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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제품_카네이션 금메달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카네이션 메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세요!

 

어버이 날스승의 날’ 등 특별한 날 선물용으로 안성맞춤

하트 모양 투명 아크릴 케이스에 담긴 빨간 카네이션 순금 메달

보증서 한쪽 면에 감사의 메시지 담을 수 있어...

 

국제정세 불안정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와 함께 금 시세가 연일 상승곡선을 이어가는 요즘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사랑하는 부모님배우자평생의 가르침을 준 은사님께 사랑과 감사의 의미로 카네이션 메달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조폐공사(사장 김화동www.komsco.com)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어버이날스승의날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고품격 선물로 활용이 가능한 카네이션 메달(금 99.9%, 3.75g, 20mm)을 출시한다.

 

카네이션 메달의 앞면에는 감사의 메시지와 카네이션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예술성을 높이고 있고뒷면에는 하트 모양의 무늬가 앙증맞게 표현되어 있다또한 함께 압인된 홀마크는 메달의 완벽한 품질을 보증한다

 

하트모양의 투명한 아크릴에 멋스럽게 포장된 메달은 한쪽 면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감사의 카드로 활용이 가능한 보증서와 함께 스크래치 방지를 위하여 견고하게 포장이 되어 있다또한 한 번의 구입으로 부모님과 자녀에게 선물이 가능하도록 5월 30일까지 2개 이상 구입 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유통주화세트(21,000원 상당)를 선물로 증정한다.

 

본 제품은 한국조폐공사 쇼핑몰(www.koreaomint.com) 및 전화주문(tel.02-710-5228)을 통해 부가세 포함하여 249,000원에 만나볼 수 있다.

 

출처 : 화폐와 행복 5+6 『우리제품_카네이션 금메달 』 

글  박찬혁 영업개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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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제품_골드바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한국조폐공사 오롯골드바 금융권 유통망 10개사로 확대

              
                                - 
골드바 금융권 판매액도 연간 300억원대로 성장 -

 

 

  

 

■ 2014년 자체 브랜드 오롯골드바 출시 후 판매처 확보에 어려움 겪다가… 한국조폐공사의 99.99% 

순도 고품위 골드바 홍보 파급력 높아져 금융권 판매대행점 2015년 2개사 ⇒ 2017년 10개사로 껑충

  금융권 판매 유통경로 확대로 오롯골드바 국민 접근성 높여 고객편익 강화

 

 

 

중요한 것은 결국 제품 품질이다한국조폐공사가 공신력과 완벽한 품질보증을 바탕으로 

추진한 골드바 사업은 불과 1~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판매 채널 확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금융권을 통한 판매시작 3년 만에 우리은행 등을 포함한 10개 금융사,

 2017년 연간 판매목표액 31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질적 성장을 거듭하며

판매량이 급성장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금거래 투명화… 오롯골드바 유통 채널 확장에 어려움 

하지만 금융권을 통한 판매확대라는 열매를 수확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공사가 자사브랜드인 오롯골드바를 출시하고 본격적인 골드바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이다국내 금시장의 경우 음성거래가 만연하고 순도중량유통경로 등이 명확하지 않아 금 거래에 대한 소비자 불안 및 불신이 확산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금 수요자·공급자가 가격과 품질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금을 거래할 수 있는 KRX 금시장이 개설되었으며한국조폐공사는 공신력과 완벽한 품질관리 등을 인정받아  KRX 금시장 내 거래되는 골드바의 금 품질인증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또한우리공사는 귀금속 사업 수행 경험 및 축적된 기술력·사업역량 등의 강점을 바탕으로 골드바 판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허나 시장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순도와 중량이 보증된 고품질의 골드바약 65년 역사의 화폐 제조 공기업이라는 공신력제품을 생산한 뒤 품질검사를 시행하는 유일한 골드바 제품이라는 차별적인 우위성으로 눈길을 끄는데 성공하였지만 고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유통채널이 제한적이어서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다


