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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공간 산책 ⑥] 정선 고한읍 폐광촌의 작은 기적

by 한국조폐공사 2021. 11. 30.

공간 산책⑥

정선 고한읍 폐광촌의 작은 기적

글 김혜영(여행작가)

청량리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정선 고한읍 고한역에 정차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역 앞마당에서 읍내가 훤히 보인다. 역 맞은편 고한시장 입구 표석에 ‘여기가 해발 700m'라 쓰여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산지대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탄광촌으로 꽤 이름을 날렸던 곳이었다고 한다.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폐광 이후 탄광촌 사람들의 삶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국내 첫 예술 광산 ‘삼탄아트마인’
정선군과 태백시 경계에 있는 고한읍은 1960년대 탄광이 개발되었다. 탄광촌이 형성되고, 전국에서 일꾼들이 몰려들었다. 지역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그런데 80대 이후 석유와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석탄 산업이 시들해졌다. 마침내 1989년 정부 정책에 따라 강원도내 탄광이 대부분 폐광됐다. 광부들은 하나둘 탄광촌을 떠났다. 
정부가 다시 지역경제를 살리려고 고한읍에 내국인 카지노 공기업인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를 건설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빈집만 점점 늘었다. 2013년 한 줄기 빛처럼 폐광촌에 문화예술단지가 조성됐다. 이곳이 고한역에서 차로 약 8분 거리에 있는 ‘삼탄아트마인’이다. 

옛 광산 건물을 활용한 삼탄아트마인 전시장의 외관


삼탄아트마인은 2001년 폐광될 때까지 38년동안 석탄을 채굴했던 정암광업소를 도시재생한 문화예술 창작공간이다. 한때 종업원이 3,000명에 달했던 국내 최대 탄광 사업장이었던 만큼 면적이 매우 넓다. 광부들의 작업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탄광 현장과 채굴에 사용한 기계, 광부와 관련된 각종 서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폐광의 역사 현장을 문화예술인의 작업 공간, 전시관, 미술 체험 시설, 공연장, 미술관, 레스토랑 등으로 고쳐지었다. 전시실과 미술관에는 삼탄아트마인 설립자 고(故) 김민석 씨가 30년동안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수집한 10만여 점이 넘는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탄광의 역사를 담은 문화예술 창작 공간
삼탄아트마인의 중심 건물인 삼탄아트센터는 정암광업소 시절 사무 공간과 광부 3,000여 명이 1,000여 명 씩 3교대로 나누어 출퇴근 시 사용하던 2개의 공동 샤워실, 장화를 닦던 세화장, 세탁실과 수직갱을 움직이던 운전실 등이 있던 건물이었다. 예술가들이 당시의 현장을 잘 살려 삼탄역사박물관, 현대미술관 캠, 예술놀이터, 작가 스튜디오 등으로 재탄생시켰다. 
내·외국인 작가가 상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 공간은 세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15개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방에 독특한 이야기와 콘셉트를 담았다. '예술광부 되기 프로젝트'를 신청하는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삼탄아트센터 1층에서 연결다리로 이어지는 ‘레일바이뮤지엄’은 채굴한 석탄을 집합시키던 시설로, 직경 6m 깊이 600m의 수직 갱도가 보존돼 있다. 광부들이 출퇴근이나 입욕 전후 옷을 갈아입던 탈의실은 아프리카 원시미술품, 남미 잉카문화 유물을 비롯해 중국, 일본, 유럽 등에서 수집한 진귀한 세계 미술품이 모여 있는 수장고로 바뀌었다.


삼탄아트마인내 건물이 여러 동이어서 전시실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전시품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야외 광장에는 낡은 탄광 건물에 어울리는 빈티지한 감성의 옛날 버스와 자동차 등이 전시돼 있어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한다. 
2013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201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을 수상하고,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전국적인 인기를 끈 삼탄아트마인.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곳이다. 

관광객이 삼탄아트마인 광장에 놓인 옛 자동차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주민이 만들고 가꾸는 마을호텔 18번가
고한역 아랫동네인 고한18리는 고한읍에서도 인적이 가장 뜸한 폐광촌이었다고 한다. 이 폐광촌의 한 골목이 최근 3~4년새 상전벽해에 버금갈 만큼 변했다. 고한18리 주민이 마을호텔 콘셉트로, 골목상점들을 하나로 모아 호텔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골목 안에 음식점, 카페, 사진관, 세탁소, 숙박업소 등 다양한 업종이 있는 고한18리의 장점을 살려 조성한 것이다. 
식당을 고쳐 지은 숙소 ‘마을호텔 18번가’를 중심으로 골목 상점들이 레스토랑, 카페, 리셉션, 라운지 등의 역할을 한다. 마을호텔 18번가로 진입하는 골목길은 호텔 로비, 골목 입구 마을회관은 호텔 세미나룸, 카페 수작은 호텔 라운지, 국일반점, 구공탄구이, 누리한우촌은 호텔 레스토랑 역할을 한다. 상점 주인은 모두 호텔리어가 된 것. 
마을호텔 18번가는 한실과 양실 더블룸(2인실) 각각 1개, 트윈룸(3인실) 1개로 구성된 작은 숙소다. 숙박 손님에게 식당, 카페, 사진관 등 협력 업체 10% 할인 쿠폰을 준다. 삼탄아트마인은 무려 50% 할인해준다. LED 야생화 만들기와 다육아트 등 고한읍의 특색을 살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마을호텔을 조성하기까지 주민의 역할이 매우 컸다. 서로 합심해 골목 안 담장을 헐고, 쓰레기와 폐 전선을 치웠다. 지역 예술가는 담벼락에 동화처럼 예쁜 벽화를 그렸다. 부녀회에서는 벽걸이, 리스, 편지꽂이, 화분대 등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어 골목을 장식했다. 이런 노력 덕에 관에서 시행하는 공간 재생 지원 사업을 통해 인적·물질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겨울이 오면 골목에 가득 피었던 꽃들이 사라진다. 골목이 썰렁해질까 봐, 주민이 한 잎 한 잎 공들여 만든 LED 야생화 화분을 화단에 설치해 놓았다. 낮에도 환히 빛나는 야생화 덕분에 이 마을을 지날 때 춥지 않을 것 같다. 

 

◇맛집: 예촌돌솥밥(033-592-4610)은 고한 주민이 적극 추천한 돌솥밥 전문점이다. 식당 내부가 깔끔해 첫인상이 좋다. 주 메뉴는 영양돌솥밥과 곤드레돌솥밥. 1만 4,000원짜리 곤드레돌솥밥을 주문하면, 정선 곤드레가 듬뿍 올라간 돌솥밥에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를 포함한 스무 가지 반찬이 딸려 나온다. 반찬이 모두 맛깔나다. 제철 식자재를 사용하므로 반찬 종류는 수시로 바뀐다. 고한시장 갱도1 출입구 맞은편에 있다.

 

김혜영│ 도보 여행을 즐기는 여행작가. 저서로 『타박타박 서울유람』 『주말여행 버킷리스트 99』 『5천만이 검색한 대한민국 제철 여행지』와 『경북의 아름다운 걷기 여행』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외 2권의 공저가 있다. 중등국어 3종 교과서와 참고서, EBS 국어 교재에 여행 기사가 실렸다.

사보 『화폐와 행복』 11+12월호(2021년), 49-52p

*본지에 실린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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