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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동인천 '싸리재'와 '배다리마을'에서 찾는 근대의 '화양연화'

by 한국조폐공사 2021. 3. 15.

KOMSCO CULTURE_공간 산책 ②

 

동인천 ‘싸리재’와 ‘배다리마을’에서 찾는 근대의 ‘화양연화’ 

 

글 | 사진 김혜영(여행 칼럼니스트)

   인천의 싸리재를 걸으며 이 고갯길의 1960년대 풍경을 상상해본다. 결혼을 앞둔 연인이 oo라사와 oo양화점에서 예복과 구두를 맞추고, 신식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상점이 즐비한 싸리재를 넘으면 배다리마을 헌책방 골목으로 이어진다. 개학을 맞은 학생들이 깨끗한 참고서를 찾으려고 헌책방 수십 곳을 돌아다닌다. 아마도 이 시절이 싸리재와 배다리마을의 화양연화였으리라.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아로새겨진 고갯길

동인천 싸리재는 중구 신포시장에서 동구 배다리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옛날에 이 고갯길에 싸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의 도로명은 ‘개항로’다. ‘개항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갯길의 역사가 매우 깊다. 구구절절 얘기하다가는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1883년 인천 개항 후 지금의 인천 중구청 일대에 일본인, 중국(청나라)인, 미국인, 프랑스인 등이 체류하는 각국 조계지가 설치됐다. 이곳에 살던 조선인들은 인근 싸리재와 배다리로 밀려났다. 1920년대말 조선인들은 싸리재에 포목점, 양화점 등을 열어 상권을 형성해나갔다. 당시 싸리재는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었으므로 늘 인파로 붐볐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싸리재는 건재했다. 병원, 한약방, 약국, 의료기상점, 금은방, 은행, 음악다방, 예식장, 백화점 등이 성황을 이루며 서울 명동 못지않은 상권을 자랑했다. 싸리재의 현재 모습만 아는 이에게는 이 이야기가 낯설 수밖에 없다. 1985년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있던 인천시청이 남동구로 이전하고, 1990년대 이후 인천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동인천 상권이 쇠락했으니. 병원, 예식장, 백화점, 공연장들이 폐업하고, 싸리재 일대가 침체기에 빠졌다. 
최근 긴긴 잠을 자듯 고요했던 거리가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슬슬 기지개를 켠다. 싸리재의 역사성과 빈티지한 매력에 빠진 이들이 빈 건물을 트렌디한 문화공간으로 되살리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깨어난 싸리재

▲폐업한 이비인후과 병원을 개조한 ‘브라운핸즈’ 카페  ▲노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싸리재’는 바리스타가 모든 커피를 모카포트로 내려준다.

싸리재 꼭대기에 자리한 ‘브라운핸즈’ 카페는 폐업한 이비인후과 병원을 개조한 곳이다. 언뜻 보면 철거하다 만 공사 현장 같아도 주말에는 빈 좌석을 찾기 어려울 만큼 손님이 많다. 병원 수납 창구, 진료서 보관함, 환자 대기용 나무 의자, 의료기 보관 캐비닛 등의 병원 기물을 인테리어에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한 노부부는 90년 된 일본식 목조 주택을 카페로 개조하고, ‘싸리재’라 이름 붙였다. 카페 안쪽에 노부부가 사는 100년 된 한옥이 숨어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부가 오랫동안 수집한 축음기들을 카페에 전시하고, 레코드판 음악을 틀어둔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단골들이 참새 방앗간처럼 들른다. 

▲싸리재의 끝자락 배다리 삼거리 인근에 자리한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싸리재 뒷골목에 숨어 있는 복합문화공간 ‘잇다스페이스’의 외관


백열전구 제조사 일광전구는 비어 있던 산부인과 병원을 백열전구 전시장 겸 카페로 고쳐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를 열었다. LED가 백열전구를 대체하면서 전구 회사들이 백열전구 생산을 중단했지만, 일광전구는 백열전구와 카페를 접목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1920년대 일제가 화약 원료인 소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소금 창고가 한때 사우나로 사용됐고, 해방 후에는 헌책방의 창고로 이용됐다가 지금은 갤러리가 된 근대건축물도 있다. 바로 ‘잇다스페이스’다. 붉은 벽돌 벽에 걸린 빛바랜 태극기가 이 건물의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싸리재의 레트로 콘셉트 건물들은 ‘잇다스페이스’나 ‘일광전구라이트하우스’처럼 후미진 뒷골목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술래잡기하듯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다리마을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싸리재가 배다리 삼거리에서 끝나고, 배다리마을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배다리마을은 인천 개항 후 거주지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100여년전 이 마을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이 있었다. 밀물 때면 여러 지역의 농산물을 실은 나룻배들이 갯골을 타고 들어와 배를 대던 나루가 있어 배다리마을이라 불렸다. 나루터 일대에 제법 큰 장이 섰다. 갯골은 1980년대 후반 복개 공사를 거치며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배다리마을에 헌책방골목이 조성된 것은 해방 직후 일본인들이 매각한 책이 배다리로 흘러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배다리마을에는 개항기 외국인 선교사들과 주민들이 세운 오래된 학교들이 있어 입지 조건이 좋았을 것이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도 1948년 가족과 배다리마을로 이사와 2년동안 헌책방을 운영했다. 그는 이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노라 회고했다. 

▲아벨서점은 배다리마을 헌책방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다. 

헌책방 거리의 전성기인 1960~1970년대에는 헌책방 40여 곳이 성업했다. 지금은 아벨서점, 한미서점 등 5곳만 남았다. 2016년 헌책방 거리가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반짝 주목받기도 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 속의 ‘수원왕갈비통닭’ 식당은 수원이 아닌, 배다리마을 ‘아울렛팬시점’이었다는 사실은 아쉽게도 화제가 되지 못했다.    
배다리마을 주민들은 침체한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매주 일요일 배다리삼거리에서 도깨비시장을 연다. 아벨서점은 정기적으로 시 낭송회와 강연을 주최한다. 1927년~1996년까지 인천 소성막걸리를 빚었던 양조장 건물에 입주한 ‘인천문화양조장’은 예술 창작 활동, 전시, 교육, 휴식 등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한다. 이들의 노력 덕분인지 작은 북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인기를 끌었던 배다리마을 헌책방 골목의 ‘한미서점’ ▲배다리마을 입구의 작은 독립서점 ‘나비날다책방’

※ 맛집 : 송미옥(032-772-9951)은 1958년 개업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복국 전문점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복어를 직접 사 오므로 식자재가 싱싱하다. 복맑은탕과 복매운탕의 장점을 뽑아 만든 듯한 복중탕의 육수 맛이 일품이다. 1972년에 개업한 중식당 용화반점(032-773-5970)도 주민들이 추천하는 맛집이다. 볶음밥과 고추짬뽕밥이 대표 메뉴다. 두 식당 모두 배다리마을 근처에 있다. 

 

김혜영│ 도보 여행을 즐기는 여행작가. 저서로 『타박타박 서울유람』 『주말여행 버킷리스트 99』 『5천만이 검색한 대한민국 제철 여행지』와 『경북의 아름다운 걷기 여행』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외 2권의 공저가 있다. 중등국어 3종 교과서와 참고서, EBS 국어 교재에 여행 기사가 실렸다.

 

사보 『화폐와 행복』(2021) 3+4월호 45-48p

 

*본지에 실린 글들은 각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한국조폐공사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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