금융권을 통한 적극적인 판매망 확충으로 오롯골드바 생태계 확장  

 한국조폐공사는 대외적으로 오롯골드바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금융권을 대상으로 시중 골드바 대비 차별적 우위성을 강조하는 영업을 통해 판매망을 늘리고 있다

오롯 골드바 판매망은 2015년 기준 취급점이 증권사 2개사에서 2017년 현재 기준 우리은행수협은행광주은행전북은행 등 시중 주요 은행 및 미래에셋대우증권과 같은 증권사우량 저축은행 등을 포함하여 10개사로 대폭 확충되었다.  판매망이 확충되면서 소비자 접근성이 강화되었고다양한 마케팅 활동 및 소비자 인지도 상승으로 판매가 본격화됨에 따라 금융권을 통해 2017년 연간 매출 31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골드바 시장 선도업체가 압도적인 시장점유를 하는 환경에서금융권 판매사 확충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이러한 점을 가능케 한 주요한 성공요인은 기존 골드바 구매 고객들이 시장에 필요로 하는 니즈(NEEDS)의 흐름을 읽고 그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고객으로부터의 선택을 이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과거 노(NO)브랜드에 가까운 일률적인 원자재 성격의 골드바에서 한국조폐공사의 공신력을 기반으로 한 높은 브랜드 가치를 제공함으로서 프리미엄 골드바  수요를 창출하였고순도와 중량의 철저한 보증을 통한 품질 안전성기존의 한정된 중량 대 구성의 상품에서 벗어난 다양한 중량 대 구성 및 선물용 골드바 수요의 발굴 등으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공사와 오롯골드바를 취급하는 판매사와의 공동 마케팅을 실시하고 골드바 판매와 관련되어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장기간 판매 교육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와 파트너십으로 긴 호흡을 함께 한 결과 판매사는 골드바 안정적으로 판매 할 수 있었고새로운 비이자 수익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금융권을 통한 판매 활성화로 앞으로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우수한 품질의 대표 골드바 브랜드로 지속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출처 : 화폐와 행복 5+6 『우리제품 골드바』 


글 : 한국조폐공사 영업개발단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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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속 인물 탐구 - 아미르 티무르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우즈베키스탄 500(sum) 은행권 인물

최후의 유목 왕국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 아미르 티무르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1336~1405)

 

조폐공사는 은행권(지폐) 용지 원자재인 면펄프 생산을 위해 대우와 협력, 2010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자회사 GKD(Global Komsco Daewoo)를 설립했다. GKD에는 현재 2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6위의 면화 생산국이다. 인구는 3천만명이며, 수도 타슈켄트는 180만이다. GKD는 초기에 제품 생산과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차 안정되어 작년에는 약 11,000톤의 면펄프를 판매, 이중 90% 이상을 우리나라를 포함한 12개국에 수출하였다. 매출 규모는 1,806만 달러였다. 생산품목으로는 지폐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화학용 면펄프의 생산량도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안정된 분위기에 힘입어 최근 우즈베키스탄 진출에 관심이 있는 우리 기업들의 GKD 방문도 늘어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화폐의 단위는 숨(Uzbekistani Sum·UZS)이다. 1달러가 공식환율로 대략 3300숨이니 우리 돈으로 따지면 1원이 3숨 정도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장환율은 1달러가 8000숨 안팎에 달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은행권은 1, 3, 5, 10, 25, 50, 100, 200, 500, 1000, 5000숨 등 모두 11종류이나 높은 인플레이션율 때문에 저액권은 거의 사라지고 200, 500, 1000, 50004가지가 주로 통용된다. 특이한 점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이중 500숨 권종만 인물을 도안으로 채택하고 나머지 권종은 이스티크랄 예술궁전’, 호랑이 모자이크 문양,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 우즈베키스탄 국회인 올리 마즐리스등을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다. 500숨 지폐의 도안으로 채택된 인물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 영웅 티무르이다. 타슈켄트의 티무르 광장 중앙에는 아미르 티무르의 기마상이 있다.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는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이다. 유럽에서는 태멀레인 또는 타메를란으로 부르기도 한다. 티무르 제국은 1369년에서 1507년까지 그리 길지 않은 138년간 존속했던 대제국이다. 동쪽으로는 갠지스강이 있는 인도의 델리에서 북으로는 아랄해에 면한 타슈켄트까지, 서쪽으로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넘어서 흑해 연안까지, 남쪽으로는 아라비아해의 이스탄불까지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다. 200년의 시차를 두고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칭기스 칸에 버금가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티무르는 바를라스 부족 출신이다. 이 부족은 본래 몽골족이었으나 칭기즈칸의 아들 차가타이의 트란스옥사니아(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 정복전쟁에 참여한 후 차가타이 칸국으로 알려진 곳에 정착했다. 티무르가 태어난 때는 차카타이 칸국이 동·서로 분열된 혼란의 시기였다. 티무르는 자라면서 뛰어난 군사적 자질과 재능으로 권력의 중심에 다가갔고, 1360년 동·서간에 일어난 시스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중앙아시아의 심장인 사마르칸트를 차지하게 됐다.


