지요.” 
그의 말처럼 일상의 흔한 물건도 예술가가 의도를 가지고 선택해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장소에 가져다 놓게 된다면,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니고, 변기도 더 이상 평범한 변기가 아니다. 그것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예술가가 부여한 예술품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의 물건도 작가의 선택으로 미술제도 속에 들어와 순환되면 미술작품으로서 가치를 획득한다는 의미다. 
예술가가 직접 그리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제작된 기성품을 선택해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선언할 때 관객들은 과연 그것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모두의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역사는 뒤샹의 손을 들어주었다. 변기에서부터 자전거 바퀴, 의자, 옷걸이, 삽, 엽서 등 그가 선택한 수많은 일상의 오브제들은 20세기 최고의 미술작품으로 추앙받으며 세계 유명 미술관들에 고이 모셔져 있으니까 말이다.

1917년 처음 선보인 '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사진을 찍었다.

20세기 미술의 ‘아이콘’
사실 1917년에 처음 선보인 원조 변기는 소실되고 없다. 사진으로만 오리지널 ‘샘’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대신 1960년대 뒤샹의 허가 하에 몇 개의 복제품이 만들어져 세계 도처의 주요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다. 이후에도 뒤샹은 모나리자 그림엽서 위에 콧수염을 그려 넣은 ‘L.H.O.O.Q’를 비롯해 논란 많은 레디 메이드 작품을 계속 발표했고, 여장을 한 채 에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성 정체성을 바꾸는 등 논란과 기행을 일삼으며 악명 높고 영향력도 큰 미술계 인사가 되었다. 1923년, 36세의 뒤샹은 돌연 모든 미술 활동을 접고 은퇴를 선언했다. 어렸을 때부터 즐기던 체스 게임에 몰두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도 그는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체스 실력도 뛰어났다. 
미술가로 활동한 기간도, 남긴 작품수도 그리 많지 않지만 뒤샹의 이름은 언제나 피카소와 동급으로 거론된다. 2004년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20세기 미술에 가장 영향을 준 작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피카소를 제치고 뒤샹이 당당히 1위로 이름을 올렸다. 뛰어난 손재주로 잘 만드는 수공예적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행위와 아이디어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믿었던 뒤샹적 발상의 승리였다. 반예술, 반미학을 표방했던 그의 레디 메이드 작품들은 기존의 예술 개념을 부정했지만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포문을 열었고, 이제 미술사는 이 변기를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칭송한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입문서나 미술교과서에 필수로 등장할 만큼 큰 명성을 누리며 현대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죽은 상어를 방부액에 집어넣은 데이미언 허스트도, 자신이 쓰던 침대를 전시한 트레이시 에민도, 헌 냄비나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를 쌓아 멋진 조각을 만들어내는 최정화도 모두 뒤샹의 후예들인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런던 소더비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미술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과 기업체, 미술관에서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KBS 라디오 <문화공감>에 출연 중이며, 동아일보 칼럼 <이은화의 미술시간>을 연재 중이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자연미술관을 걷다』 등 13권을 저서를 출간했다. 

사보 『화폐와 행복』 11+12월호(2021년), 53-54p&nbsp;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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