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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최보기의 책보기 -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by 한국조폐공사 2016. 5. 18.

 

동물의 세계에는 슈퍼갑이 없다

 

최삼규의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태초에 조물주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꿀벌에게는 침이 없었다. 다른 동물에 대해 아무런 공격 수단이 없는 꿀벌은 언제나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생산한 꿀도 여차하면 빼앗겼다. 참다못한 꿀벌의 대표가 조물주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그리하여 조물주는 꿀벌에게 의 권리를 주게 되었다. 떼로 덤비는 벌침 앞에서는 사자도 독수리도 함부로 굴지 못했다. 그야말로 꿀벌 천지의 세상이 되었다. 개구쟁이 꿀벌들은 특히 행동이 느리고 순한 양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양들이 조물주를 찾아가 코뿔소 같은 뿔도, 사자 같은 이빨도, 고양이 같은 발톱도 없어 꿀벌들에게마저 봉이 되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읍소했다. 조물주는 꿀벌은 한 번 침을 쏘게 되면 자신도 죽어야 하는 것으로, 양들은 육식동물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손만대 번창하는 왕성한 번식력을 주는 것으로 설계를 변경했다고 전한다. 아주 오래된 이바구일 뿐이다.

 

MBC문화방송에서 오랫동안 자연 다큐멘타리 PD로 일했던,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자연 다큐멘터리스트 최삼규가 쓴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은 바로 그런 동물세계의 질서를 세밀하게 들여다 본 생생한 이바구책이다. ‘생물학자들은 야생 생태를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라는 세 단어로 살벌하게 표현하는데 (그보다는)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각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강점을 잘 살리면서 서로 균형 있게 생존해 나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이다. 그런 자연에는 갑질 하는 강자도, 당하기만 하는 약자도 없는 대신 오로지 섭리에 따르는 자연의 조화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최삼규의 주장이다.

 

  뻐꾸기의 탁란 과정이든 새끼 원앙의 첫 날개짓이든 자연 다큐멘터리의 제작은 시간과의 지루한 대결이다. 백수의 제왕 사자가 날쌘 몸놀림으로 사냥감을 포획하는 현장 역시 그렇다. 한 번 사냥으로 배가 부른 사자는 하루 이틀도 아닌 4~5일을 늘어지게 잠만 잔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자연의 질서다. 육식동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어슬렁거리면 초식동물이 살 수가 없다. 육식 동물들은 쓸데없이 사냥을 즐기거나 자기 힘을 과시하지 않는 대신 최소한의 배고픔을 해소하는 정도에서 사냥을 하도록 설계돼있다. 그것이 탐욕의 우리 인간 세계와 다른 점이다. 흔히들 라이온 킹이라고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다. 철저하게 모계사회를 유지하는 사자의 세계에서 수사자의 비애(?)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또한 자연의 오묘한 질서다.

                    

<최삼규 PD>

 

 

멀리서 보는 숲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숲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고, 동물적이고, 시스템적이다. 동물학자의 리포트나 연구논문이 아니라 방송국 PD의 방송물 제작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관찰, 깨달음을 풀어 놓는 동물과 동물, 동물과 사람 간의 이바구들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저자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와 뻐꾸기의 비겁함을 보여줬던 <어미새의 사랑>을 제작했던 바로 그 PD.

 

출처 화폐와 행복 5+6, 『최보기의 책보기

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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