이후 세계정복이라는 꿈을 이루고 자신의 귄위를 과시하고자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30년간 기마군병을 이끌고 몽골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을 정복한 티무르는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쟁의 신이기도 했다. 1404년 노쇠했지만 여전히 세계정복의 야망에 불타던 티무르는 명나라를 격파, 원나라(몽골)의 옛 영지를 회복한다는 꿈 아래 20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원정에 나섰다. 하지만 매서운 혹한을 뚫고 겨우 카자흐스탄 침켄트 서쪽 오트라르에 도착했을 때 병을 얻어 1405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투항한 적들까지 여지없이 살육하는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티무르는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융성한 도시로 만들려 했다. 사마르칸트에 이슬람 양식에 기초한 웅장한 사원과 건물 등을 건설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높이 대우했다. 그 덕분에 중앙아시아는 화려한 건축 양식과 더불어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됐다. 비록 전장에서는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로 악명이 높았지만 실크로드를 잇는 문화부흥을 이룬 영웅이기도 했다.


한편, 수도 타슈켄트에서 고속열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모자에 깃대를 꽂은 두 명이 인물이 등장한다.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데 6~7세기에 고구려와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출처 : 화폐와 행복 3+4 『화폐 속 인물 탐구 』 


글  김화동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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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여행 칼럼 - <데미안>과 마법의 제6감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내 삶의 여행자 되기 01_<데미안>과 마법의 제6



 

데미안? 청소년 권장도서 아니에요? 어린 애들보고 읽어보라고 하는 뭐 그런거.”

어려운 단어도 많고, 무슨 얘기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가서 읽다 덮어버렸어요.”

강의장에서 <데미안>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반응이 적잖이 나온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칭찬하지만 읽지 않는 책(Classic: a book which people praise and don't read)’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여행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뒀다. 목표와 열정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첫 책이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꿈은 꿈 일 뿐, 현실은 냉정하다는 것을. 출판 시장 불황기에 책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부수적인 일도 쉽게 들어올리 없었다.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퇴사에 대해 고민하던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게 맞는 건가?' 기본부터 다져야 되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서른 살, <데미안>을 그렇게 늦게 만났다.


60개 언어로 번역되고, 한국에서 사랑받는 외국 작가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라는 이 유명한 작품을 글을 쓰고 나서야 읽다니. 부끄럽긴 해도 늦게 읽길 참 잘했지 싶다. 아마 나 자신에 대해 고민조차 할 줄 몰랐던 이십대 시절에 이 소설을 접했더라면 그저 노잼이라며 책장에 처박아 놓지 않았을까. 최근 3년 동안 열 번은 족히 읽었다. 자꾸만 읽어도 새롭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떠오른다. 데미안을 읽을 때가 됐군 하고 말이다. 글과 여행을 업으로 삼고 난 뒤 <데미안>을 만난 건 운명적인 타이밍 같다.


