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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SCO 이야기/화폐와 행복(사보)

문학 속의 돈 이야기(위화-허삼관매혈기)

by 한국조폐공사 2015. 9. 21.

 

 

하정우 감독·주연 영화 『허삼관매혈기』는 중국 작가 위화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허삼관매혈기』는 피 팔아 살아가는 인생역정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힘=돈’의 등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열아홉의 근룡이는 말한다.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서 번 돈으로 하는 거라구요. 땅 파서 버는 돈이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니까요.” 곧 피를 팔아야 삶의 양식(糧食)을 구할 수 있는 삶의 어떤 양식(樣式)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 허삼관은 처음에 피를 파는 것이 건강의 징표이자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방씨와 근룡이와 더불어 피를 판다. 피를 팔고 난 그에게 방씨가 어떻게 쓸 것인지 묻자,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거라는 것을 안 셈이지요. 제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이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써 버릴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쓰도록 해야지요.” 라고 말한다. 그는 결국 피 팔아 번 돈으로 여자를 얻어 결혼하기로 한다. 하소용과 사귀고 있던 허옥란에게 피를 판 돈으로 접근하여 결혼을 성사시킨다. 5년 동안 아들 셋을 낳는다. 그러던 중 첫째 아들 일락이 자기 친아들이 아니라 하소용의 자식임이 밝혀진다. 주위 사람들은 허삼관을 두고 중국 남자에게는 최악의 욕에 해당되는 ‘자라대가리’라며 수근거린다. 이로 인해 그의 가정은 파탄 직전까지 가지만 가까스로 봉합된다. 그런 터에 일락이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을 돌로 찍어 큰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방씨가 치료비를 청구하자 허삼관은 하소용에게 받으라고 하지만, 하소용이 그것을 부담할리 만무하다. 허옥란이 찾아가고 심지어 아들 일락이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치료비를 받지 못하자 방씨는 허삼관네 집의 가산을 차압해 간다. 이런 일을 당하자 그는 나머지 두 아들에게 첫째 일락을 빼고 너희만 내 아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자기 가산을 되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십 년 전 피를 팔았던 것을 떠올리며 피를 판다. 이 사실을 안 아내 허옥란은 피를 판 것은 조상을 판 것이나 다름없다며 남편에게 욕을 한다. 이에 아내에게 “피를 팔았단 말이야. 이 허삼관이가 피를 팔았다구. 하소용이 대신 빚을 갚고. 피를 팔아서 또 자라대가리 노릇을 했단 말이야.”라고 푸념하던 허삼관은 다리를 다쳐 누워 있는 임분방의 문병을 가서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이어 그녀를 위해 피를 다시 판다. 그녀에게 준 선물이 빌미가 되어 사단을 알게 된 임분방의 남편이 허삼관네 집을 찾아와 욕을 하고 가자, 허옥란은 길길이 뛴다.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허삼관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허기에 시달린다. 옥수수죽만 마실 수 있을 뿐 먹을 양식을 마련할 대책이 없다. 옥수수죽만 마셔댄 지 57일이 되자 허삼관은 “피를 팔아야지. 식구들에게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게 해 줘야지.” 라며 세 번째 피를 팔게 된다. 이때 아내 허옥란은 이렇게 푸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나 끝이 나나……”

 

대혁명이 진행되면서 일락과 이락은 농촌의 생산대로 떠난다. 떠났던 일락이 쇠약한 몸이 되어 집에 왔는데, 그를 다시 보내며 허삼관은 다섯 번째 피를 판다. 한 달도 채 못 되어 둘째 아들 이락의 부대 생산대장이 방문하자 또다시 여섯 번째 피를 팔게 된다. 이락이가 빨리 귀가할 수 있도록 생산대장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는데, 그를 대접할 양식(糧食)이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가혹한 선택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아내 허옥란이 직접 남편에게 피를 팔도록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같이 피를 팔던 근룡이가 쓰러져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피를 팔며 살아왔던 인생이 피를 팔다가 죽어간 것이다. 하지만 비극은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아들 일락이가 위중한 간염에 걸려 이락이의 등에 업혀온 것이다. 상해의 큰 병원으로 어머니와 함께 일단 보낸 다음 허삼관은 상해로 가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매혈 여로’를 거친다.

