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장 시벨리우스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작품47

by 한국조폐공사 2021. 9. 27.

조희창의 클래식 읽기 ⑤

“고드름 속의 찬란한 불꽃!”
장 시벨리우스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작품47
Jean Sibelius :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글 조희창(음악평론가)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이라는 강대국에 끼어 오랫동안 고생한 나라다.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해 전 국토를 병합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되면서 핀란드에는 민족정신을 되살리자는 문화 운동이 고개를 들었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1835년의 핀란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의 복원이었다. 이후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틈타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하고 이듬해 공화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독립국으로서의 평화도 잠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돼 많은 희생자를 내고 영토도 줄어들었다. 바로 이 시대를 함께 한 시벨리우스였기에 그의 음악은 ‘핀란드의 영혼’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는 가족의 권유 때문에 헬싱키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지만 이내 그만두고 헬싱키 음악원으로 옮겼다. 그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음악원의 현악 4중주단에서 제2 바이올린을 맡기도 했고 협연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주회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긴장한 탓에 공연을 망치고 말았다. 그는 절망한 나머지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나는 밤낮없이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펜과 잉크보다 우아한 바이올린 활이 훨씬 좋았다. 그러나 바이올린의 명인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걸 고통스럽게 깨달아야 했다”라고 그는 고백했다. 
비록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꿈을 접고 작곡을 하게 되었지만, 시벨리우스에게 바이올린은 평생의 친구였다. 38세가 되던 1903년에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하나를 작곡했다. 시벨리우스가 이 협주곡을 구상할 때는 이미 교향곡 1,2번과 <카렐리아> <핀란디아> 등의 명곡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는 기세를 몰아서 차이콥스키와 브람스 못지않은 멋진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1904년 봄에 열린 이 곡의 초연에서 청중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평론가들조차 기교적인 면에 치중해 곡의 균형을 잃었다고 평했다. 낙담한 시벨리우스는 1년 반 동안 곡을 다시 매만져서 1905년 가을에 개정판을 내놓았다. 개정판은 베를린에서 카렐 할리르의 독주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성공적인 발표가 이뤄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야샤 하이페츠 같은 뛰어난 실력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하게 되면서 역사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의 대열에 당당히 오르게 되었다.

3악장, 북극곰을 위한 폴로네즈
비록 단 한 곡만을 남겼지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위력은 막강하다. 제1악장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은 3개의 주제가 중층적으로 얽혀있고, 곡의 길이 면에서도 전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관현악의 신비한 음향과 바이올린의 화려한 어울림이 아주 멋지다. 
제2악장 (Adagio di molto, 매우 느리게)은 북구의 정서가 가득 배어있는 로망스다. 클라리넷의 쓸쓸한 노래와 정열적인 바이올린 독주가 대비를 이루며 아득한 동경의 세계를 연출한다. 제3악장 (Allegro ma non tant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은 가장 인기있는 악장이다. “북극곰을 위한 폴로네즈”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신선한 춤곡풍의 리듬속에서 초절적인 바이올린의 기교가 귀를 사로잡는다. 여름에 아이스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들으면 피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곡이다.  
이 곡을 발표한 이후 시벨리우스는 1906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고, 1912년엔 빈 왕립음악원 교수로 초빙되었으며, 1914년엔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시벨리우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1926년 이후, 그러니까 그의 나이 60세 이후부터 시벨리우스는 어찌 된 일인지 몇 개의 소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곡 활동을 중단했다. 아마도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92세로 생애를 마쳤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의 음반부터 막심 벤게로프,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리사 바티아쉬빌리, 사라장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는 이 곡을 녹음했다. 우리에겐 1970년에 정경화가 런던심포니와 남긴 음반이

친근하다. 영상으로 보고싶은 분에겐 힐러리 한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남긴 실황도 추천한다.

음반 - 정경화(바이올린), 런던심포니/ 앙드레 프레빈(지휘)
영상 - Sibelius : Concerto pour violon (Hilary Hahn)

 



사보 『화폐와 행복』 9+10월호(2021년) 57-58p 게재

 

 

※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