헤세의 삶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구도자는 자신의 소설 머리말부터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허구의, 이상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다른 문학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은 현실적이고, 일회적이며,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헤세 자신의 이야기임을. 또한 자기의 이야기가 곧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며, 모두는 그 나름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살고 있음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순수한 소년 싱클레어는 낮과 밤이라는 양극의 세계가 있음을 유년 시절의 시련을 통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싱클레어가 말하는 낮과 밤은 정돈되고 안정적인 현실세계와 해방, 본능의 비밀스런 세계를 뜻한다. 부모님 집, 도덕, 종교, ()등 어느 누구나 사춘기 때 한 번 쯤은 끙끙 앓아봄직한 고민과 시련들이다. 방황하는 싱클레어를 싱클레어답게 인도한 건 바로 친구 데미안과의 우정이다. 특히 불확실함, 고독감으로 혼란스러워 방탕한 기숙사 생활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에게 데미안이 건넨 글귀는 여행 작가라는 쉽지 않는 삶에 의기소침해졌던 과거의 나에게 에너지 넘치는 자극이 되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가 알에서 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단한 알껍데기를 깨부수기 위해선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게다가 알에서 나온다고 새의 삶이 완전한 것도 아니다 .꼼짝 못하게 몸을 감싸고 있던 알은 외부로부터 새를 지켜주기도 했던 보호막이기도 했다. 안전장치가 사라졌으니 새는 이제 완전히 맨몸이다. 보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는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고, 더 강한 새로 성장하기 위한 보다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불확실함 속으로, 새로운 것에로 던져진 돌과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아무래도 좋은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기 위한 새의 투쟁은 주어진 환경에서 매일매일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 모습의 메타포가 아닐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은 100년이 지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답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머리로는 이해가지만 몸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덮으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알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새처럼, 요즘 같은 현실에서 나답게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버리지 않고도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그의 소울 메이트 데미안처럼, 나답게 살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 중에 가장 쉽고도 즐거운 방법이 바로 여행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자기실현을 실제 여행에서도 강조한다. 세계 속 다양성을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 안에서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일. 헤세에겐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의 방식이었다.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시아 여행을 통해 동양 사상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열린 마음의 예술가였다. 헤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여행가였는지를 그의 에세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여행 중에 낯선 것에 빨리 적응하고 친해지는 사람,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삶에서 의미를 찾아낸 사람, 자신의 별을 따라갈 줄 아는 사람과 동일인이다. () 그들은 먼 나라를 여행할 때 뿐 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삶과 리듬 속에서도 그러한 비밀을 열렬히 추구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그는 피상적인 관광여행을 꺼렸다. 여행의 기준이 타인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성립되어야 했다. 작가의 발로 직접 걸으며 발견하는 낯선 땅의 소박한 즐거움과 아름다움, 대상과의 교감이 중요했다. 호수의 다양한 물 빛깔, 어느 어부의 집과 보트에서의 경험, 여행지방의 토속적 농담들, 나뭇잎의 냄새와 같은 것들이 그와 오롯이 교감을 나눴던 길 위의 벗들이었다.

 

여행은 전보다 쉬워졌다. 손 안의 모바일 세상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항공권과 숙박시설 예약은 5분이면 뚝딱, 프랑스 파리 후미진 골목에 숨겨진 맛집과 새로 오픈한 빵집마저 검색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나 최신 가이드북이다, 파워 블로거의 리뷰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 같은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여행자는 떠나기도 전에 그 정보들이 쳐놓은 틀에 갇히고 만다. ‘여기도 가보고, 또 저기도 가봐야 하고.’, ‘너도 먹어봤으니 나도 먹어봐야 않겠어’, ‘최대한 많이’, ‘남는 건 인증샷’. 몸이 을 나서니 마음엔 이 쌓인다.