 

 

벌써 집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엊그제 임포에서 피를 팔았는데, 또다시 백리의 병원을 찾아 피를 팔 생각이었다. 백리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강변 양편의 길이 진흙탕처럼 질펀했고, 찬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려 마치 처마 밑에 걸린 건어물처럼 메마르게 만들었다. 그는 솜저고리의 주머니에 사발을 넣고, 한 손으로 소금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 길을 걸었다. 강변 계단에 이르러 강물 두 사발을 떠서 마시고는 계속 소금을 먹으면서 또 길을 걸었다.


그날 오후 허삼관은 백리의 병원에서 피를 판 후, 거리로 나서자마자 병원 맞은편의 반점으로 가다가 온몸이 꼼짝달싹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두 손으로 자기 몸을 곡 껴안은 채 길 한 가운데에서 그저 벌벌 떨고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모진 광풍에 떠는 마른 가지처럼 두 다리가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곧 부러질 것 같더니만, 이윽고 몸이 휘청하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매혈 여로가 계속될수록, 그 고단한 역정이 이어질수록 허삼관은 몸은 쇠잔해지고 생명은 줄어든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로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담보로 한 매혈 여로를 걸어야 하는 허삼관의 초상 앞에서 연민의 정조는 깊어진다. 여관에서 동숙했던 노인이 “아니, 먼저는 힘을 싹 팔았고, 그 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더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넘기는 거 아니요.”
라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지만, 허삼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황점에서 열 번째 피를 팔던 중 쓰러져 수혈을 받게 됨으로써 두 번 피 판 돈을 지불해야 되는 불상사도 겪는다. 병원을 나온 그가 겨울 바람 속에서 나무에 기댄 채 웅크리고 앉아 남은 돈을 정성스럽게 세고 또 잘 싸서 주머니에 넣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눈물 없이 지나치기 어렵다. 또 “내가 쉬지 않고 피를 파는 것은 이 방법 외에는 별수가 없기 때문이야. 내 아들이 상해의 병원에 있는데, 병이 아주 심한 상태라네. 그래서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모아서 가야 하거든. 만일 돈이 없으면 의사가 주사도 안 놔 주고, 약도 안 줄 테니 말이야.”라는 그의 목소리, 그리고 “내 본래 칠리보에 가서 한 번, 장녕에 가서 한 번 더 피를 팔 생각이었네만, 이젠 못하겠어. 만일에 계속 피를 팔았다간 목숨까지 팔아넘길 것 같아서 말이야……” 라는 그의 목소리도 심금을 울린다.

 

이런 허삼관의 매혈 여로는 당연히 비극의 심화 여로요, 그에 따른 연민의 심화 여로였다. 그 여로에서 우리는 ‘산다는 것’에 대한 근본 문제를 성찰한다. 심각한 경제적 곤란이 생길 때마다 매혈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허삼관의 인생, 만약 그가 조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처지였더라면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소설의 끝에서 예순이 된 허삼관은 승리반점 앞을 지나다가 돼지간 볶음 냄새를 맡고는 그것이 불현듯 먹고 싶어진다.
지난 시절 피를 팔던 기억을 떠올리던 그는 마지막으로 피를 판지 11년 만에,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젊은 혈두에게 거절당한다. 이제는 늙어서 자신의 피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가구에나 칠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심한 절망감에 빠진다. “지난 40년 동안 이런 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 판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집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허삼관의 격정적 초상에서 우리는 연민의 극대치를 체험한다. 양식(糧食)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양식(良識)을 추구하며 나름대로 진실한 삶의 양식(樣式)을 꾸려오고자 했던 한 기층 민중이 자기 삶의 양식(樣式)의 종말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느끼는 비애여서, 그에 대한 연민의 정조는 그만큼 각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출처 화폐와 행복 9+10, 『문학 속의 돈 이야기

글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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