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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평생 여성을 그린 에드가르 드가

by 한국조폐공사 2020. 9. 25.

평생 여성을 그린 에드가르 드가

 

글 이은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는 아름다운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 발레리나들은 무대 위에서 각광받는 화려한 모습보다는 고된 연습 중이거나 지쳐있는 일상의 모습이 훨씬 더 많다. 무희뿐 아니라 그의 그림에는 유독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드가는 왜 그토록 여자를 많이 그렸던 걸까? 특히 발레리나를 많이 그린 이유는 뭘까? 


1834년 파리의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드가는 40대까지는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팔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13세에 엄마를 여읜 드가는 아버지와 독신인 삼촌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집안의 권유로 법대에 입학했다가 곧 그만두고 국립 예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을 배웠다. 1870년대 중반,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드가는 처음으로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고, 여느 때 보다 더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다. 

1.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발레 수업, 1873-76


그가 발레리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무대 위 공연 장면을 그렸으나 점차 리허설이나 수업 시간 등 무대 뒤의 무희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해서 200점이 넘는 발레리나 그림 중 무대 위 장면은 50여 점 뿐이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도 발레 수업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나이든 남자 선생은 유명한 무용수였다가 안무가로 변신한 쥘 페로로, 드가의 다른 그림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힘들고도 길었던 수업이 다 끝났는지 어린 무희들은 완전히 녹초 상태로 보인다. 엄하고 경직돼 보이는 선생님과 달리 학생들은 고단한 몸을 뒤틀며 스트레칭 하거나 머리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이렇게 화가는 발레 수업 후 체력이 소진된 소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해 화면에 새겼다. 드가는 쥘 페로와 친구 사이라서 이런 비공개 수업뿐 아니라 페로가 활약했던 파리 오페라 하우스도 편히 드나들 수 있었다. 

2. 에드가르 드가, 기다림, 1880-1882


4년 후 그린 <기다림>은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 중인 발레리나를 묘사하고 있다. 무희는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왼쪽 발목이 아픈지 마사지를 하고 있다. 다친 부위가 아직 안 나았나 보다. 옆에 앉은 검은 옷의 중년 여성은 무희의 엄마로 보인다. 발레리나에게 부상과 통증은 일상이고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해서 엄마는 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손에 든 우산 끝만 바라보고 있다. 마치 ‘앞만 보고 견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3. 에드가르 드가, 머리 빗기, 1896년경


그렇다고 드가가 춤추는 무희의 일상만 그린 건 아니다. 머리 빗는 여자, 목욕하는 여자, 노래하는 여자, 다림질 하는 여자 등 평범한 여자들의 매우 사적이고도 일상적인 장면을 종종 화폭에 담았다. 특히 그는 머리 빗는 여자를 자주 그렸는데, 그중 앙리 마티스가 오랫동안 소장했던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붉게 처리된 그림 속엔 연분홍 블라우스를 입은 하녀가 주인 여자의 긴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 임신부로 보이는 주인은 강한 빗질에 이끌려 몸이 뒤로 젖혀진 채 고통스럽다는 듯이 손으로 자신의 두피를 누르고 있다. 마치 “아야, 아파. 좀 살살 빗어줘”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긴 머리를 가져보거나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상황이자 고통이다. 


드가는 남자였지만 긴 머리 여자들이 어떻게 머리를 빗고, 잘 빗겨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모델들을 통해 여자들의 사적이고 은밀한 장면을 관찰해 그릴 수 있었다. 심지어 긴 머리의 느낌을 알기 위해 모델을 불러다 몇 시간동안 머리 손질을 해주기도 했다. “그분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모델을 서는 네 시간 내내 내 머리만 빗어주거든요.” 드가의 모델이 털어 놓은 말이다. 피카소나 클림트와 달리 드가는 여성 누드화를 그릴 때도 모델과 정을 통하지 않았다. 오직 그림에만 집중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성불구로 오해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평생 여성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여자를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미술사학자 존 리처드슨은 드가가 여성 모델들이 고통 속에서 싸우는 것을 보는 걸 즐겼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른 남성 화가들처럼 관능미 넘치는 매혹적인 여성이 아니라 피곤하거나 고통 받는 일상 속 여성을 자주 그렸다는 것이다.   


고통에도 색이 있다면 그건 분명 피처럼 붉은 색일 터. 이 그림 전체가 온통 붉은 색인 이유가 설명된다. 하녀의 머리와 팔에서 주인의 몸을 따라 이어진 대각선은 그 고통의 흐름이다. 드가는 긴 머리 임산부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과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제 왜 그가 발레리나에 천착했는지도 설명된다. 발레리나는 무대에 서기 전까지 피나는 노력과 고된 연습 과정을 요하는 극한 직업이다. 부상과 육체의 피로가 일상인 무희야 말로 고통을 표현하기에 완벽한 주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여성 혐오주의자로 결론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전혀 다르게 해석할 일화들도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는 재능있는 중산층 자녀도 있었지만 주로 하류층의 가난한 집 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입단했다. 어린 무희들은 화려한 무대가 끝난 뒤 돈 많은 후원자의 손에 이끌려 원치 않는 관계를 맺곤 했다. 드가는 그중 한 소녀를 그런 삶에서 구제해 주기 위해 자신의 그림 모델로 고용한 적도 있다. 또한 동료 여성화가 메리 카사트의 예술을 인정하고 그의 그림을 평생 소장했다. 화가 본인은 여자를 추하게 그려서 여자들이 자신을 증오할 거라 말했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록 지쳐 보이고, 아프거나 피곤해 보일지라도 그의 그림 속 모델들은 이상적이고 관능적인 여성들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런던 소더비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미술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융합미술연구소 크로싱 대표로 활동 중이다. 여러 대학과 기업체, 미술관에서 강의했고, SBS CNBC <아트뉴스 쇼>에 출연했다. 현재 동아일보에 <이은화의 미술시간>을 연재 중이며 KBS1 라디오 <문화공감>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그랜드 아트투어> 등 13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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