모두가 아닌 나만의 여행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데미안이 소개한 '마법의 제 6'이다. 데미안은 이 새로운 감각을 자기의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여행가이드북이나 블로그 정보들을 교과서처럼, 여행을 공부처럼 여기는 자세부터 훌훌 털어버리면 어떨까. 널리고 널린 여행정보들은 마치 사회적 기준인 마냥 여행자의 발목을 잡고 마음의 배낭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손 안의 가이드북, 구글맵은 잠시 넣어두시라. 조금은 허술하고 서툴러도 좋다. 관광자 모드의 마음을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행의 주인공인 나 자신의 ’6을 믿고 발길을 맡기면 된다. 마음이 가는 장소에서 하루 종일 머물며 그 공간과 시간을 만끽하기도 하고, 추천 코스나 명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눈과 발이 이끄는 대로 산책해보기도 하고, 줄이 길게 늘어져 3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야하는 맛집이 아닌 소박한 동네 밥집이나 공원 벤치에서 먹어보는 거다.


지도 위에 나만의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가며, 평소에 잊고 있던 내가 누구였던가라는 근본적인 자기인식이 다시 되살아난다. 여행은 여행지의 이동이 아니라 여행자의 감각이 쌓이는 여정이다.


아직도 떠나느냐 머물러 있느냐 사이에서 고민 중일지도 모르는 미래의 싱클레어 여러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 사느냐, 더 즐겁게 사느냐그것이 진짜 문제다.



출처 : 화폐와 행복 3+4 『생활여행 칼럼 』 


글  조예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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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조폐국 시리즈 - 호주 왕립조폐국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호주 왕립조폐국 / Royal Australian Mint

[호주 최초의 독립 조폐국]


1777,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호주 동부에 상륙하여 영국의 영토임을 선언하면서 호주 화폐역사도 시작하였다. 당시 영국 본토에서 제조되는 화폐 수량으로는 나날이 확장되는 대영제국 영토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마침 스페인 달러가 국제 무역에 통용되고 있었기에 호주도 1792년부터 영국으로부터 스페인 달러를 수입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화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입된 스페인 달러의 가운데를 뚫어서 바깥쪽의 링 부분과 가운데 둥근 부분을 나눠 사용하기도 했는데, 바깥 부분을 구멍이 난 달러라는 뜻의 홀리달러(Holey Dollar)", 가운데 부분을 버린 달러라는 뜻의 덤프달러(Dump Dollar)"라 불렀고, 흥미롭게도 현재 잔존량이 거의 없는 매우 희귀한 주화로 거래되고 있다. 이와 같이 엉성하게 제작된 통화 대용품들이 대거 나타났고 위조가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 영국 정부는 1825년부터 호주용 영국 화폐를 만들어 통용시켰다. 이때부터 1966년 십진수 통화제인 달러, 센트가 도입되기 전까지 영국 화폐 단위인 파운드, 실링, 펜스가 호주 통화제의 근간이 된 것이다.

 

1850년대 호주 골드러시를 통해 호주 내부적 금화 생산이 가능케 되자, ‘시드니(Sydney)’멜버른(Melbourne)’, ‘퍼스(Perth)’에 영국 왕립조폐국의 지청을 건립하여 채굴한 금을 정제하고 영국 및 통치령에서 사용할 금화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19세기 말까지 호주는 계속해서 영국의 금, , 동화와 호주 생산 금화가 혼용되었다.

 

1901년 연방이 결정되자 드디어 새 국가 통화 제조가 추진되었다. 최초의 호주 은화와 동화 제조에 착수 하였는데, 초기에는 영국, 시드니, 멜버른, 인도 등에서 제조했으나, 1922부터 1964까지 호주 퍼스조폐국에서 주화를 제조하였다. 그리고 1965,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에딘버러 공작이 호주의 십진수 단위 통화 생산을 위해 호주의 수도 캔버라(Canberra)’호주 왕립조폐국(Royal Australian Mint)’를 준공하게 되는데, 이는 영국 왕립조폐국의 지청이 아닌 호주 최초의 독립 조폐국으로서였다. 그 후 1965년부터 1983년 사이의 현행주화는 호주 왕립조폐국과 호주 퍼스조폐국, 그리고 캐나다 왕립조폐국에서 분할 제조되었지만, 1983년부터 현재까지 호주의 현행주화 생산을 책임지는 유일한 기관은 호주 왕립조폐국이다.

