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연트럴파크, 경의선 숲길을 걷다

by 한국조폐공사 2021. 5. 25.

KOMSCO LIFE_여기 어때요? ⑧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연트럴파크, 경의선 숲길을 걷다

 

글·사진 서진원(기술연구원 디자인연구센터)

 

 ‘연트럴파크’는 서울 경의선 숲길 연남동 구간을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에 빗대어 부르는 이름이다. 도심 주택가와 빌딩 숲 사이를 가로질러 길게 나있는 독특한 이 공원은 많은 이에게 걷고 싶은 자극을 주는 곳이다. 철길 양옆으로 1970년대 레트로와 현재가 어우러져 공존하는 그 곳. 이제부터 함께 걸어가 보자. 

 

따사로운 봄 햇살이 사랑스럽게 내리쬐던 주말 아침, 아내와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 길을 아내와는 처음 걸어본다. 출퇴근하며 흔히 보아왔고, 식사를 위해 자주 지나다니던 곳을 딱히 시간 내서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걷다 마주한 봄날의 풍경은 평상시 바쁘게 지나다니며 보았던 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순간 게으름만 피웠던 나 자신을 반성했고 아내에게도 조금은 미안해졌다.

2005년,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지하로 내려가면서 원래 있었던 지상 철길을 숲길과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의 핫플(핫 플레이스) 경의선 숲길이 되었다. 총 길이 6.3km의 경의선 숲길은 용산 원효동에서 시작해 많은 볼거리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홍대입구 부근을 지나 은행나무의 행렬이 절정을 이루는 연남동까지 코스마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서강대역’에서 출발해 북서쪽 끝인 연남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울 영업개발처 사옥과도 가까운 이 코스는 직원들이 점심시간 산책길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1. 숲길 초입과 땡땡거리 전경. 아침 공원길은 한산했다. 철길 옆 즐거워하는 역무원과 고단한 표정의 어머님 모습 동상이 대비된다. 기타 치는 청년은 조형물이다.

예전에는 허름했을 주변의 주택들은 이제 상당수가 분위기있는 카페와 음식점으로 탈바꿈했다. 건물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울타리 없는 정원처럼 보인다. 분명 우리나라인데, 이국적인 색채로 인해 마치 다른 세상에 여행을 온 듯 묘한 느낌을 받는다. 그 앞에는 홍대 문화의 발원지 ‘땡땡거리’가 있다. 철길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올 때 나던 “땡땡”소리에서 따온 이름이라는데, 인디밴드들이 모여 공연도 하고 주말 저녁에는 버스킹 하는 젊은 가수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조그마한 부스들이 나타난다. ‘책거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문학산책’, ‘인문산책’, ‘미래산책’ 등의 부스에는 분야별 서적들이 비치돼 있었다. 안에는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았다. 

2. 책거리 테마별 부스들. 흔히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책들이 준비돼 있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코너도 있다.

다시 일어나 걷는데, 한 대기업의 빌딩이 길을 막아선다. 이 길은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당황하던 순간 그 큰 건물 아래로 동굴처럼(?) 이어져 있는 길이 보였다. 물론 행정적인 협의가 사전에 있었겠지만, 시민들은 건물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그 유동인구는 다시 상가로 유입이 되니 길을 내어 준 기업도 손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거리의 부스들이 해당 기업의 지원으로 설치됐다고 하니, 상생 협력으로 기업 이미지도 좋아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3. 각종 간식과 소품들. 거리에는 공방들이 많다.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공예품, 액세서리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홍대입구 전철역 횡단보도를 건너면 경의선 숲길의 하이라이트인 ‘연트럴파크’가 시작된다. 이곳에는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종류의 음식점과 주점이 있고, 이를 즐기는 연인들과 가족, 반려견과 산책하는 이들, 각종 물건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4. 연트럴파크 이정표. 애칭인줄 알았던 공원 이름은 정식 명칭이었다.

조그만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점심 식사할 곳을 검색해봤다. 이태원에 있는 파스타 전문 음식점의 체인점이 연남동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80년대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담겨 나오는 음식이 무척이나 고상해 보였던 그 집. 들어가 보니 아기자기한 복고풍의 소품들이 귀엽게 자리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 중 남자는 나까지 두 명이 전부였고 모두 여성 손님이었다. 붐비는 시간인데도 운 좋게 빈자리가 있어 바로 앉아 주문을 했다. 국밥 체질인 나로서는 다소 즐겨 찾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아내는 맛있다며 잘 먹었다. 

5. 음식점과 메뉴들. 1980년대 콘셉트로 본인의 이름을 걸어둔 주점들과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들이 눈에 띈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야키토리 묵’이라는 주점은 주방장의 선택 요리를 내어주는 ‘오마카세’ 맛집이다.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이 집은 두달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근방에 ‘스콘’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디저트로 레몬 케이크를 꼭 권하고 싶다. 사진 중간의 파스타는 ‘빠레뜨 한남’의 주요 메뉴다.

 

음식점을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았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공원길에는 잔디 보호를 위해 ‘출입금지’ 표지가 붙어있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잔디 위에 누워 일광욕 과 피크닉을 즐기는 연인과 가족들로 가득할 것이다. 봄에는 벚꽃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있으며, 가을에는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 여름이 오면 다시 한 번 이 거리를 걷고 싶다. 이름 모를 버스킹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으며, 테라스 있는 이층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떠올려 본다. 

사보 『화폐와 행복』(2021) 5+6월호 55-58p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