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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다재다능했던 천재 음악가 생상스 , ‘그대 마음에 내 마음 열리고’

by 한국조폐공사 2021. 1. 25.

KOMSCO CULTURE_조희창의 클래식 읽기①

다재다능했던 천재 음악가 생상스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아름다운 아리아 ‘그대 마음에 내 마음 열리고’

신년이 되면 음악계에서도 ‘올해의 음악가’라는 타이틀로 탄생 몇 백주년, 사망 몇 백주년에 해당하는 작곡가가 발표된다. 이를테면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고 말았지만,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베토벤의 공연, 음반, 책이 기획됐다.
그렇다면 올해의 음악가는 누굴까? 눈에 띄는 작곡가는 2021년 100번째 기일을 맞는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와, 100번째 생일을 맞는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피아졸라를 꼽을 수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ens, 1835 ~ 1921)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사망 100주기를 맞는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


2021 생상스 사망 100주기
마치 동양에서 세 살에 천자문을, 열 살에 사서삼경을 뗐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음악사에도 간혹 그런 터무니없는(?) 천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모차르트다. 다섯 살에 처음 음악을, 여덟 살에 첫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런 점에 있어선 생상스도 만만찮았다. 두 살 반에 피아노를 쳤고, 세 살에 첫 작품을 썼으며, 다섯 살부터 오케스트라 총보를 보기 시작했고, 열 살에 공식적인 연주회를 열었다. 이 데뷔 연주회를 마칠 즈음 객석에서 앙코르 요청이 들어오자 어린 생상스는 베토벤이 남긴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중 어떤 것이든 골라보라고 했고, 그 곡을 악보도 보지 않고 쳤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지만 버젓이 기록에 남아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가끔씩 이런 천재들이 있다.
생상스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였고, 지휘자와 평론가이기도 했다. 시집도 냈고, 희곡도 썼으며, 심지어 천문학과 고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프랑스의 ‘국민음악협회’를 결성해 차세대 작곡가의 대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음악 역사에서 이토록 다재다능한 인물은 19세기 독일의 멘델스존과 20세기 미국의 번스타인 정도밖엔 없었을 것이다. 
꽤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그 중에서도 인기있는 곡 몇 개만 골라보면, 압도적인 음향을 자랑하는 교향곡 3번 ‘오르간’이 있고, 멋진 바이올린 기교가 빛나는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도 있다. 어린이에서 노인까지 모두 좋아할 만한 관현악곡인 ‘동물의 사육제’가 생상스의 작품이며, 김연아가 2009년 피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 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한 곡도 생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춤’이었다. 그리고 치명적 여인의 이야기 ‘삼손과 데릴라’ 역시 빠트릴 수 없는 그의 걸작이다.

루벤스가 그린 '삼손과 데릴라'(1609~1610)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 아리아
‘삼손과 데릴라’는 이스라엘 최고의 영웅 삼손과 그를 죽음으로 이끈 여인 데릴라를 소재로 한 오페라다. 구약성서 사사기 13장에서 16장 사이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기원전 1100년경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은 아직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지역이기도 하다. 히브리 민족의 장군인 삼손과 팔레스타인 민족의 여인 데릴라의 비극은 그로부터 3,0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진행형인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해 그가 가진 막강한 힘의 비밀을 알아낸다. 삼손은 힘의 원천인 긴 머리카락이 잘리고 눈까지 뽑히게 되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이교도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는다는 이야기다. 페르디낭 르메르가 이 오래된 이야기를 대본으로 만들었고, 생상스가 곡을 붙여 오페라판 ‘삼손과 데릴라’가 태어났다. 1877년의 일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데릴라의 아리아들이 빛난다. 특히 2막에 나오는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가히 프랑스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 아리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팔레스타인 최고의 미녀이자 지성과 용기까지 갖추고 있는 여인 데릴라, 그녀가 삼손의 귓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 노래를 부른다.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려요. 새벽의 키스에 꽃봉오리가 열리는 것처럼 말이죠. 내 사랑이여, 흐르는 내 눈물을 마르게 하시겠다면 다시 한 번 그대 음성을 들려주세요. 데릴라에게 영원히 돌아오겠다고 말해주세요. 그 옛날의 따뜻한 약속, 들려주세요, 사랑한다는 그 언약을….
아, 내 사랑에 응답해주세요!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세요. 내 사랑에 응답해 주세요! 어, 황홀하게, 나를 황홀하게 해 주세요. 삼손, 삼손, 사랑해요….”

아, 이건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이런 노래에도 무너지지 않는 남자는 남자라 할 수도 없다. 삼손은 바로 이 노래에 답한다. “데릴라, 내 키스로 그대 눈물을 닦아주리니. 이제 걱정을 모두 잊어요. 데릴라, 당신을 사랑하오!” 물론 그 키스의 결과로 삼손은 치명상을 입는다. 달리 ‘팜므 파탈’, 치명적 여인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 결과를 모두 알고 다시 이 노래를 들어도 노래의 아름다움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결과를 알면 알수록 이 순간이 빛나는 것 같다. 설령 이 노래가 끝나면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 해도 이 순간만큼은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어진다. 노래에는 그 정도의 힘이 있다.

 

Elina Garanca

유튜브를 통해 마리아 칼라스, 리타 고르 등 명가수들이 부른 곡을 들을 수 있다. 현재 활동하는 가수 중에선 라트비아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Elina Garanca)의 노래를 권한다.

 

조희창 (음악평론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대전예술의 전당 외 문화예술회관, 기업에서 공연해설 및 클래식 음악 강의를 하고 있다. 소니뮤직 클래식 담당, KBS 1FM 작가, KBS 1TV <클래식 오디세이> 대표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객석> 기자, 월간 <그라모폰 코리아> 편집장 <윤이상평화재단> 기획실장,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행사 음악분야 평가위원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내비게이터’, ‘베토벤의 커피’ 등이 있다.

 

사보 『화폐와 행복』 1+2월호(2021) 46-47p 게재

※사보 『화폐와 행복』에 게재된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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