 

호주 왕립조폐국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약 백오십억 장의 통용화를 제조했고, 하루에 200만장, 1년에 6억장 가량의 주화 제작이 가능하다. 1969년 뉴질랜드 주화 제조 수출 이후 세계 각국의 주화를 생산, 수출하고 있으며, 메달, 훈장, 보석용 제품, 토큰 등도 생산하고 있다. 1987년 대대적인 생산 시설 재정비에 들어간 호주 왕립조폐국은 세계 최초로 ISO9002 인증획득을 받은 조폐국이기도 하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매년 말에 열리는 올해의 코인대회(Coin of the Year Awards, COTY) 베스트 크라운 부문에서 남반구 하늘 시리즈 공작자리돔 색채 은화로 2013년에 수상을 한 경력이 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다양한 구성의 현행주화 세트들과 호주 문화와 축제, 자연 등을 주제삼은 기념주화들이 있으며, 특유의 정갈한 도안들로 호주를 호주답게 가장 잘 표현한 주화들이 특징이다.

 

호주 왕립조폐국은 2016년 한국조폐공사가 주빈(Guest of Honor)으로 선정됐던 World Money Fair2015년 주빈으로 선정되어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도 하였다.

 


그림설명: 1965년 호주 왕립조폐국 준공식에 참석한 에딘버러 공작


북반구, 남반구 하늘 시리즈 - 돔 모양 기념주화


돔 모양으로 오목하게 파인 표면에 별자리와 밤하늘을 새겨 넣은 기념주화



호주/5달러/2016/99.9%/31.1g/39.6mm/프루프

호주/100달러/2017/99.99%/31.1g/38.5mm/프루프

 

리우올림픽 호주 국가대표팀 기념동화


호주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제작된, 오륜기의 다섯 가지 색을 기념동화에 적용시킨 색채 동화 5종 세트



공통(5): 호주/2달러/2016//6.6g/20.5mm/미사용

 

석양의 캥거루 은화


광활한 호주 지평선위 캥거루의 모습을 담은, 2008년부터 한결같은 도안으로 출시되고 있는 세계적인 은화


 


호주/1달러/99.9%/6g/21.6mm/프루프

 

시드니 불꽃축제 색채 은화


매년 다른 도안으로, 시드니 하버의 신년맞이 불꽃축제를 기념하는 색채 은화

 



출처 : 화폐와 행복 3+4 『세계 조폐국 시리즈 』 


글  전주일 풍산화동양행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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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 보는 세계의 전통의상 - 중국

창조하는KOMSCO/화폐와 행복(사보)

중국


후기 홍적세의 시작 이래, 중국은 고립된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그자체로 하나의 우주였다. 중국의 서쪽과 북쪽은 거대한 산맥과 높은 사막 고원지대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울창한 밀림이, 동쪽으로는 바다가 자리잡고 있다. 안으로는 주요한 지리적 구분이, 거대한 산맥들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의해 나뉜다. 중국 문명을 발생시킨 지배적인 문화는 황하 강변을 따라 북쪽에서 시작되었다. 황하는 겨울에는 춥고 거친 평원지대였지만, 중국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었던 기장이 자라날 수 있는 비옥하며 쉽게 일할 수 있는 황토 지역을 끼고 있었다. 기본 수확률이 기장에서 쌀로 바뀐 것은 2000여 년 전이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도 중국은 특유의 많은 역사 전통을 탄생시켰다. 실크, , 청동, 그리고 철기와 같은 고급 물품들이 이미 세련되게 정제되었으며, 이러한 물품들은 중국의 문화를 다른 문명과 차별화시켰다. 특히 실크는 중국 귀족 사회의 특색이 된 의식적, 정치적, 사회적인 행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사회가 발달하고 구조와 기능이 세분화됨에 따라 사람의 지위, 신분, 권위 등을 표시하기 위하여 특수한 복식, 휘장, 색채 등이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청()은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왕조로서 한족에 대해 강경책과 온건책을 병행했는데 입관(入關) 직후 복식에 있어서는 먼저 머리를 깍게 하고 옷을 바꿔 입게 하는 등 강경책을 써 머리(목숨)을 남기려면 모발을 남기지 말고 모발을 남기려면 머리를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이에 대해 한족은 차라리 목을 잘릴지언정 머리는 절대로 안 깎는다.”고 반항했으나 후에는 점차 만주족의 습속에 따르게 되었다. 이처럼 유목민족 복식의 영향은 지배적이었지만 한족과의 접촉을 통해 융화되는 점도 적지 않았으니 한 예로 활동하기에 편리한 복장을 추구하던 만주족의 옷이 후에는 일하기에 불편할 정도로 소매가 넓고 커진 것을 들 수 있다. 청말에는 자신들의 국가체계를 유지하고자 청대의 의관과 변발을 멸시하고 한족의 의관을 계승하고자 했다.


청대 복식에 있어 특이할 만한 것은 남자는 청의 제도를 따르되, 여자는 따르지 않아도 좋다.’는 방침을 실행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남자는 만주족 복식을 착용하도록 강력하게 지시하였으나, 한족 여자들은 계속 한족 복식을 착용할 수 있었다. 복식의 형태는 한족의 포()와 만주족의 괘()가 기본이 되었다. 포는 명대에 비하여 품이 줄었고, 옷깃을 여밀 때 대신에 단추를 사용하였다. 소매는 말발굽과 비슷한 형태인 마제수가 많았는데 이것은 수렵생활에 편리한 방하용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청대에는 예의를 갖출 때 손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중국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과 그 외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복식은 일반적으로 차파오로 알려져 있다. 차파오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의 복식으로 근대화시기 국제적으로 서구에 알려져 지금까지 유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조 이전의 한족의 화복과 민국시대의 중산복등이 모두 중국 전통 복식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차파오는 중국 전통의상을 대표하는 여성복 중의 하나이다. 16세기 중기 청대복식에서 기원하였다. 16세기 중기 만족 여자들이 입는 만족복장에서 기원하였다. 차파오는 중화민국시기의 여자들의 옷이었는데 만족 여자들의 창파오에서 변화를 거쳐 탄생한 것이다. 만족이 치인이라고 불리므로 그들의 옷도 차파오라고 불리게 되었다. 전통 차파오, 만족 기인들이 입었던 창파오는 넓고 옷선이 평평하고 곧았고 옷 길이는 발치까지였다. 치파오는 형태상 위는 직선을 사용했고 가슴, 어깨, 허리, 엉덩이까지 선이 평평하고 곧았는데 이는 여성의 몸매를 감추기 위해서이다. 원단의 특징, 재료는 천단, 비단, 솜털 등을 많이 사용했다. 옷 위에 꽃무늬를 수놓고 옷깃, 옷에는 큰 레이스를 달았다. 이후 1920~30년대 보다 개량형태로 유행하였고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차파오

(청대 만족여자의 차파오)




개량차파오 (1920년대)


특히 중국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입고 있는 인민복(중산복)은 중국의 개혁가 쑨원이 고안한 옷이다. 1912년부터 1916년까지 쑨원은 양복을 착용하였다. 양복은 작업복으로 실용성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전체적으로 중국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의복은 새로운 중국의 사회분위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으면서 실용적인 면이 부각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식 제복의 형태에 양복의 재단방법과 중국 전통복식을 융합하여 중산복을 고안하였다.이 시기 중산복의 형태는 일본 제복과 큰 차이가 없었다. 즉 포켓이 3개 있고, 앞 중심에 7개의 단추가 달려 있었으며 소매는 두 장으로 구성된 형태였다. 1916년 이후 쑨원을 비롯한 혁명당원들은 중산복을 혁명의 상징으로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중산복은 중국인 남녀노소에게 널리 착용되었고, 부분적인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참고 문헌

퍼트리샤 리프 애너월트(2009), 한국복식학회,세계복식문화사, 예담

한국은행(2013),화폐 속의 패션박물관, 한국은행

기초(2016),중국 중산복의 변천 및 현대패션에의 적용사례 고찰, 전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출처 : 화폐와 행복 3+4 『화폐로 보는 세계의 전통의상』 


글  김재민 기술연구원 디자인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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